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3일 차 2017. 6. 6. 서울 강변역-성남시–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41.7km)
국토종횡단 58살 청년의 도전은 이제부터구나 라고 생각하고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걸으니까 뭉쳤던 종아리 근육이 풀렸는지 다행히 나의 두 다리는 자연스럽게 걷게 되었다. 혼자서 걷는 것이 고독한 여정이지만 걸을 때는 오히려 고독감이 덜하다. 두 다리는 계속해서 디뎌야 하고 눈과 뇌는 주변 환경과 자기 신체에 수시로 반응해야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걷는 과정은 내 맘속에서 끊임없이 대화가 이뤄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독은 오히려 쉴 때 더 밀려온다. 그러니 나는 지금은 계속 걸어야 했다.
예정된 답사지나 걷다가 우연히 보게 되는 문화유적지 같은 것들이 걷는 방향에 있다면 왠지 횡재한 느낌이 든다. 멀리 갔다 다시 돌아 나와야 한다는 것은 장거리 도보여행자에게는 그것이 아무리 가치 있는 보물이라 하더라도 가는 방향과 다른 길로 더 걸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거기 가는 걸 주저하게 만들었다.
정충묘(精忠廟)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3번 국도인 경충국도 길가에 바로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눈에 뜨이지 않았다. 나도 차를 운전하며 갔다면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으리라. 광주시 초월읍 대쌍령리 도로 옆 몇 미터 위 산기슭에 있는 작은 사당인 정충묘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갖혀 있던 인조를 구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올라와 이곳 쌍령에서 청나라 군사들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허완 등 충신 4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나는 오늘 서울 잠실 석촌호수 삼전도에서 남한산성을 거쳐 이곳 쌍령리로 이어지는 병자호란 역사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약 380여 년 전 위기에 처한 왕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던졌던 충절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한참 동안 길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광주문화원과 대쌍령리 주민들이 협력하여 매년 음력 초사흗날에 이들의 충절을 기리는 ‘정충묘 제례’를 올린다니 그나마 죽은 원혼에 대한 후손들의 예의 아닌가 싶었다.
나는 요란한 것보다는 소박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기에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그런 곳을 보면 더욱 정이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대개 그런 곳은 누구의 관심도 없이 관리나 보존이 허술하여 팽개쳐져 있는 곳이 많다. 내가 그런 곳을 보며 삶의 깊이를 깨닫고 하는 건 아마도 드러내며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의 성격 탓도 있으리라. 그래서 나는 어딜 걷다가 켜켜이 돌이 쌓여 있는 이름 없는 성벽을 만나거나 허허벌판에 그냥 자연스레 흩어져 있는 강화도 고인돌을 봤을 때도 그들에게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들에게서 마치 오래된 친구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고인돌은 강화도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정충묘에서 3번 국도를 조금 더 걸어 내려가면 광주시 초월읍 산이리 아파트 단지 들어가는 길 입구에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가 있었다. 길가 도로 옆에 있기에 그냥 지나치게 십상이다. 설마 이런 곳에 이런 게 있을까 싶을 정도의 자리에 있으니까. 나도 이 지석묘를 바로 옆에 두고 그냥 지나쳐 아파트 안쪽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 산속을 헤매다 다시 돌아 나왔던 참이었다. 본래는 아파트 안쪽 산에 있던 것인데 아파트 단지가 조성하며 이곳 길가로 옮겨놨다는 설명이 꺼져 있었다. 덮개돌 크기도 엄청나고 무게가 28톤에 달한다고 하니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옮겼을까 하는 궁금증부터 생겼다. 그리고 오래전에 강화도에서 본 고인돌이 생각나긴 했는데 청동기 시대의 경기도 광주와 강화도를 내가 아무리 연결 지어 보려 해도 짧은 지식에 연결이 되질 않았다. 그렇지만 고인돌이라는 어감이 주는 오랜 역사의 무게감 때문인지 남들에겐 무덤덤하게 보이는 이 커다란 돌이 나에게는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다.
이 지석묘는 이곳 사람들에겐 천덕꾸러기인지 지석묘 주변이나 받침돌 위에 올려 진 덮개돌 사이의 납작하고 널찍한 땅바닥 공간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이 지석묘는 국토횡단의 강화도를 더욱 기다리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의 국토종단이 끝나고 곧 바로 이어질 국토횡단을 강화도에서 시작할 계획인데 그때 강화도 고인돌을 답사하며 먼 두 지역 경기도 광주와 강화도를 현실에서 연결해 보며 맘껏 상상하고 지금 본 산이리 지석묘 기억도 떠올려 볼 것이다.
역사 공부는 이 정도에서 멈추고 나는 오늘 목적지 곤지암읍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늘이 출발 3일 차, 광주시 초월읍 산이리 지석묘가 있는 이곳이 출발지 임진각으로부터 100km 되는 지점이다. 국토종단 거리 560km에서 100km 왔는데 누구는 고작 그만큼? 누구는 벌써 그만큼? 그럴 텐데 나는 벌써 이만큼이다 라는 생각이다. 100이라는 숫자에 스스로 감동하여 여기가 종착점 인양 나는 산에 대고 혼자서 소리를 질러봤다. ‘100km를 걸어서 나 여기에 와 있다’고.
이제 목적지 곤지암읍까지는 5km 남았다. 아침 7시 반 집을 나와 36km를 걸어왔다. 1.5km 정도 더 걸으니 우측에 곤지암도자공원이 보였다. 곤지암은 이천, 광주와 함께 2001년 세계 도자기엑스포가 열렸던 3대 지역 중 한 곳이다. 도자공원은 길가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있기에 잠시 구경할 겸 공원 안으로 들어가 봤다. 날씨가 흐리고 저녁시간이 다되어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토야(TOYA)라는 귀엽게 생긴 엑스포 마스코트가 나를 보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토야는 땅 위의 생물은 모두 흙으로부터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우주의 원리를 담아 흙토(土)와 장난감의 영문(TOY)을 합성해서 만든 이름이라는데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토야의 표정만큼은 해맑아서 보는 사람의 맘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오니 날씨가 흐려 아직 해가 넘어갈 시간은 아닌데도 사위가 어두컴컴해지고 있었다. 때마침 가랑비도 흩뿌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나의 걷는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배낭의 무게도 점점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나는 지금 걷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걸을 바에는 빨리 걸어 목적지 곤지암읍에 도착해서 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두 다리가 힘에 부쳤지만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디뎠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당연히 신체는 쉬고 싶어 한다. 지금은 가랑비도 뿌리고 잔뜩 찌푸린 날씨 탓에 어둠도 더 빨리 찾아오니 내 몸도 쉬고 싶은 거 같았다. 이런 신체 상태에서는 두 다리의 반응은 당연히 느리다. 머리에서는 빨리 걸으라고 재촉하지만 두 다리는 천천히를 외쳤다. 목적지까지 3km밖에 안 남았는데 지난 이틀간에 느끼지 못했던 피로감이 느껴졌다. ‘다 왔어 다 왔어 ‘라고 중얼거리며 걸어 곤지암읍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덧 저녁 7시. 가랑비만 흩뿌렸지 큰 비가 오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 41.7km를 4.2/1h (식사, 쉬는 시간 제외)로 걸었다. 40km 이상을 처음 걸으며 나를 테스트했던 오늘, 몇 km 안 남기고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곤지암읍은 경기도 광주시에 속한 작은 읍이다. 나는 사전 조사에 의해 읍내에 하나 있는 사우나에 묵을 계획이었다. 곤지암의 이름이 특이하여 도보여행 전 찾아봤었다. 곤지암터미널 바로 뒤에 곤지바위가 보였다. 이 바위를 뚫고 400년 된 향나무가 자라고 있어 신비감을 더해 주는데 이 바위에는 선조 때 장군 신립에 대한 전설이 얽혀 있고 곤지암의 지명도 이 곤지바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곤지암하면 소머리국밥만 떠오르는 나의 무지가 창피했다. 읍내는 온통 소머리국밥집 천지였다. 소머리국밥으로 저녁을 먹고 오늘의 숙박지인 인근 사우나로 갔다.
이곳 사우나는 한마디로 시골 게스트하우스였다. 목욕탕으로는 낮에만 영업하고 밤에는 월 단위로 묵는 사람들이 마치 고시촌처럼 이용하며 잠만 자고 하는 곳이었다. 밤 8시 넘어 들어갔더니 주인이 욕탕은 물을 다 빼고 청소해놔서 세면대에서 씻어야만했다. 내일 아침도 8시 넘어야 된다니 나는 사우나에 왔지만 씻는 건 포기해야 했다. 세면대에서 대충 세수하고 짐을 챙겨 한쪽에 두고 쉬고 있는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지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이 한둘씩 들어왔다. 그들은 오래 묵어 그런지 서로들 친한 사이였다. 그중에는 젊은 외국인도 한 명 보였다. 옆 사람에 물어보니 러시아 사람이었다. 모두들 무슨 사연이 있어 여기서 이렇게 사나 궁금했지만 고단한 삶이 느껴지는 그들에게 묻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 나는 먼저 들어가 잠자리 매트를 폈다.
누워서 오늘 걸어왔던 길을 생각해 봤다. 잠실, 성남, 광주, 곤지암.. 조선 인조, 청 태종, 삼전도, 남한산성, 정충묘의 41.7km 길. 그리고 내일은 55.4km. 내일의 일기예보에 장거리를 생각하니 부담이 확 밀려왔다. 내일 제발 큰비나 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하며 내일은 평소보다 일찍 출발해야하기에 서둘러 잠을 청했다.
사우나에서 잘 때 가장 난감한 것은 코 고는 소리다. 잠깐 잠이 들었나 싶은데 술 냄새를 확 풍기며 들어온 사내가 심하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코 고는 소리가 화통을 삶아 먹은 듯이 큰데도 다른 사람들은 그 소리에 익숙한지 다들 잘들 잤다. 나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뒤척이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엊그제 출발 첫날 고양시 공릉천변공원에서 풀벌레 소리 들으며 자연 속에서 잤던 기억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불면의 밤이었다. 하지만 24일간의 국토종횡단에서는 어떤 돌발 상황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것. 불편한 잠자리에서 익숙하게 자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 것도 내가 찾아야 할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