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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디버그 Apr 04. 2016

청춘의 덫

봄날, 드넓은 초록색깔 빛으로 물든 초원. 그 안에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오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나무가 흔들린다. 우리가 떠올리는 청춘은 힘이 있으며 푸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겨울에 뿌려진 씨가 오랜 시간 흙 속에서 자신을 가꾸고 올라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뽐내며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청춘은 자신을 희생시키고, 존재 가치를 드러내고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오늘날의 청춘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포기, 아픔, 스펙, N포세대 등이 떠오르곤 한다. 그 어느 것도 자신의 존재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 희생하여 자신이 태어난 목적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자신 스스로 남의 자양분이 됨을 자처한다. 청춘 대신 열매를 맺어 자신의 가치를 뽐내는 것은 기성세대가 되어버렸다. 지난 20일, 한노총은 노사정 폐기를 선언했다. 야당과 여당의 대립으로 인해 더뎌진 것도 문제겠지만, 그들의 행위 자체도 좋지 않게 보인다. 노동의 약자인 청년, 비정규직 등은 더욱 취업문이 좁아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노사정 합의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청춘으로 대표되는 청년들이 사회적 약자의 이미지로 변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청춘은 혁명이자 개혁이었다. 4.19 혁명, 민주화 운동 등의 주체는 학생이자 청춘들이었다. 그들은 분노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자신들이 처한 사회에 대해 냉철한 판단과 사유를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상황 속에서 군부독재를 물러나게 했으며, 자신의 죽음조차 망설이지 않고 사회를 바꿨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야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지식인으로서 이 사회에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끈임 없이 행동했다.

 2016년에 살고 있는 청년들은 정보화 물결을 타고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청년들은 누구보다 똑똑해져가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별세한 故 신영복 교수는 자신의 책 ‘담론’에서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로부터 발에 이르는 여행이라고 했다. 머리는 지식이요, 가슴은 열정이요, 발은 행동이다. 즉, 진정한 지식이란 머리에 있는 지식이 아닌 가슴에서 열정이 되고 최종적으로 행동으로 움직이는 실천임을 돌려 말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청년들은 그 여행을 마치지 못한 것 아니 실천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얼마 전 동생들과 5개월에 걸친 토론과 교육의 시간을 마무리 지었다. 마무리를 지으면서 한 그의 말은 “이 토론의 시간이 너무 좋은 것은 알고 있지만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아요. 죄송해요. 나이도 있고 학점도 따야 하고 개강하고 걱정이 되네요.”였다. 우리가 토론을 통해서 이야기를 나눈 것은 ‘현 사회에 문제점, 우리 청년들이 취업과 돈 그리고 명예만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 과연 나는 이러한 사회에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나누었다. 토론이 마무리되는 날까지도 그는 나의 말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변하지 않았다. 학업과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병행하고 그것을 통해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 힘든 것이었을까? 자신이 희생하여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토대가 되어 가는 과정은 그에게 너무 힘이 들었던 것일까?

 내가 기자가 되고자 마음을 먹은 것도 청년들 때문이었다. 2014년 겨울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들과 그녀들의 고민은 취업이었다. 충격이었다. 이제 막 수능을 마친 학생들의 고민이 취업이라니. 사회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나에게 실제적으로 다가왔던 때였다. 청춘의 대상이자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높이던 청년들은 더 이상 자신의 존재가치는 중요치 않게 된 모양이다. 

 가끔 친구들이 나에게 이 시대의 학생들과 청춘들을 믿느냐고 물어본다. 믿고 있다는 나의 강한 신념이 그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이나 보다. 그러나 문제인이냐 김무성이냐, 안철수냐 등의 메시아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아가 아니다. 바로 청춘들이다. 청춘들이 야망을 가지고, 자신들의 지식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세상은 바뀐다. ‘헬 조선’에서 포기하지 말고 싸워줘야 한다. 사회가 바뀌기를 기다리면 안 된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통찰과 이 사회를 통찰하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나는 누구보다 피나도록 공부해 기자가 되겠다. 청춘들의 목소리를 취재하겠다. 언제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청춘이자 청년들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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