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고양시-강변역] 서울 서울 서울(2)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2장 서울 서울 서울(2)


2일 차 2017. 6. 5. 경기도 고양시 공릉천변 공원-광화문광장-서울 강변역 (35.1km)


서대문독립공원에서 한 시간 정도 쉴 땐 몰랐는데 사직터널을 지나 서울 중심 한복판으로 들어오니 빌딩숲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열섬현상으로 한낮이 훨씬 뜨겁게 느껴졌다. 오늘 서울 도심의 한낮 온도는 33도를 넘나들고 있었다. 한낮의 광화문광장은 외국인 관광객 몇몇을 빼곤 거의 사람이 없었다. 하긴 이 땡볕에 허허벌판의 광화문광장에 서 있는 사람이 정신 나간 사람인 게지. 나는 그 정신 나간 한 사람이 되어 광화문광장의 한 복판에 섰다. 그 순간 나는 착각에 빠져 들었다.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서 있는 거지? 그만큼 광화문의 한낮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낯 설은 곳이었다. 나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 아랑곳하지 않고 나만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듯 ‘야호~’ 하고 소리를 질러봤다. 빌딩에 반사되는 울림은 없고 그저 오가는 차 소리에 그 소리마저 금방 묻혀 버렸다. 태양이 나를 빙빙 돌리고 나는 태양을 따라 돌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광화문, 미국 대사관, 교보빌딩, 세종문화회관 다시 광화문 그 뒤의 청와대 기와.. 나는 돌며 보다가 어지러움에 쓰러질 뻔했다. 이건 어쩌면 어지러움이 아닌 도심 한복판에서 느끼는 고독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서 혼자라는 게 싫어 이곳을 빨리 탈출하고 싶어 졌다. 더위에 더 오래 광화문광장에 서 있을 수도 없었다.

한낮의 광화문 광장


광화문까지 걸어옴으로서 나는 오늘 걸을 거리 35.1km의 반을 이미 넘겼다. 매일 바쁘게 걷던 서울시내 한복판을 오늘 나는 전혀 다른 옷차림과 전혀 다른 생각으로 걷고 있었다. 종각, 시청, 명동.. 군중 속에서의 나의 행색은 마치 배낭여행 온 어느 외국인처럼 보였다. 한국 사람이 야영배낭을 메고 서울 도심 한복판을 다니는 경우는 흔치 않은 모습이기도 했다. 서울에 사는 나는 지금만큼은 서울 속에서 이방인이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나만의 시간을 즐기며 걸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나의 행색이 좀 남다르다 할지라도 나에게 관심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나 혼자 생각하여 누가 날 쳐다보지는 않나 싶은 거였다. 남을 의식하는 나 자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슬프게도 우린 너무나 남을 의식하며 살고 있고 때로는 그게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번잡한 명동 한복판을 지나 명동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내가 직장 생활하며 머리가 복잡하여 쉬고 싶을 때 가끔씩 들렀던 곳이기도 했다. 고딕식 건물의 웅장함이나 종교적 경건함도 그 이유긴 하지만 그보다는 성당 한쪽에 심어진 나무 때문이었다. 그 나무는 김용택 시인 생가 마당에 있던 단풍나무를 명동성당 한편에 옮겨 심어 놓은 것이었다. 나는 다시 그 단풍나무가 보고 싶어 졌다.

"우리 반 여름이

가을에도 여름이

겨울에도 여름이

봄이 와도 여름이

우리 반 여름이

여름 내내 여름이" (김용택 시집에서)

나무를 보며 김용택 선생님과 그 반 아이들을 생각했다. 이 시는 우리 두 딸 초등학교 시절 김용택 시집에서 재밌게 읽었던 시였다. 나는 이 시를 어린 두 딸보다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동경했던 중년의 남자는 여름이를 읊조리며 그 시절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질 때 가끔 나는 이곳에 와서 내 마음속의 순수, 여름이를 만나곤 했다.


명동성당 단풍나무


나는 서울 시내를 관통한 후 청계천을 따라 걷기로 했다. 도심 한복판에 냇가를 따라 걷는다는 건 한껏 다른 정취를 느끼게 했다. 한낮이지만 청계천에는 시원한 물을 찾아 잠시 쉬는 넥타이 차림의 회사원, 여유롭게 산보하는 사람, 외국인 관광객 등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나는 청계천을 따라 동대문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런 시원스러운 냇가가 있다는 건 대단한 즐거움이다. 시멘트로 덮여 있던 청계천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 건 2005년 10월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이 서울시 정책사업의 하나로 추진했던 것이었는데 집권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등 말이 많았다. 암튼 복원된 청계천이 시멘트 도시 이미지를 벗어내고 자연의 이미지를 가져온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덕분에 나도 지금 이렇게 도심 속 자연을 걸을 수 있는 거고.

도심 속 여유 청계천


청계천을 걷던 나는 동대문운동장 전철역 방향으로 걸어 나와 다시 좌회전하여 왕십리 방향으로 걸었다. 명동에서도 많이 보이지 않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동대문 이곳에도 많이 안 보이니 사드로 촉발된 한중관계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걸어 도착한 왕십리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뉴타운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여 예전의 허름한 동네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나마 중앙시장 안쪽으로 돌아 들어가 보니 왕십리곱창집 간판의 식당들이 아직도 성업 중이라 이곳이 왕십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왕십리는 본래 무학 대사가 도읍을 정하려고 이곳에 와서 도선 대사의 변신인 늙은 농부로부터 도읍을 찾으려면 여기서 10리를 더 가라는 가르침을 받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도심 속 낙후된 지역으로 있다가 지금은 대단지 아파트로 변해 있는데 본래 여기 살던 토박이들은 새 아파트에 입주할 형편이 못되어 상당수 사람들이 딱지를 팔고 다른 데로 이사 갔다고 하니 개발의 목적이 없는 사람 살리는 게 아니라 돈 있는 사람들 돈벌이 수단이구나 싶어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원체 요즘 세상살이가 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나는 왕십리를 지나 무학여고 방향으로 쭉 걸어 응봉교 밑에서 자전거 다리를 건너 반대편 한강 자전거 길로 걸어갈 계획이다. 퇴근 때 가끔씩 뛰어 퇴근하던 그 자전거 길이었다. 무학여고 앞을 지나며 이미 26km를 걸어왔고 이제 9km만 더 걸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다시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서울 시내를 걸으며 한 길로 걷기만 한 게 아니라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며. 들어갔다, 나왔다 했더니 정해진 길을 쭉 걷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걸었고 시간도 더 많이 걸렸다. 그래도 호기심은 어쩔 수 없어 무학여고를 지나며 왕십리 유래의 무학 대사와 연관 있나 싶어 검색해 보았다. 무학 대사의 무학은 무학(無學)이니 혹시나 무학여고가 이 한자의 무학이라면 어찌된 셈인가 했는데 호기심일 뿐이었다. 무학(舞鶴)여고였다. 학이 춤춘다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교정을 갖고 있었다.

뚝섬 서울숲 앞 한강 자전거 길에 접어들었을 때는 햇빛이 아직도 쨍쨍하게 내리쪼이는 오후 3시, 서쪽 편의 해를 그대로 받으며 걷는 길은 내가 자주 걷고 뛰었던 길이지만 한낮 그늘도 없는 한강변 길, 오고 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 지금은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다. 서울숲 한강변에서부터 강변역까지는 7km, 지금 걷는 한강변 이 길은 그늘 쉼터가 많지 않아 쉴 곳이 마땅치 않은데다가 오후 강열한 햇빛이 한강에 반사되어 눈에 어른거리는 게 나른함마저 주었다. 혼자 걸을 때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고독만이 아닌 지루함도 있다. 나는 알사탕을 하나를 꺼내 물었다. 단맛이 뇌를 자극하여 금방 엔도르핀이 분비되는지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의 피로감이나 걸으며 지루함을 느낄 때 이겨내기 위해 나는 항상 배낭에 초코바와 사탕을 넣어 두었다.


서울숲 한강변


그래도 오늘은 집에서 저녁을 먹고 편히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서편으로 지는 태양이 오른쪽 볼을 강타하고 팔뚝과 다리도 강한 자외선이 느껴질 정도로 햇빛이 강했다. 그늘이 전혀 없는 길이다 보니 교각이 있는 그늘을 찾아 나는 빨리 걸었다. 4km 정도를 더 걸으니 강 건너편에 잠실운동장이 보이고 저 멀리 우뚝 솟은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평소 뛰면서 익숙했던 이곳 뚝섬유원지 교각 밑에서 잠시 쉬었다. 방금 걸어온 뒤편 저 멀리에는 남산타워가 보였다. 평소 뛰면서 봤던 느낌과 지금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은 1,000km 긴 여정 중의 한 점이었다. 평소 익숙했던 이곳의 모든 것들이 한 점 한 점 다른 풍경으로 내 머리 속에 기억되었다.

뚝섬유원지에서 바라본 잠실종합운동장


거의 다와 잠실대교를 지나며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쯤이냐며 반색을 하며 전화를 받는 아내에게 장난기가 발동하여 아직 멀었다며 집까지 아내와 수다를 떨다 ‘딩동~ ’깜짝 놀라 문을 여는 아내.

나는 오늘 경기도 고양시 공릉천변 공원을 출발하여 서울을 관통하여 걸어 2호선 전철 강변역 앞의 우리 집에 오후 5시 11분에 도착했다. 오늘은 35.1km를 3.8km/1h(식사, 쉬는 시간 제외)로 걸었다. 두 발로 처음으로 서울 시내를 여기저기 둘러보다 보니 느림보 서울 유람이 되었다. 오늘은 서울을 몸소 체험했던 소중한 하루였다

몇 시간 전 전화통화를 통해 나의 도착시간을 짐작하고 있던 아내가 이른 저녁을 준비해 놨다. 돼지보쌈. 내가 출장 등으로 어디 멀리 갔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아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보쌈을 삶아 놓곤 했다. 아내는 현관문을 들어서는 나에게 냄새난다며 식탁에 앉으려던 나를 홀딱 벗겨 목욕탕으로 밀어 넣었다. 어제 하루 씻지도 못한데다가 땀에 절은 옷이며 이틀 만에 돌아온 내 모습이 반 거지처럼 보였는지 그러게 왜 그런 생고생을 하냐고 또 잔소리를 늘어 놨다. 이른 시간이라 두 딸은 아직이고 아내와 단둘이 먼저 저녁식사를 했다. 이틀만의 귀가인데도 무척이나 오랜만에 집에 온 것 같아 두리번거렸더니 아내가 못 올 데 온 거 마냥 왜 그러냐며 퉁명스럽게 면박을 줬다. 그러면서 슬쩍 나를 떠보며 한마디 던졌다.


“여보! 당신 지금 사람 꼴이 말이 아니에요. 이틀 걸어 봤으니 이제 그만 하지 그래요?

내가 이 정도에서 당신의 열정은 다 인정해 줄 테니까”

“고마워. 하지만 난 괜찮아요”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아내의 깊은 사랑이 느껴져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의 머릿속은 벌써 내일의 출발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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