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정신은 인권이며,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실천하는 것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러 왔다” 율법을 어기던 예수의 말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신이 준 ‘율법’을 오늘날의 헌법, 아니 그보다 더 목숨처럼 지켰다. 그런 사회에서 율법을 어기며 그가 외친 말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였다. 또한, 이것이 제일가는 계명이라고 선언했다. 법의 본질은 단순한 글귀가 아닌 인권임을 알았던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기록돼 있는 문구다. 오늘날 헌법의 근본도 2000년 전 예수와 마찬가지로 인권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 헌법 정신은 바다 속에 빠져 건져지지 않고, 물대포로 눈감은 자의 눈을 뜨게 하지 못하고 있다. 개헌에 대한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이 역시 인권보다는 권력의 초점이 맞추어진 외침일 뿐이다. 지금의 헌법은 인권이 배제된 불완전한 상태다.
“헌법을 파괴, 유린한 자들을 찾아낼 것입니다” ‘반헙법행위자 열전 편찬’ 한홍구 교수가 주축이 되어 오늘날 헌법을 온전케 하려는 운동이다. 친일을 청산하지 못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회. 그래서 인권이 권력 앞에 무기력해지며 이를 당연시 하는 사회 속에서, 헌법을 파괴 유린한 자들의 이름을 세상에 알려 헌법의 정신을 바로 잡겠다는 의도다.
“평화박물관에 평화를” 한홍구 교수가 이사로 재직 중인 평화박물관에서 들리는 메아리다. 이곳은 평화라는 단어 대신 ‘전횡’, ‘사유화’, ‘부당해고’ 등의 문구로 뒤덮였다. 한쪽에선 부당해고와 공익단체의 사유화, 반대편에선 업무태만으로 정당한 해고였다는 주장이다. 학생들의 공부 열기로 가을바람을 데워야 할 대학 강의실에서 몇몇 사람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아닌 한홍구 교수의 제자들이다. 누구의 잘못이냐를 떠나 문제제기를 한 자의 인권이 철저히 무시되는 것에 대한 제자들의 촉구다.
율법을 온전케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이 울림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통찰때문만은 아니었다. 존재만으로 돌에 맞을 수밖에 없던 창기들과 어울리고, 천한 직업이라 일반 사람은 손조차 대기 싫어하는 세리들과 같이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의 인권을 존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처럼 헌법이 인권의 정신을 되찾기 위해선 자신의 집부터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