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은 하트다.

절친 인증은 깻잎으로

by 후디리

"언니, 주택으로 이사 가시면 땅 좀 주세요. 깻잎 심어서 실컷 좀 먹어보게요. 김치도 좀 담고" 동네 중국 마트에서 깻잎은 구할 수 있지만 비싸다. 그러니 깻잎 김치를 담는 건 언감생심이다. 게다가 주택으로 이사 와도 내 집이 아닌 까닭에 나눠 쓸 땅이 없었다. 깻잎 부자의 꿈은 꿈이다.


며칠 전 공짜로 수학책을 나눠준다는 지인이 있어 한 시간쯤 떨어진 이웃 도시를 방문했다. 후다닥 책을 받아 들고 근처에 사는 경이 언니한테 전화를 했더니 집에 들르라 했다. 작년 11월에 언니를 보고 7개월 만이었다.


먼 데로 운전해 와 언니한테 전화해 준 것만도 고맙다며 연신 반가워하는데 미안했다. 언니가 방문의 목적도 아니었고 또 집으로 오라고 말할 것이라 전혀 기대를 안 한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며 아이들 이야기로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언니가 뒤뜰로 나가자고 했다.

형부가 심어 둔 고추, 깻잎, 오이를 좀 따가라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와 모자를 주며 무장을 시킨다.

미안한 마음에 원래 느린 손까지 더해지니 깻잎을 한 장 한 장 모으느라 시간이 걸렸다. 헌데 뭐라도 챙겨주려 바삐 움직이는 언니의 손 앞에는 고추도 한 무더기, 오이도 한 무더기. 언니가 지나간 자리에 깻잎은 남아나지 못했다

직접 재배한 산마늘로 만든 장아찌, 오이지, 호박, 한국 오이를 주섬주섬 챙겨주는데 한 가득이다. '더 안 줘도 된다'라는 나의 말은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경이 언니를 소개받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천지로 있는 동생들 놔두고 너를 동생 삼겠냐"며 거리를 두고자 했다. '언니 해달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왜 저리 차가울까'라고 서운한 맘도 있었다. (언니는 육 남매 중 장녀다. 동생을 보너스로 더하기에는 너무 많긴 하다) 세월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알게 된 언니는 그냥 울 언니다. 한 번은 언니가 해준 집밥을 먹으면서도 "국수 먹고 싶다" 했더니 밥 먹다 일어나 국수를 만들어 내어 줬다. "두 개 다 먹고 가라".

늘 넉넉한 언니의 품은 먼 곳에 사는 동생들이 아니라 가까이 살고 있는 내 차지였다.


다음날 언니가 전화를 했다. "깻잎 김치 담았나?", "아니요." " 냉장고에 두면 깻잎 어니까 수건으로 감싸든 키친타월로 감싸든 갈무리해라", "예"

며칠 동안 오이는 깎아먹고, 호박은 쫑쫑 채 썰어 전 부치고, 오이지는 오이지 냉국과 무침으로 깻잎은 쌈 싸 먹고 전 부쳐서 실컷 먹었다. 남편은 씨앗 사러 가자고 말하고 아이들은 이미 파종시기가 지났다고 말리고. 몇 끼를 그렇게 행복과 수다로 채웠다.

그리고 깻잎이 상하기 전에 김치를 담갔다.

육수 낼 시간이 없어 시판 사골곰국 절반에 고춧가루 한 컵 반, 마늘 서른 개 편 썰고 꿀은 꿀 향이 나지 않을 만큼 최대한(진주에 계신 손맛 좋은 할머니의 비법), 참치 액젓 다섯 큰 술, 게 세 마리 액젓 한 컵, 다시마 찹쌀고추장(친정 엄마의 마법 고추장) 두 컵을 넣고 휘휘 섞었다. 매콤하고 짭짤한 단짠의 정석이다.


남편과 양념을 바르다 십여 년 전 기억이 났다. 가을 무렵 친정부모님이 집에 오셨는데 아버지가 깻잎 김치를 달게 드셨다. 더 내어드리려고 했더니 다른 반찬 먹겠다며 극구 말리셨다. 그리고 집에 가셔서 엄마한테 깻잎 김치를 담아달라고 하셨는데 비법을 물어보라고 하셨단다. 당신이 드시면 또다시 깻잎김치를 담아야 할 딸이 고생스러울까 봐 입맛만 버리고 가신 것이다.

그때 아이들 간식으로 생율을 물을 적게 넣고 갈아 끓여서 굳힌 밤묵을 즐겨해 먹었는데 찹쌀죽 끓이기가 싫어 밤묵을 곱게 갈아 양념을 만들었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김치를 담고 나니 두 통이 나왔다. 가까운 단지에 사는 교포 3세 동생에게 깻잎김치 작은 것 한 통, 오이지무침 한 통을 가지러 오랬더니 쏜살같이 달려온다. 동생네도 깻잎김치와 오이지 때문에 흥겨운 밥상을 차릴 것 같다.


깻잎 모양을 보니 하트다. 나눠주고픈 마음, 아끼는 마음 그득 담아 영글어 그런 모양새인가 보다. 귀한 깻잎으로 사랑을 나누어주고 또 사랑으로 받고 하다 보니 새삼 깨닫는다. 깻잎은 절친 인증표이다. 누구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아끼는 사람과 나눠먹는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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