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이 아닙니다.
사진 출처: 덕혜옹주 포스터
조선 아니,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역사 속 그 어떤 공주보다 비참하다고 말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존재. 세상을 알기 전 나라를 잃었으며, 자신의 아버지이자 한 나라의 황제가 독살당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영화에서 드러나는 것 이상으로 일제에 친일 행위를 강요받았을 것이다. 한 나라 황녀의 입장으로 겪을 그녀의 엄청난 고통은 범인인 나는 도무지 상상이 안 될 정도다.
처음 이 영화를 보자고 했을 때, 솔직히 보기 싫었다. 이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가 기준이 아니었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나는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무의적인 인식이 있으므로, 이 영화를 보면 울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울었다. 옆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었으면, 아마 크게 울었을 것이다. 슬퍼서? 아니 짜증 나서 말이다.
광복. 영화 속에서도 광복을 위해 독립군이 싸웠으며, 노동자 아니 노예로 끌려온 조선인들도 광복을 그토록 염원했다. 그 무엇이 스스로 죽음을 각오하고 폭탄을 던지게 했으며, 총에 맞아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자에게 소매 속 태극기를 펼칠 힘을 주었을까? 그 힘의 원천은 광복이었다.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광복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사지로 내몰고, 극악의 상황 속에서도 견디게 했을까. 광복은 그들에게 어떠한 것이었을까? 극 중에선 덕혜옹주와 영친왕을 망명시키려는 계획을 덕혜옹주에게 설득하는 과정 가운데 ‘정통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그들이 광복을 원했던 것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조선인임을 말해도 함부로 대우받지 않는 사회. 내 아들과 딸들이 조선의 말을 사용해도 멸시받지 않는 사회. 사시미를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않아도 되는 사회. 조선음식이 먹고 싶다고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 사회. 아니 덕혜옹주가 한택수와 천황가의 강요 때문에 조선인 노예들이 일하고 있던 공장에서 친일 독려를 할 때 비쳤던, 어린소녀의 손가락이 광복을 원했던 이유다. 광복을 통해 이루려고 했던 정통성 회복이란 ‘조선인 그 자체를 인간으로 대우해주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그것이 광복의 이유임을 은연 중에 알고 있기에 광복 후, 조선입국을 거부당해 미쳐버린 덕혜옹주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분노를 느낄 수 있었으며, 정신병원에서 장원을 만나 ‘10분이면 온다고 하더니, 너무늦게 왔다’는 말을 했던 덕혜옹주를 보며 울 수 있었던 것이다.
국민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덕혜옹주 한 개인의 삶이 우리를 그토록 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덕혜옹주는 천신만고 끝에 한택수의 “옹주님은 절대 조선 땅을 밟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저주에서 벗어나 조선 땅을 밟게 됐고, 자신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낙선재를 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1989년 4월 21일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덕혜옹주는 아직 살아있다. 덕혜옹주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아왔으며, 그녀의 삶을 일제가 송두리째 무너뜨렸고, 자신의 일상과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까지 잃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녀는 죽지 않고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녀의 한 맺힌 혼령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녀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삶, 자신의 일생을 일제에 의해 빼앗기고, 가족들과 친척들마저 떠나버리게 한 덕혜옹주가 우리 주변에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무려 40명이 말이다. 영화 속에서 덕혜옹주는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고국의 땅을 밟았지만, 40명의 덕혜옹주들은 광복을 허락받지 못한 채 지금도 그 날의 악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번 해로 광복 71주년이다. 이 광복은 ‘조선인이 인간으로 대우 받는 세상’을 꿈꿔온 이들의 염원이 이루어진 말 그대로 ‘빛의 회복이다’. 그러나 광복이 위와 같은 근거에 입각한 정통성이라 한다면, 아직 온전한 광복은 오지 않았다. 영화 ‘덕혜옹주’를 통해 짜증이 난 이유도 아직까지도 그 정통성에서 제외된 체 살아있는 40명의 덕혜옹주들이 있음을 실감해서다. 나는 많이울었다. 그리고 내 옆에 친구도 울었고, 온 극장이 울음 바다였다. 얼마나 울었으면 영화 끝나고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을 지경이다. 그러니 이제 덕혜옹주를 보고 운 만큼, 아직 살아있는 덕혜옹주들에게 이제 우리가 정한이 될 차례가 아닌가. 실제로 정한이 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덕혜옹주들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아주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우린 아직 살아있는 덕혜옹주들에게 정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0명의 덕혜옹주들이 이 땅을 떠나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왜 이제왔냐”는 그녀들의 말을 들을 수 있게, 정통성이 완성된 광복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