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강변역-곤지암] 다시 집을 떠나며(1)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3장 다시 집을 떠나며(1)


3일 차 2017. 6. 6. 서울 강변역-성남시–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41.7km)



오늘 떠나면 12일 뒤에나 집에 돌아온다. 왠지 긴 이별을 하는 느낌이 들어 오늘은 좀 늦더라도 아내, 두 딸과 함께 아침을 같이 하며 좀 더 있고 싶었다. 그러니 당연히 출발이 늦어질 수밖에. 아내는 평소와 같이 아침을 준비했다. 식탁 너머 창가를 통해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고 우리 넷은 아침 식사를 하며 짧은 시간의 대화를 나눴다. 나는 식사 중에도 되도록이면 걷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왜냐면 괜히 또 걱정하는 아내의 표정이나 그런 표정을 읽고 떠나는 내 맘도 편치 않기 때문이었다. 화제를 돌려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식탁에서의 아침 대화는 길지 않았다. 나는 눈을 들어 식탁 너머 창가에 비치는 햇살이 오늘 나를 괴롭힐 정도로 따가울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 오늘 아침 우리 넷은 별 말이 없었지만 우리 가족은 충분히 대화했다 맘으로. 우리 집의 일상이었다.

오늘은 현충일이라 나를 제외한 셋은 여유로운 아침이다. 내가 먼저 집을 나섰다. 아침 7시 반, 계획보다는 한 시간 늦은 출발이었기에 나는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나는 잠실철교를 지나 잠실사거리를 거쳐 성남 방향으로 걸어 갈 계획이다. 잠실철교에 서니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위용을 뽐내듯이 하늘로 솟아있다. 매일 보던 것도 생각이 틀리면 달리 보이나 보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던 555m의 높이가 하늘을 뚫을 듯 더 높아 보였고 오늘따라 유난히 솟구쳐 보여 그 하늘의 끝을 보며 걷는 나는 비장한 각오마저 들었다. 오늘 오후부터 날씨가 흐려 곳에 따라 비도 뿌리고 내일은 중부 지방에 꽤 많은 비가 온다니 걱정이 앞섰다. 이번 도보여행에서 비를 피하고자 일정을 결정했지만 완전히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내일이 바로 비를 맞고 걸어야 하는 첫 번째 날이 될 거 같았다. 하지만 미리 걱정하느니 오늘의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는 게 낫겠지 싶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


집에서 아침밥도 든든히 먹었겠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잠실 사거리 방향으로 걸었다. 평소에 붐비던 잠실 사거리는 현충일 쉬는 날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차량도 적고 사람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잠실 사거리를 지나 석촌호수 방향으로 걸었다. 아침 출발이 좀 늦었기에 그냥 지나쳐 가야 했지만 발걸음은 어느덧 석촌호수를 걷고 있었다. 석촌호수는 인공호수인데 롯데월드 와서 놀고 쇼핑하다 그냥 가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도심 속 쉼터로 호젓하게 걷고 쉬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롯데월드나 롯데월드타워와 한길 두고 인접해 있어 바쁘게 걸었던 그곳을 벗어나 몇 발짝 걸어 석촌호수에 발을 디디는 순간 누구나 자연스레 발걸음은 느려지게 된다. 석촌호수는 아내와 연애시절 많이 왔었던 단골 데이트 코스였다. 두 딸들이 어렸을 때는 롯데월드에 놀이기구 타러 왔다가 석촌호수에서 집에서 싸온 김밥을 먹곤 했다. 오래된 추억이지만 가족이란 늘 내 맘속에 가장 큰 기쁨이고 희망이다. 오늘 아침 떠나는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작은 딸이 “아빠 사랑해” 속삭이는데 나는 눈물이 날 뻔해서 돌아다보지도 않고 “ 응 나도” 하고 그냥 계단을 내려왔다.

아침 운동 나온 사람들에 섞여 추억을 더듬으며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오던 나는 석촌호수 한쪽에 있는 삼전도비를 유심히 바라다 봤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청 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하며 항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청 태종이 세운 비석으로 굴욕의 역사를 담고 있었다. 나는 오늘 인조가 걸어 왔던 그 길을 반대로 걸어 남한산성 방향으로 걸어 갈 예정이다. 이곳 석촌호수에서 인조가 피신하여 47일간 머물렀던 남한산성 행궁까지는 대략 15km정도. 청 태종에게 항복하며 이 길을 걸어왔던 인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옛날 패배의 길이 지금 나에게는 도전의 길인 것이다.

삼전도비1.jpg 잠실 석촌호수 삼전도비


잠실에서 성남으로 이어지는 길에 몇 백 년 전의 기억은 없었다. 그저 차량만 많고 번잡한 도로일 뿐이었다. 나는 빨리 걸어 빠져나가고 싶은 맘에 가끔은 신호등도 무시하고 계속 빠르게 앞으로만 걸어갔다. 이 도로는 딱히 어디 볼 것도 없는 여느 도심 속 도로와 다름없는 평범한 자동차도로였다. 성남시 복정동사거리에 이르러 계속 직진하면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의 연속으로 모란시장, 분당 방향이 된다. 하지만 이 길은 재미없게 계속 걸어왔던 길의 연장이었기에 나는 좌측으로 돌아 남한산성 방향으로 걸었다. 이 길은 예전엔 산성로라 하여 차량도 뜸하고 걷기도 좋았는데 지금은 좌측에 위례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갓길 도로가 파헤쳐져 있고 차량 통행도 많아 걷기에는 매우 불편했다. 복정 전철역을 지나 좌측의 위례신도시를 끼고 걷는데 남한산성 방향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지루한 오르막이 시작되는 길이었다. 산성 전철역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성남 시가지이고 좌회전을 하면 남한산을 끼고 성남시를 외곽으로 도는 도로다. 나는 남한산성 가는 길로 걸었다. 여기서부터 성남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남한산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서울을 벗어나 남한산 초입 성남시 이곳까지 12km를 아침길로 단숨에 내달아 걸어온 것이었다.

남한산을 끼고도는 성남의 외곽도로는 갓길도 없고 걷는 사람이 없어 걸어도 되는 길인지 헷갈릴 정도로 걷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오래전 남한산성 놀러 갔다가 잘못 내려와 한번 걸었던 기억이 있어 오늘도 그냥 무식하게 걷는데 성남시 산성동 황송터널 지나서는 갓길도 없어 매우 위험해서 각별히 주의를 요했다. 나는 속도보다는 안전을 생각하며 5,6km의 이런 길을 천천히 걸었다. 그나마 차량통행이 많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남한산성을 끼고 걷는 성남외곽도로


안전하게 걸어 성남 외곽도로를 빠져나온 나왔다. 좌측으로 걸어 갈마터널을 지나면 경기도 광주시다. 광주시로 접어들기 전 우측 저 멀리 산속에 화장터가 보였다. 그곳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곳이다. 성남시 화장장 영생관리사업소. 54살에 죽은 나의 큰 형님.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죽었다. 젊어서부터 세상을 비관하며 살았기에 늘 얼굴이 어두웠던 큰 형님, 어렵사리 한 결혼은 가장의 무능력으로 인해 내 어머니는 큰 형의 생계를 어머니의 빚으로 메꿔주었고 그 빚으로 인해 어머니는 형보다 더 큰 고통을 안아야 했다. 우리 사회에서 혈육이란 그랬다. 넉넉지 않은 집에서 한 사람의 불행은 때때로 온 가족을 고통으로 내모는 악성 전염병과도 같다. 10년 전 그날 밤 11시경 큰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새벽 1시경 이곳에 와서 화장시간을 예약하며(그 당시 이곳은 인터넷 예약이 시행되지 않았다) 이제야 혈육으로 맺어진 고통이 끝나는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나는 그때 혈육이라는 것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느끼며 삶과 죽음이 이렇게 현실에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성남시 화장장


성남 외곽도로를 걸으면서는 인도라곤 딱히 없는 길이다 보니 먹을 곳도 마땅하질 않았다. 배낭에 있는 초코바로 우선 끼니를 대신했지만 시간은 어느덧 오후 1시를 넘기고 있었다. 갈마터널을 지나서부터는 경기도 광주시. 우측 도로변에 식당들도 가끔씩 보였다. 나는 점심으로 갑자기 짜장면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걷다 보면 갑자기 뭐가 먹고 싶은 때가 있다. 삼시세끼 집밥과 때맞춰 먹어야 하는 식사시간에서 해방되어 아무 때나, 아무거나 먹고 싶은 자유를 느끼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짜장면에 대한 기억이 많다. 짜장면은 우리 어린 시절에는 생일날에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짜장면과 그 많은 추억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가끔 가족들과 함께 중국음식점에 갈 기회가 있으면 탕수육이나 깐풍기 같은 요리보다는 짜장면 잘하는 집인가를 먼저 알아보고 간다.

맛있는 짜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다 보니 기다림의 배고픔은 참을 수 있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짜장면 간판을 찾으며 계속 광주 방향으로 걸었다. 가끔 차를 타고 도시 외곽을 가다 보면 수타면 짜장 짬뽕이라는 큰 간판이 보였고 지금 걷고 있는 경충국도 도로변 어딘가에서 본 듯하기도 했다. 곱빼기 짜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리니 다른 식당은 눈에도 안 들어왔다. 짜장면을 기다리며 점심을 거른 채 얼마를 더 걸었는지 25km는 족히 걸어온 듯했다. 배고픔에 그냥 아무거나 먹을까 하다가도 ‘여기까지 배고픔을 참았는데 그럴 순 없지’ 하며 또 걸었다. 드디어 커다란 입간판이 보였다. 짬뽕 전문점. 그럼 짜장면은? 다행히 짜장면도 있었다. 시간은 오후 3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짜장면 하나 먹으려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1시간 반을 더 걸었던 것이었다. 지금 어떤 짜장면이 맛이 없겠는가? 짜장면 곱빼기를 폭풍 흡입하고 잠시 숨을 고르며 여기가 어딘가 검색을 해보니 서울 강변역으로부터 27km를 걸어온 경기도 광주시 초입의 삼동이라는 지역이었다. 한 시간에 4.3km를 걸었으니 꽤나 빠른 걸음으로 걸어온 셈이었다.

아무리 아침을 집에서 든든히 먹고 출발했다지만 오후 3시까지 먹지도 쉬지도 않고 27km를 걸은 것은 무리가 있는 걷기였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지난 이틀 걸었던 거리보다 많은 41.7km, 하루에 40km 이상을 걷는 도전의 첫날이었다. 오늘 걸어야 할 먼 거리에 대한 정신적 압박이 나도 모르게 빠른 걸음걸이를 재촉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목적지 광주시 곤지암읍까지는 15km가 더 남았다. 짜장면 집에서 오래 앉아 쉴 수가 없었다. 시간이 이미 3시 반을 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기예보가 맞다 는 듯 잔뜩 날씨가 흐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다. 날씨까지 그러니 맘은 더욱 급해졌다. 서둘러 배낭을 메고 일어서려는데 순간 다리가 펴지질 않았다. 근육이 뭉쳤는지 종아리에 경련이 일어났다. 조심스럽게 무릎 굽히기를 몇 번하고 일어서긴 했는데 종아리 뻐근함은 남아있고 흐린 날씨에 혹시나 비가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더하니 맘만 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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