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다시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단다. 소소하고 시시했던 것들이 소중해진다.
집에 있으면 빨래와 설거지, 밥 짓기를 도우며 틈틈이 공부도 해야 해서 학교 가는 것이 즐겁다던 두 아이. 봄방학 이후로 학교에 가지 못했는데 친구들과 재잘재잘 떠들던 교실이 그립고 선생님들이 생각나고 특히나 입맛에 맞던 학교 급식이 먹고 싶단다. 햄버거, 피자 등등을 집에서도 해주거나 사주지만 그 맛과는 다른 맛이 있다며 학교의 런치 레이디들 손맛을 치켜세운다.
판데믹 이후 집에만 있으며 집밥만 먹게 되고 집안사람들 만 보게 되면서 다음 끼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 중요 일과가 돼버렸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다채로운 활동이니 매끼 부지런히 챙겨 먹었고 매시간 분주했다.
헌데 지난주 집 밖을 벗어날 기회가 생겼다. 남편이 왕복 열두 시간 거리로 출장을 가야 해서 불가피하게 외박이 필요한 상황. 약속이 금요일이니 새벽에 출발해서 일 보고 하룻밤을 묵은 후 집으로 오는 짧지만 긴 외출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벽에 출발해서 고속도로를 하염없이 달렸다. 화장실을 자주 갈까 봐 물 마시는 것도 참아야 했고 여섯 시간의 운행 후 남편이 일 마칠 때까지 총 아홉 시간을 차에서 꼼짝없이 있어야 했는데도 집 밖이라 행복했다. 아침으로 치킨 비스킷 샌드위치와 음료를 먹은 게 다였지만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대여섯 시간을 달려 애팔래치아 산맥 어느 산기슭에 닿았다. 오는 중 고속도로 옆 식당에서 간단히 쌀국수 한 그릇씩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아침식사 후 열 시간 만에 먹었던 음식이라는 건 생각지도 못하고) 이제껏 먹었던 쌀국수 중 최고의 맛이라며 엄지 척만 여러 번. 시장이 반찬이었다.
날이 밝았다. 콘플레이크 몇 종류, 요구르트, 미리 준비된 오믈렛 등 간단한 조식이 나오는 곳이었는데 보름달 맛이 나는 미니케이크 하나 그래뉼라 바 하나가 들어있는 갈색 봉투를 탁자 위에 주르륵 세워놨다. 물도 생수병으로 공급하고 떠먹는 요구르트와 주스, 커피 정도 제공했다.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머무는 걸 방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 산속에서 여기저기 다녀보자 싶어 조식 가방을 챙겨 들고 후다닥 호텔을 나왔다. 호텔 프런트 직원이 서둘러 길을 나서는 게 좋다고 조언한 까닭이다.
잘 닦여진 산길을 올라가노라면 곳곳에 경치를 볼 수 있게 주차공간과 전망대가 있었다. 어찌 보면 지리산을 오르는듯하고 길가에 주르륵 주차가 된 곳에서는 한여름 계곡 옆 풍경을 보는 것도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산속엔 계속의 물을 이용한 방앗간도 있었다. 옥수수 가루를 내던 곳이라 했다. 최근까지 사용했었는데 판데믹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했다.
산속이라 먹을 데가 마땅치 않았다. 혹시나 싶어 호텔에서 즉석밥을 데워왔고 사발면 하나 뜯어 식구 넷이 스프를 뿌리고 참치캔과 조미김을 반찬으로 먹었다. 마법가루가 뿌려진 밥은 감칠맛과 매운 고추의 힘으로 정신 번쩍 차리게 해 줬고 참치는 씹는 즐거움을 바싹 구워진 김은 잘 차려진 정식처럼 느끼게 해 줬다. 그리고 즉석밥은 한국인은 밥심으로 사는 존재임을 알게 해 줬다. 밥알 하나하나가 이에 뭉그러지면서 부드럽게 목을 넘어 위장에 닿는 순간 아! 이 맛이야. 평안과 행복이 몰려들었다.
아이들도 밥심을 느꼈나 보다. 멋진 풍경을 보며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준 아빠에게 무한 감사를 보내며 이번 여행 최고의 식사에 이름을 붙이자며 한참 말한다. 뚜참라? 스밥?오참김?...
반찬이 많으나 적으나 불평하지 않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큰아이가 중학생이니 가족끼리 온전히 같은 풍경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낀다. 그래서 한솥밥 먹고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애틋해진다.
산속에서 대강 밥을 먹고 집으로 왔다. 출발한 지 서른여섯 시간만의 귀환이다. 가슴은 벅찼지만 배는 곯았던 가족들이 힘을 합쳐 저녁상을 차려냈다.
냉동실에 꽁꽁 얼려둔 해산물로 만든 한 상이다.
멍게는 녹이고 갑오징어는 데쳐서 숙회로, 연어는 연어즈케와 연어회로, 대구는 초무침으로 아껴둔 과메기도 뜯어서 한 접시. 육식파 아들을 위해선 베이컨 감자볶음.
아이들은 채소를 다듬어 씻고 식탁을 정리하고 남편과 나는 분주히 회를 썰고 차려내니 한 시간 만에 근사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감사히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