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 곤지암-광혜원] 첫 번째 시련(1)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4장 첫 번째 시(1)


4일 차 2017. 6. 7.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이천시-충북 광혜원면 (55.4km)



어제는 처음으로 40km를 넘게 걸으며 늦은 오후부터는 피로감이 있었고 사우나의 코 고는 소리에 잠까지 설쳤다. 늦게 잠이 들었지만 어차피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55.4km로 꽤 먼 거리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아침 5시에 일어나니 어젯밤 잠깐 봤던 나이 좀 들어 보이는 남자가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었다. 어젯밤과는 달리 그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오며 잘 잤냐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고향이 청주인데 여기서 이렇게 생활한지는 일 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가족은 어딨냐‘ ’왜 이런 생활을 하냐‘ 고 물었더니 그가 말하길 주저하는데 순간 괜한 질문을 했구나 싶어서 이내 말머리를 돌려 ’어디로 일 나가냐‘고 했더니 대중없단다. 일단 나가봐야 안다는데 하루 벌어 사는 게 무척이나 고단해 보였다. 나이는 60대 중반쯤 되어 보였는데 돈을 벌어야하기에 어쩔 수 없다며 힘없이 말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인지 순간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 ’형씨! 국토종단 완주 잘 하셔‘ 하면서 문을 열고 나갔다. 욕탕은 아침 8시 넘어야 물을 채운다니 나는 할 수 없이 세면대에서만 간단히 씻고 사우나를 나왔다. 사우나에서 목욕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나온 셈이었다. 하지만 밤새 비가 내렸기에 비를 피할 잠자리만으로도 족했다.

오늘은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 55.4km 만만치 않은 거리 때문이었다. 오늘 같은 먼 거리는 오전 오후 체력 안배와 시간에 맞춰 잘 챙겨 먹는 게 중요하다. 아침 5시 반, 당연히 식당은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인근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에서 아침을 해결하며 걸으며 먹을 간식도 챙겼다. 김밥과 초코바, 빵, 사탕, 생수. 비가 오기에 야영을 위한 먹거리는 보충하지 않았다. 이렇게 담고 보면 배낭 무게가 1~2kg은 족히 늘어나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진 않았다. 배낭의 짐을 줄이기 위해서는 빨리 걷고 빨리 먹어 치우는 게 답이다.

빠르게 걷겠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의 날씨는 아침부터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간밤에 세차게 내렸던 비는 잠시 그쳤지만 하늘은 다시 또 쏟아 부을 듯 온통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빨리 출발해야겠기에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몇 백 미터도 못 가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우비를 꺼내 입고 우산도 썼다. 하지만 점점 거세지는 비바람에 우산이 날아갈 듯해서 우산은 접어 배낭에 다시 넣었다. 내가 걷는 길가는 점점 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운동화는 지나가는 차들이 튀기는 물로 더 흥건히 젖었다. 처음 맞아보는 악조건의 도보가 시작된 것이었다. 장마를 피해 국토종횡단 일정을 잡았지만 한두 번은 비를 만날 거라 예상했는데 하필이면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야 하는 오늘 세찬 비를 만나니 출발에서부터 당혹스러웠다. 오늘 이렇게 먼 거리를 걷기로 계획한 것은 걷는 중간의 소읍에는 사우나가 없고 목적지인 충북 광혜원면에만 사우나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계획의 또 하나 이유는 내일은 청주 친구 집이 숙박 장소이기에 이틀의 거리를 그렇게 맞췄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내일 이틀간은 109km를 걷는 만만치 않은 이틀인 셈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뿌리는 출발지 3번 국도 곤지암 도로


비를 예상해서 젖은 운동화를 신고 연습해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젖은 운동화를 신고 걷는 것은 누구에게나 익숙지 않다. 운동화와 양말이 젖은 상태에서 오래 걷는 것은 운동화 속에서 발이 미끄러져 걷기에 불편함은 물론 발이 부르트고 테이핑 한 것이 떨어지면 물집이 잡힐 수도 있다. 그만큼 속도를 내서 걷기가 어렵다는 얘기기도 하다.

곤지암읍에서 동원대학교를 향해 걸어 올라가는 6km는 3번 국도인 경충국도로 완만한 경사로 길게 이어져 있어 윗길로부터 빗물이 흘러내려 젖은 운동화를 더욱 흥건하게 만들었다. 비는 점점 세차게 내렸다. 이제 출발해서 몇 km 밖에 못 왔는데 이대로 계속 걸어야 하나, 일정을 하루 미뤄 쉬었다 가야하나, 괜히 이틀을 너무 무리한 목표로 잡은 건 아닌가 등 복잡한 생각이 밀려왔다. 이런 생각 와중에도 나의 발걸음은 앞으로 내딛고 있었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운동화는 이미 물이 흥건하여 장화를 신고 걷는 듯 빨리 걸을 수도 없었다. 동원대학교를 지나 고개를 넘어서는 내리막이라 길가에 고인 물은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곤지암읍에서 출발하여 동원대학교를 지나 이천시 초입까지의 8km, 길가에는 가게나 마땅히 쉴 곳이 없어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나는 마냥 걸을 수밖에 없었다.

비옷이 얼굴이나 상체는 비를 막아준다고는 하나 눅눅함에 땀은 차고 끈적끈적하니 걷기에는 최악이었다. 운동화는 질펀하고 옷은 속으로 젖어 눅눅하고 비는 계속 내리니 걷는데 영 기분이 나질 않았다. 뭔가 나에게 전환점이 필요했다. 쉬고 싶었다. 시골에서나 봄직한 간이 정류장이 보여 비를 피하며 배낭을 풀고 초코바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리고 나는 58살 청년에게 말했다. ‘어차피 걸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한 번쯤 이런 악조건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하면서 자기 최면을 걸었다.

‘58살 청년이라고 자처하며 시작한 내가 이것도 못하면서 1,000km 어떻게 걸을 수 있겠어?’

‘거봐 내가 하지 말랬지?’ 아내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걷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도 세차게 내리던 비가 조금은 약해졌다.

이천은 도자기의 고장이다. 이천하면 도자기 장인으로 도암 지순탁과 해강 유근형이 유명하다. 지금은 두 분 다 고인이 된 지 20여 년이 넘었지만 이천, 광주의 현존하는 도공들 대부분은 두 분의 제자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비도 피할 겸 도암 지순탁요에 들렀다. 도암요에 한 시간 넘게 머무르며 그곳을 지키고 있는 도암의 먼 친척인 다송 선생에게 도암 작품과 집안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 순전히 비 때문에 얻은 행운이었다. 본래 나는 오늘은 갈 길이 멀기에 도암요는 안 들르고 그냥 지나갈 생각이었다.

도암은 청자, 백자, 분청자기에 모두 능했지만 특히 백자공예에 탁월했다고 한다. 1970~1990년 일본 각지에서 많은 개인전을 치르면서 일본에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공헌하였는데 특히 그 당시에 일본 사람들이 많이 도암 작품을 사 갔다고 한다. 1988년 12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호 기능보유자로 선정되었으며 1993년 9월 사망하고는 1994년에 일본 도쿄에서 그를 추모하는 유작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

도암의 백자 작품


이른 시간이었지만 다송 선생의 안내로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다 볼 수 있었다. 도암 선생의 삶과 도자기의 깊은 맛이 다송 선생이 내온 차에서도 우러나오는 것 같았다. 빗줄기는 좀 가늘어졌다지만 밖은 계속 비가 내렸고 나는 우선 큰비는 피할 겸 좀 더 앉아 얘기를 나눴다. 그렇더라도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가는 한도 끝도 없을 거 같아 비가 좀 약해지는 것을 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나오며 본 가마는 불 꺼진 지가 2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요즘 도자기산업의 쇠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오래 전 불이 꺼진 가마


이제 겨우 8km 걸었고 도암요에서 한 시간 반을 있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9시 반이 훌쩍 넘었다. 빗속을 걸었으니 제대로 빨리 걸었을 리가 없고 비 피한다는 핑계로 여기서 한 시간 반을 있었으니 맘이 급해졌다. 다행히 세찼던 비는 부슬비로 바뀌었다. 나는 젖은 양말을 갈아 신고 빠른 걸음으로 이천 시내 방향을 향해 걸었다. 이천시는 도시 콘셉트가 도자기였다. 도시의 모든 디자인을 도자기에서 따온 듯했다. 가로등도 도자기 모양의 등이었다. 또한 누구나가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생활도자기 상점도 많아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도자기들


오늘 걸을 거리를 다시 계산해 보니 이천 시내를 들어갔다 나오는 건 무리가 많게 보였다. 나는 이천 시내를 옆에 두고 그냥 지나쳐 복하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해서 70번 국도를 타고 아래로 걸었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시골길, 농촌 풍경이 펼쳐졌다. 좌우로 논밭 시골 풍경을 보며 길을 걷는 기분은 방금까지 빗속에서 걸으며 지루하고 무료했던 느낌과는 전혀 다른 신선함이었다. 때마침 비도 그쳤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쨌든 여기까지 해서 나는 15km를 걸어왔다. 비가 멈추니 아침에 세찬 빗속에서 힘들었던 기억들은 온데간데없다. 나는 이대로 계속 걸으면 되는 거였다.

고난을 겪으면 더 강해진다고 한다. 날씨가 개니 덩달아 나의 발걸음도 가볍고 빨라졌다. 점심도 제때 챙겨 먹으며 오후를 내달을 생각으로 길가 식당에서 갈비탕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간간히 비치는 태양에 옷은 말랐지만 신발은 아직도 축축했다. 옷도 눅눅하게 마르니 내 몸에서 쉰내가 나는지 계산하던 주인이 내 몰골을 아래위로 한번 훑어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순간 나는 기분이 나빠져 더 이상 이 식당에 있고 싶지가 않아졌다. 처음 만나는 곳에서 따뜻한 맘을 바라진 않지만 인상을 찌푸리는 이런 불친절에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어 졌다. 나는 불편한 감정을 감추며 계산을 한 후 식당을 바로 나와 다시 아래로 걷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그 식당 주인 때문에 나의 기분을 망칠 것까진 없었다. 나는 방금 전의 나 자신 불쾌했던 감정을 털어 버리고 원래의 도보자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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