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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고리 Sep 03. 2022

오늘도 나는 산책을 간다

산책인지 러닝인지 조깅인지 모를 산책길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산책이라는 이름의 행위를 하게 된 것은.


분명 나는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인간이었다. 아니, 인간이다. 집순이이자 방순이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쉬는 날에는 밖에 나가는 일정을 일부러라도 잡지 않는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귀찮고 피곤하고.... 음.. 피곤하다. 이런 내가 요즘 산책을 간다. 



커리어 전환을 하겠다고 일을 쉬면서 집에만 있다 보니 점점 게을러졌다. 어디 가야 할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니 수면 시간만 한없이 길어졌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찾겠다며 읽기 시작한 독서는 점점 더 나를 어딘지 모를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목적 없이 책 속을 헤매다가 멍하니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러면 안 됐다. 정신 차리자! 운동이 필요했다. 원래는 조깅을 하겠다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러니까 산책이 아니라 조깅을 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하지만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돌돌 만 채로 침대 위에서 생활하던 내가 갑자기 밖에 나왔다고 조깅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조깅은 국어사전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조깅 :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기의 몸에 알맞은 속도로 천천히 달리는 운동.        

그래서 그냥 걷기로 했다. 설렁설렁. 



나의 산책길은 보통 2가지의 옵션이 있다. 하나는 집 앞 안양천의 조깅로를 그냥 쭉 걷는 것이다. 이 길은 사람이 많다. 선선한 저녁때가 되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와 줄을 지어 걸을 정도이다. 운동의 기능을 갖춘 산책이 목적인지 그냥 마실 수준의 산보인지 헷갈릴 정도의 속도로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움직임의 뇌과학>에서는 걸으면서 하는 사고가 얼마나 창의적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데, 정말 그랬다. 걸으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드는데, 택도 없다고 생각되는 작은 생각으로 시작하여 뭔가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로 발전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서 다들 줄지어서라도 걷는구나. 이렇게 산책으로 변질된 나의 조깅을 합리화하면서 나름 즐겁게 걷는다. 느리 적 느리 적. 


조깅로





가끔 사람들이 없을 때는 종종 뛰는 사람들도 본다. 움직이기 싫어하면서 그런 장면을 보면 이상한 경쟁 심리가 발동한다. 흐느적거리며 좀비처럼 걷다가 갑자기 우사인 볼트처럼 뛰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구십팔, 구십구, 백..... 백보를 뛰고, 백보를 걷고, 백보를 뛰고, 백보를 걷고... 원래 안 뛰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5분도 못 뛰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뛰고 나면 참 이상한 것이 기분이 좋다. 산책만 하고 들어갈 때보다 러닝을 하고 들어갈 때의 기분이 더 상쾌하다. 땀을 흘려서인가. 



다른 옵션은 낮에 나오는 경우에 집 근처 예술공원의 숲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천 길을 따라가면서 오리 가족과 왜가리와도 인사하고, 예쁜 꽃들과 구름의 사진도 마구마구 찍는다. 이렇게 걷다 보면 좋아하는 숲의 나의 벤치가 나온다. 노란 벤치에 앉아 혼자 하늘을 쳐다보다가 전망대에도 올라가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소나무 숲 속 의자에 가만히 앉아 나무들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며 햇빛멍도 한다. 이 길은 그야말로 산책길이다. 


 

조깅로에서 만난 오리 친구



이렇게 나는 산책인지 조깅인지 러닝인지 모를 산책을 거의 매일 나온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하니 새벽 일찍 나와야겠다. 걷기를 할지, 가볍게 뛸지, 우사인 볼트 따라 하기를 할지 즐거운 고민을 시작해봐야지. 



#백일백장 #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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