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오롯이 혼자 먹는 기쁨.

짜장면을 혼자 비빌 수 있게 되었을 때

by 후디리

반지르르 윤기가 도는 까만 양념 위에 연두빛 완두콩비가 후두둑, 소복소복 쌓인 오이채가 한가득. 고소한 기름맛에 달콤짭짜르한 양념. 입으로 쏙쏙 들어가는 밥이나 국수, 라면과는 차원이 다르게 얼굴로 먹어 콧등과 양쪽뺨에 춘장 좀 묻혀줘야 제대로 먹은듯한 짜장면. 젓가락을 양 손에 똑같은 힘을 줘서 '딱'하며 쪼개는 모습은 멋진 기예와 같고 양손에 젓가락 한 짝씩 들고 골고루 면과 춘장을 비빌 수 있는 것은 자립이 가능함을 의미했고 혼자 한 그릇을 뚝딱 먹는 것은 다컸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짜장면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고 도전해볼 만한 음식이었다.


앞집과 옆집은 고깃집, 고깃집 옆은 세상 모든 물건은 다 있다는 '만물상회(구멍가게), 왼쪽옆으로는 이발소, 그 옆으로 정육점과 북경반점. 그것 말고도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조그마한 어촌의 번화가 그 중간에 우리집이 떡하니 있었다.


유난히 엄마가 바쁘셨던 날 짜장면이 먹고싶다고 하니 "가서 한 그릇 먹어라. 엄마가 이야기할께"라시며 혼밥을 명령하셨다. 그 때 내 나이 무려 일곱살. 네 살 밖에 안되는 동생은 집에서 엄마랑 있어야 하니 혼자 갈 수 밖에. 아빠는 외출중이셨던 것 같다.

평소 다림질한 옷배달이던지 나눠먹는 반찬 배달이던지 평소에 이웃가게들을 들락날락 했으니 가게문턱을 넘는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테이블 서넛있는 작은 가게지만 일곱살 아이에겐 엄청 커보였던 가게 한가운데 앉아 "짜장면 하나요"라고 주문을 넣고 젓가락 쪼개기, 면 비비기 등의 신성한 의식을 치르고 기분 좋게 짜장면을 한그릇 먹었다. 그리고 올록볼록 요철이 있는 냅킨 한 장을 들고 입을 닦으며 '내년엔 국민학교 가는데 볼에 좀 안묻혀야 할텐데'라며 나름 심각한 고민을 하며 배부름이 주는 즐거움, 혼자 짜장면을 비벼먹었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좋았던 일곱살의 어느날 오후가 추억으로 남아있다.


혼자 밥먹는 일은 친구가 없어 외로운 일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오롯이 나 혼자 전부를 누릴 수 있는 극강의 만족감으로 각인이 된 까닭에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혼밥도 잘 먹으러 다닌다.


무슨 연유인지 내가 그토록 애정했던 짜장면집이 문을 닫게 되었고 화교출신 주방장 아저씨는 떠나시기 전 엄마에게 짜장볶는 법과 중국식 비빔국수 만드는 법을 알러주고 가셨다.


그 이후로 장마철이 시작되어 손님의 발걸음이 뜸하고 하지감자가 나오고 애호박이 만물상회 앞에 수북히 나오면 엄마는 짜장을 볶으셨다.


위에서 보이는 채소에 감자 한 개, 양파 한 개 더 썬다.

사자표 춘장 하나를 두 배 정도의 식용유에 중불로 십여분 볶는다. 기름을 따로 덜어둔다.

다른 팬에 삼겹살은 채썰어 갈색이 되도록 익혀주는데 이 때 나온 기름에 채소를 볶고 고기는 토핑용으로 빼놓는다.

미리 썰어 둔 채소를 삼겹살 기름에 볶고 볶아둔 춘장을 넣어 양념과 한데 어우러지게 한다.

설탕 두 숟가락 푹, 치킨스톡, 굴소스, 미원 조금씩 넣어 간을 맞춘다.

물 넣고 좀 끓인 후 녹말물을 넣으면 짜장소스, 그냥 내면 간짜장이다.

장을 보고 와서 늦은 점심. 후다닥 만들어 한 끼 해결하려는데 짜장 속 물컹한 고기가 싫다는 옆지기의 불평에 삼겹살을 토핑으로 올렸다(내가 최초?). 신의 한 수 였다. 짜장면으로 즐기려면 짜장밥을 먹을 때 보다 간이 약간 더 되어야 더 맛있게 느껴진다.


바쁘셔서 그랬겠지만 세상 쿨한 엄마덕분에 웃기는 짜장 같은 아이의 파릇한 싹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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