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① 대학 총장 업무추진비 내역 분석
"사회에는 소수의 악당들이 저지르는 거대한 부정부패도 있지만, 다수의 선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부정에 젖어 드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미풍양속'이란 이름으로 오가는 뇌물과 부정청탁을 뿌리 뽑자는 취지로 지난해 3월 제정돼 올해 9월부터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한해 10조 원에 달하는 한국의 접대비 지출을 줄이고, 불법결탁을 막을 수 있을지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다. 특히 이 법안은 공직자는 물론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본인과 배우자까지 적용 대상자로 삼는다. 대학 총장도 예외는 아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사립학교 교직원인 대학 총장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 원(연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받는다. 직무 관련자에게 1회 100만 원(연간 300만 원) 이하의 금품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과태료를 문다.
다만 ‘원활한 직무 수행’을 목적으로 한 경우에는 금품 상한액 내에서 주고받는 행위가 가능하다. 상한액은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이다. 총장 업무추진비는 성격상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해 사용된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지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지출 금액이 ‘3·5·10’을 넘는지 살폈다. 올해 9월부터 시행된 만큼 과거사용 내역이 기준치를 넘는다고 해도 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한해 천만 원 이상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는 대학들로서는 기존 관행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다.
학교별 지출액 차이도 비교, 분석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상급 공직자 등이 위로·격려·포상 등의 목적으로 하급 공직자 등에게 제공하는 금품’은 허용되고, 액수 기준도 없다. 업무추진비 내역 중에서도 총장이 교직원들과 동석한 자리에서 계산한 밥값, 격려금, 간담회 비용 등은 김영란법에 비춰 봐도 문제없다. 다만 지출 규모가 적절한지 따져볼 필요성은 남는다. 총장 업무추진비가 학교 공금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총신대는 2014년도(2014.3.14~ 2015.2.16 지출 내역) 총장 업무추진비 내역을 A4 용지 한 장으로 알려왔다. 총 4214만8755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는데, 기록된 사용처는 26개뿐이다. 그만큼 한 번에 사용된 액수가 크다. '외빈접대'와 '외빈접대 및 회의'로 두루뭉술하게 적시된 경우가 총 16번이었고, 지출 합계는 3929만8755원이다.
이처럼 업무추진비 내역을 받아도 사용처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한국체육대는 2015년 3635만3410원의 총장 업무추진비를 썼는데, 지출 내역을 '협의' '업무협의' '간담회' 등으로 채웠다. 가령 15년 2월 23일 ‘유관기관 관계자와의 업무협의’ 명목으로 41만2000원을 지출했지만, 어디에서 몇 명이 먹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나와 있지 않다.
지출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서울교대는 2014년 247만 원, 2015년 725만원의 총장 업무추진비를 지출했는데, 상당수가 추상적인 내역으로 채워졌다. '대학운영관련 업무 협의'(2014.09.05, 22만원 지출) '교류협력 발전방안 논의'(2015.5.30, 49만원 지출), '대학 현안 업무 관련 자문회의' (2015.12.20, 44만원 지출) 등은 어떤 행사인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운영' '교류협력' '현안' 등 수식어만 붙인 채 10~20만원 안팎의 업무추진비를 지출해 온 것이다. 업무추진비 지출이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늘어난 2015년을 보면, 유독 미사여구로 치장된 내역이 눈에 띈다. '대학 현안업무 관련 자문회의'는 2015년도에 총 3차례 열렸는데, (8.25 12만원 지출, 10.20 7만5천원 지출, 12.20 44만원 지출) 총 지출금액을 계산하면 63만5천원이다.
방송통신대 또한 2014년 3682만2539원, 2015년 3457만8960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지만 각 항목에 대학 자세한 내역은 기재하지 않았다.
지출장소, 참여인원 등 자세한 내역까지 모두 기재한 대학은 서울시립대가 유일했다. 서울시립대는 2014~2015년 총 3050만1100원을 지출했으며, 그중 식사 접대비가 3만 원이 넘는 경우는 11건으로 드러났다.
2015년도(2015.3.6.~2016.2.29.) 총장 업무추진비 내역을 보면, 서울과학기술대(과기대)는 업무추진비 중 경조환비로만 1600만원(16,081,600원)이 넘게 지출했다. 경조비와 경조환비를 합하면 1998만6600원으로, 약 2천만원에 이른다.
경조비 내역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교수, 팀장, 과장 등 학내 인맥으로 보이는 이부터 '선생'이라는 애매한 호칭도 섞였다. 명백하게 외부인인 경우도 보인다. 2015년 11월 27일에는 경조비 5만원을 지출하며 '박** 의원 빙부상'이라 적었다. 부친상, 당사자 결혼 등 인정 가능한 경조비 지출도 있지만, '장남 결혼' '장녀 결혼' 심지어 '차녀 결혼' 이나 '시부·모상' '빙부(장인)상'까지 나온다. 2015년 3월 6일부터 2016년 2월 29일까지 1년 사이 과기대 총장은 업무추진비로 80곳에 경조사비를 보냈다.
경조환비는 한층 더 애매하다. 과기대는 화환 결제가 매달 일괄적으로 이뤄진다고 밝혀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얼마짜리 화환을 보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2015년 1월 경조환 사용내역'을 보내왔는데, 성만 쓰고, 이름은 가려져 있어 누구에게 보낸 화환인지 사실상 식별이 불가능하다.
과기대 총장은 2015년 9월 16일에는 '추석명절 선물'이라며 193만2천원을 지출했다. 목록에 '추석명절 선물*69'라 적힌 걸로 보아 예순아홉 명에게 선물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지출비용을 인원수로 나누면 한 명당 2만원 수준이지만, 구체적인 내역이 없어 의문이 남는다. 설 명절에도 선물은 이어졌다. 올해 2월 1일 '설 명절 선물 발송(71건)'으로 210만8700원을 썼다. 1인당 3만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한영신대 또한 2014년 1026만6000원(추석 369만원, 설날 657만6000원)과 2015년 1387만5000원(추석 669만6000원, 설날 717만9000원)을 ‘명절 선물’ 항목으로 지출했다. 성공회대도 2015년 9월 2일 '협력기관 교장 퇴임 선물' '석좌교수 본교 장학금 기부 감사 선물' 이란 명목으로 각각 21만4천원, 34만원을 지출했다. 총장 업무추진비가 명절 선물, 경조사비 등을 챙기는 총장의 사적 ‘쌈짓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대목이다.
한영신대는 2014년 ‘교회성전 축하화환’ 15만원과 ‘사무소 개소식 화환’ 8만원, ‘국민은행 부지점장 승진 축하 화환’ 10만원 등을 총장 업무추진비로 지출했다. 그러나 학교 관련 기관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업무추진비에서 지출했어야 하는지 논란을 불러올 여지가 크다. 2014년 5월 9일 ‘회갑과 칠순 축의금’ 명목으로 지출한 50만원도 적절한 지출인지 지적받을 소지가 있다.
방송통신대의 경조사비는 2014년 817만원, 2015년 869만원에 달한다. 업무추진비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금액이다. 그 외에도 방송통신대는 다른 대학에 비해 업무추진비에서 ‘격려금’ 지출이 잦았다. 2014년 ‘경비근로자’ 4만원부터 많게는 ‘교수친목회’ 50만원 등 총 776만7150원을 지출했다. 2015년에는 802만6230원으로 늘었다.
홍익대는 업무추진비로 ‘경조사비’를 제외한 정보는 없다는 이유로 경조사비 내역만 알려왔다. 2014년(2014.3.1~12.31) 1440만원, 2015년 2060만원이다. 2016년 9월 28일부터 시작된 김영란법은 경조사비 상한이 10만원이다. 홍익대는 110건의 경조사비 중 단 23건만 10만원 일뿐 나머지는 20만원이었다. 2015년 4월 6일 ‘유관기관인사 부친 별세 조의금’ 명목으로는 2건 50만원을 지출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처벌 수위나 체포 가능성만 높인다고 부정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규범을 내면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김영란법의 효과를 설명했다. 김영란법이 투명한 업무추진을 장려하는 만큼 대학 역시 총장이 공금으로 사용하는 식사, 선물, 경조사비의 내역을 정확히 공개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 보기에 떳떳하지 못한 지출이라면 과감히 없애는 게 옳다는 뜻이다. 애초 김영란법에서 문제 삼을만한 과도한 식비, 경조사비 지출은 지양하는 것도 방법이다. 학교별 업무추진비 사용량과 내역의 차이를 눈여겨보고, 학생들이 직접 감시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 역시 대학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