삼국지 토막지식 08
작위(爵位)란 제후들이 받은 지위를 뜻합니다. 본래 주나라 시절에 중앙정부의 통치가 지방에까지 미치기 어려우니, 천자가 제후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작위를 주어 그 지역을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이를 분봉(分封)이라고 하지요. 그런 제후들은 중앙에 세금을 바치고 유사시에 병력을 보내는 등의 의무를 다하면 자신의 봉토 내에서는 별다른 간섭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후 진나라를 거쳐 한나라 대에 이르면서 과거에 비해 중앙정부의 힘이 커집니다. 이에 따라 과거처럼 제후들이 직접 해당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되는 방식은 거의 사라졌죠. 특히 한나라 건국 후 한고제 유방이 제후왕들을 대거 숙청하고, 이후 한경제 시절에 이른바 오초칠국의 난이 터졌다가 진압되면서 중앙집권이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작위는 정말로 봉지를 받았던 기존과는 달리 명예직에 가까운 존재로 재정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규모도 축소되었습니다. 황족은 봉지를 받아 왕(王)이나 후(侯)에 책봉될 수 있었지만 그런 경우가 점차 줄어들었지요. 그리고 설령 제후왕에 임명되었더라도, 자신이 직접 해당 지역을 다스리지는 못하고 중앙정부에서 임명한 관리가 대신 통치했습니다. 상(相)을 임명해 국(國)을 다스리는 형태로요.
(참고자료 : 삼국시대의 지방 제도)
한편 황족이 아닌 이를 대상으로 무려 20등급으로 세분화하여 수여했던 작위도 단 두 종류만이 실질적으로 살아남습니다. 그게 바로 20등급인 열후(列侯)와 19등급인 관내후(關内侯)입니다. 20등급이 가장 높고 1등급이 가장 낮기에 열후는 관내후보다 높습니다.
삼국지를 보다 보면 특정 장수를 열후에 봉했다, 혹은 관내후에 봉했다는 기록이 무수히 쏟아져나옵니다. 이는 그 장수들을 제후에 봉하고 작위를 내렸다는 뜻입니다. 물론 계속 설명드렸다시피 과거와는 달리 명예직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상당히 높은 명예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특히 열후의 경우는 현후(縣侯), 향후(鄕侯), 정후(亭侯)로 세분화됩니다. 현이 가장 큰 단위고 정이 가장 작은 단위니만큼 앞에 있을수록 높은 지위지요. 아울러 이들에게는 식읍(食邑)을 내렸는데 즉 해당 지역의 가호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입니다. 한편 관내후는 말 그대로 관내(關內), 즉 수도권 일대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봉지가 없었고 정말로 명예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간혹 식읍을 별도로 받는 경우도 있었지요. 참고로 이 관내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특성도 지속적으로 변했기에 지금도 학술적인 논쟁거리가 되곤 합니다.
그러므로 삼국시대에 여러 문무 관원들이 받았던 작위를 등급별로 구분하자면 현후-향후-정후-관내후 순서가 됩니다. 그러나 후한 말, 예외가 생겨나지요. 바로 조조입니다.
조조는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며 계속해서 지위가 높아집니다. 승상에 이르자 신하로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기에 마침내 공(公)이 됩니다. 공은 주나라 시대의 제후들 중 가장 높은 작위로 후(侯)보다 위에 있습니다. 한나라 시대에는 이미 소멸한 것이나 다름없었건만 그걸 부활시킨 거지요. 춘추전국시대 당시 위(魏)나라가 있던 지역을 봉지로 받았기 때문에 위공(魏公)입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조조는 위왕(魏王)이 됩니다. 공을 뛰어넘는 최고의 제후가 된 거지요. 한고제 이후로 한나라에서는 황족만이 왕에 책봉될 수 있는 게 법도였지만 당대의 권력자 조조는 그런 제한 따윈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가려면 물론 황제뿐이었습니다만, 조조는 그렇게 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