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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디버그 May 11. 2016

현실 속 어린 왕자가 없어서 다행이다.

아직은 있어서는 안 된다. 영화 '안개 속의 풍경' 

 어린 시절 꼭 읽어봐야 할 책이었던 어린 왕자. 어린 왕자는 장미와 다툰 뒤, 행성을 돌아다닌다. 권위주의적인 왕을 만나기도 하고, 허영심이 많은 남자를 만나기도 하며, 술주정뱅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 그리고 가로등을 켜는 사람, 지리학자 그리고 지구에 와서 비행사를 만나고, 여우를 만나고, 뱀을 만난다. 그러나 이 여행은 안전하다 못해 어린 왕자에게 커다란 깨달음들을 주는 여행이었다. 이 여행 속에서 어린 왕자는 자신이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지 물어보며, 무엇이든지 해본다. 그런 어린 왕자를 어린 시절에 나는 무엇으로 바라보았는지는 사실 기억나지는 않지만, 큰 감동을 주는 책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아마 어린 시절 무의식적으로 여행을 통한 경험을 갈망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런 갈망을 현실로 옮겼다며 과연 어떻게 됐을까?


 영화 ‘안개 속의 풍경’은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두 남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독일에 있다고 믿는 남매는 어머니 몰래 독일로 가는 열차에 자신들의 몸을 싣는다. 그러나 기차를 타기 위해서 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남매는 표를 검사하는 차장에 의해 열차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후 경찰에게 맡겨진 남매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삼촌에 의해 자신들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어머니는 자신들을 속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아버지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은 두 남매를 다시금 여행의 길에 오르게 한다. 그곳에서 여러 가지 사람들을 만난다. 극 단원인 남자를 만나기도 하고, 그 남자의 소속 단원들을 만나고, 볼라(극 중 주인공인 남매 중 누나) 자신을 성폭행하는 트럭 운전수를 만나기도 하고, 돈이 필요한 볼라가 성매매를 권유하자 갈등하다 결국엔 양심을 지키고 마는 남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여행은 가히 안전하지 않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얼굴을 몰라 자란 남매의 그리움과 외로움, 아버지에 대한 호기심(작중 동생의 마음)은 어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른들의 눈에 남매는 그냥 신기한 아이(혼자 이렇게 다니는 것이), 자신의 욕정을 푸는 수단(트럭 운전수와 마지막 플랫폼에서 만난 남자)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단지 그들을 걱정하는 것은 단원에서 일하는 남자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 또한 남매에게 충분치 않았다. 순수하기 그지없던 볼라는 마지막에 와서 세상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바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설령 자신의 몸을 파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어린 시절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희망찬 사회를 바로 보고 자라 왔다. 포켓몬스터를 보면서 어린 지우가 챔피언의 오르는 과정을 희망차게 바라보았다. 우리가 접하던 대부분의 만화가 그래 왔다. 어린 우리도 꿈과 희망을 갖는다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고 말이다.(실제로 세상을 구하는 주인공들의 나이는 어린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리고 점차 자라나 우리는 그 꿈과 희망을 이루어 간다고 생각한다. 남매가 자장가로 택한 것은 성경 창세기의 말이다. 태초에 어둠에서 빛이, 그리고 바다에서 땅이, 해와 달과 별이, 땅에서 동식물들이. 차근차근 이 세상은 순서대로 만들어져 온듯하다. 마찬가지로 남매도 자신들이 그렇게 순차적으로 사회를 알아가고, 경험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어린 시절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영화는 그러한 진리가 거짓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다 거짓말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카메라 기법도 매우 지저분하다. 세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잘 드러난다. 순수한 아이들에게 세상은 추한 곳이라고. 그리고 그들을 지켜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부가적으로 인간의 타락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어린 남매가 길을 떠난다는 것은 필시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한 번쯤 들어볼 법도 했을 터이나 아무도 그러지 않은 모습. 비단 영화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과연 현실에서도 길을 떠난 아이들을 친절로만 대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자신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인가? 이미 우리는 후자의 모습을 조금은 변형된 모습으로 보아왔을 것이다. 돈벌이를 위해 인간의 건강 따위는 무시해버리는 어떤 기업의 모습에서 그리고 돈으로 인해 학자로서의 존엄성과 윤리를 저버리는 어떤 교수의 모습 등 여러 가지로 말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어린 왕자처럼 자신의 호기심을 찾아 떠나도 아무 해가 없는 세상은 오지 못할 것인가? 아니면 나라도 만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언젠가는 소설 속 어린 왕자처럼 자신의 호기심(나는 이걸 꿈과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싶다.)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그런 세상 말이다. 영화 제목은 안개 속의 풍경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안개 속에 있는 나무를 향해 뛰어가는 남매가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마지막 장면이 아버지를 향해 뛰어가는 남매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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