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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디버그 Nov 30. 2016

정보 공개법 어겨도 강제 못해 공염불

[기획취재] ③ 정보공개청구의 의의와 한계

<이전 정보공개청구 관련 기사>

1. https://brunch.co.kr/@gorhf011/70(총장 '쌈짓돈'된 업무추진비)

2. https://brunch.co.kr/@gorhf011/71(학내 정보, 학생이 알면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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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생 A씨는 최근 공인회계사 2차 시험을 봤다. 3년째 공인회계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유독 2차 시험에서 고배를 들었다. 왜 떨어지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이번에도 떨어질까 불안하다. 그가 내린 결론은 정보공개청구. 정보공개청구 홈페이지(open.go.kr)에 접속해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2차 시험 답안’을 정보공개청구 했다. 처음엔 "시험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 및 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의신청과 행정심판을 통해 ‘문제 은행식이 아닌, 출제위원들의 직접 출제는 비공개 사유가 아니다’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 2차 시험 답안지를 받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법의 범위 안에서 누구나 필요한 정보를 요구할 권리를 보장받는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잘 모른다. 현 정부 들어서도 ‘정부 3.0’ 가치 아래 공공기관의 정보 개방을 이어간다. 그 창구가 바로 ‘정보공개청구 포털’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은 이를 얻는 방법도,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깜깜하다. 국민의 알 권리를 도모한다는 ‘정보공개청구’는 무엇인가.


20주년을 맞은 정보공개법


지난달 7일 서울시 NPO 지원센터에서 ‘정보공개법 제정 20주년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시민 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청구센터’의 주관으로 열린 토론회다. 최정민 행정학 박사와 박대용 뉴스타파 기자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모여 정보공개법에 대한 가치와 한계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날 최정민 박사는 정보공개법에 대해 “정보공개법 제정 이전엔 알고 싶은 정보내역을 청구해도 해당 기관은 답변의 의무가 없었다"며 "하지만 제정 이후로 답변이 의무화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가 높아졌다”며 의의를 설명했다. 그러나 “제정 20주년이 됐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이 제도를 알지도 활용하지도 못한다”고 안타까워하며 “교과서에서부터 이를 알리고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을 내놨다.


정보공개법 20주년 기념 토론회에 참가한 시민과, 발제 중인 최정민 박사.


정보공개청구 제도는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를 국민이 청구하거나,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다. 이 법에서 말하는 적용 대상 공공기관은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국공립 및 사립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포함한다. 국공립 기관에 대해서는 정보공개청구 포털을 통해 손쉽게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립 유치원이나 대학의 경우는 정보공개청구 포털에 등록돼 있지 않다. 신청 양식을 다운 받아 작성 후 직접 우편으로 보내거나 메일을 통해 신청해야 한다.


개방성은 민주주의 최고의 무기


민주주의가 구성원의 합리적 의사결정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면, 그 판단의 근거는 정확한 정보다. 이재근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정보공개는 국가가 가진 정보 독점권리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라고 평한다. 나아가 투명한 정보 공개는 민주주의의 걸림돌인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를 사전에 막아준다. 닐스 보어(Niels Bohr)의 “독재의 최고무기가 비밀이라면, 민주주의 최고의 무기는 개방성이다”는 말로 투명한 정보공개의 가치에 방점을 찍는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서울시 투표소 변경' 의혹을 밝혀낸 뉴스타파. ⓒ 뉴스타파


정보공개의 가치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탐사보도 전문 매체 ‘뉴스타파’도 정보공개청구로 첫 보도의 닻을 올렸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당일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홈페이지가 마비됐다. 그 사건의 배후가 한나라당임이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왜 한나라당은 투표 당일 선관위 홈페이지를 마비시켰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뉴스타파는 서울시 선관위에 ‘서울시 투표소 변경’에 관한 내역을 청구했다. 그 결과 서울시 내 투표소 중 25%가 바뀌고, 변경 이유도 엉터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뉴스타파는 이 보도를 계기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박대용 뉴스타파 기자는 “정보공개청구를 이용하면 출입처에서 받아내는 정보보다 더 질 높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정보공개청구에는 저널리즘적 가치도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보공개법 강제할 조치 마련해야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한다고 하지만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정보공개법 9조 1~8항은 비공개 대상 정보를 규정한다. 특히 2항(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정보)과 7항(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상 비밀)은 비공개 사유로 가장 많이 쓰이는 근거다. 실제 정보공개를 해야 하는 기관은 이 두루뭉술한 조항을 어떻게든 끼워 맞춰 비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허광준 오픈넷 정책실장은 “아무리 법과 제도가 좋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그 규정을 무시해도 괜찮은 여지가 있다면, 좋은 취지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는다.


정보공개에 성역은 없어야 한다.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청구센터


본인의 청구가 납득하지 못할 이유로 비공개 처분이 난다면, 이에 대한 이의 신청이 가능하다. 해당 기관이 이의신청 청구도 비공개 결정을 한다면, 행정심판을 통해 ‘비공개 처분 취소’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한계는 행정심판에서 비공개 처분 취소 판정을 받아도 해당 기관에 정보공개를 강제할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한국은 정보공개에 대한 성역이 존재하는데, 외교관계, 청와대 등이 대표적"이라며 "비단 이런 성역뿐만 아니라 일반 공공기관도 민감한 정보는 주지 않는데, 정보공개를 강제할 사항이 없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공익 위한 행정소송 비용 정부지원 필요


행정심판을 거치고도 해당 기관이 정보를 주지 않는다면, 행정소송을 낼 수 있다. 그러나 행정소송까지 간다고 해도 문제가 남는다. 만약 패소할 경우 재판 비용을 본인이 내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은 공익목적을 가지고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졸지에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박대용 뉴스타파 기자는 “개인적으로 방송문화진흥회와 소송을 진행했는데, 패소했을 때 나온 140만 원의 비용이 나를 굉장히 위축시켰다”고 털어놓는다. 이런 한계로 정보공개 행정소송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사적 이익이 아닌 공익을 위한 소송은 비용을 정부가 뒷받침해주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사회가 정보공개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비단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보공개청구센터 강성국 활동가는 “정보공개가 아직은 미흡한 수준인데, 이는 한국이 장기간 경험했던 독재 기간 동안 공공기관과 한국사회에 수직적이고 폐쇄적 위계질서가 만연한 때문”이라며 “이 문화를 천천히 바꿔가야 한다”고 들려준다.


이재정 의원이 준비 중인 정보공개법 수정안 이목 집중


조영삼 서울시 정보공개정책과장은 “정보공개제도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모든 정보 기록을 남기는 부분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 정보공개 이전에 서류 결제절차에 관한 투명성이 제고 되어야한다”는 제안을 내놓는다. 


정보공개청구 제도의 한계에 공감하는 이들과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정보공개법 수정안을 국회에 발의준비 중이다.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 발전시키는 토대가 될 실효성 있는 정보공개법이 탄생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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