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글곰 Nov 13. 2019

조위의 인사제도(2) : 구현령

더 깊게 들여다보는 삼국지

   구현령을 선포한 시점은 조조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기였습니다. 조조가 승상에 오른 건 원씨 일가의 토벌을 마무리한 208년의 일입니다. 그전까지 조조는 천하의 지배자가 아니었어요. 원소와 더불어 천하의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던 사이였지요. 다시 말해, 원소가 죽고 그 자식들을 모조리 족친 다음에야 그는 비로소 진정한 일인자가 되었습니다. 폐지된 지 오래였던 승상 지위를 복원하고 스스로 그 자리에 오른 건 자신이 당금 천하의 실질적인 지배자라는 걸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지위에 오른다는 건 그만큼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는 뜻도 됩니다. 관할해야 할 영토도 넓고 관리해야 할 벼슬아치의 수도 많았지요.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기에, 인사(人事)에 충분한 시간을 투입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죠. 후한 말기의 인재 채용은 기본적으로 추천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때때로 추천제를 죄악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추천제가 딱히 나쁜 제도는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이 장단점이 있는 제도예요. 특정한 임무를 담당할 소수의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야 할 때 추천제는 특히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반면 이미 언급했다시피 특정 계층에 그 혜택이 쏠리는 부작용도 크지요. 


   사백 년 후 등장하게 되는 과거제는 그 반대입니다. 일정한 기준을 넘는 다수의 인재를 뽑아야 할 때 적합하지만 반대로 특정한 재능을 지닌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쯤 되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실 만도 한데, 사실 추천제와 과거제의 관계는 대입으로 치면 학생부 종합전형/수능이고 취업으로 치면 특채/공채와 엇비슷합니다.  


   그런데 추천을 받았다 해서 무작정 그 사람을 쓰는 건 아닙니다. 일단 검증을 해야 합니다. 진짜 인재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봐야 하죠. 그러면 그 일을 누가 합니까? 바로 그 세력의 군주 자신이 합니다. 


   예컨대 이런 겁니다. 사촌 형이 와서 우리 집안에 꽤 똘똘한 조카애가 있다고 추천합니다. 혹은 부하가 와서 누가 능력이 있다고 천거하지요. 그러면 일단 와 보라고 부릅니다. 불러서 이야기 좀 해 보는 거예요. 말하자면 CEO가 최종면접을 보는 거죠. 야.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어떠냐? 나쁜 놈들 어떻게 때려잡으면 좋겠냐? 백성들을 안돈하려면 어찌하는 게 상책이겠냐? 손자병법 읽어보니까 죽이던데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순자랑 맹자랑 어느 쪽이 옳다고 보냐? 요즘 무슨 주식에 투자하면 좋겠냐? 


   이렇게 한동안 대화를 나눈 후 결론을 내립니다. 얘는 훌륭하다, 혹은 쓸 만하다, 아니면 글렀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적절한 벼슬을 주는 거지요.


   사실 이게 조조만의 특별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유비도 손권도 똑같은 일들을 했습니다. 기타 다른 군웅들도 마찬가지였죠. 정사를 뒤져보면 지겹도록 나오는 대목이 ‘아무개가 누구와 만나 대화를 나눈 후 어쩌고 저쩌고라고 평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었어요. 오직 자신의 안목에 의지해 그 사람의 능력을 면밀히 살피고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임명하는 것. 그것이 난세의 군웅으로써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었습니다. 그런 능력이 없는 놈들은 이미 죽어서 무덤에 묻힌 지 오래였습니다. 


   물론 조조의 인재 보는 눈은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최대한 활용했지요. 그러지 않았더라면 애당초 그 자리에 올라서지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본질적으로 임용권자인 자신의 안목에만 의존한 것이었기에 물리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승상 조조. 이미 허수아비가 된 지 오래인 천자를 제쳐두고 실질적인 천하의 지배자가 된 조조입니다. 그렇잖아도 할 일이 많은데 수천 명이 넘는 하급 관료들까지 일일이 확인해 볼 시간이 있을 리 만무하잖습니까. 최염이나 모개 같은 우수한 신하들에게 그 일을 맡겼지만 조조로서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저는 구현령이 그런 조조의 현실인식을 반영한 결과라고 봅니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니 부하인 너희들도 신경을 좀 쓰라는 거죠. 하지만 구현령을 내린다 해서 딱히 뾰족한 수가 나오는 건 아니었습니다. 특정한 집안이나 가문 출신만 천거받게 되는 건 추천제가 지닌 고질적인 문제였죠. 아무리 아랫사람들에게 유재시거 네 글자를 강조해도 여러 단계를 거쳐 자신의 책상까지 올라오는 인물들은 이른바 명망 있는 가문의 자제들이었습니다. 결국 조조의 벼슬이 높아질수록 역설적이게도 그의 능력 위주 인사 정책은 퇴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걱정도 되었을 겁니다. 일부 특정한 집안이 계속해서 벼슬을 대물림한다는 건 결국 그 집안의 세력이 커진다는 의미거든요. 그러면 그런 세력들이 다른 마음을 먹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조조가 잘났다 해도 천하는 넓습니다. 지역에서 할거하는 호족들을 죄다 족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한중에 있었던 장로는 수십 년간이나 실질적인 왕 노릇을 했고, 송건 같은 작자는 군(郡)도 아니고 현(縣) 하나만을 차지한 채 정말로 왕을 자칭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 30년 동안이나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죠. 중앙정부에서 그런 변방까지 군사력을 투사할 여유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잘 주목받지 않는 일입니다만 당시는 그야말로 반란의 시대였습니다. 과중한 부세로 인해 툭하면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자신들의 지역에서 군림하다 중앙의 통제를 받게 된 자들의 불만도 많았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변방에서는 이민족들마저 중원 대륙을 넘보고 있었습니다. 유비와 손권처럼 여전히 조조에게 저항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조조의 그 엄청난 권력과 군사력으로도 일일이 전부 대응하기는 벅찬 형편이었습니다. 천하는 결코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향거리선제를 통해 수백 년간 세력을 구축해 온 명문거족들은 조조에게 있어 자신을 지원해 주는 세력인 동시에 잠재적인 위협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고작 이삼십 년 전만 해도 수십 명의 군웅들이 천하를 놓고 쟁패를 벌였습니다. 그런 일이 또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기에 구현령에는 그런 호족들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명백히 엿보입니다. 오직 능력만으로 사람을 쓴다는 명분 하에, 기존의 인사 제도 하에서 나날이 강성해져 온 명문대가들을 은근슬쩍 견제하고 자신의 친위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겁니다. 아무런 빽이 없는데도 능력을 인정받아 벼슬을 하게 된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조조에게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울러 능력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물이 바로 조조 자신입니다. 그렇기에 능력 위주의 인재 채용은 곧 조조가 지닌 어마어마한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구현령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 상황. 조조는 무언가 대안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조조의 군사 관련 친인척 우대 정책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위의 인사제도(1) : 조조의 용인술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