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4일 차 2017. 6. 7.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이천시-충북 광혜원면 (55.4km)
이천 시내를 벗어나 진상미로를 계속 걸어 삼거리에서 나는 죽산 방향 우측으로 가지 않고 직진하여 모가면 방향으로 걸었다. 시골 정취를 더 느끼고 싶어서였다. 죽산까지는 돌아가는 길이기에 6~7km는 족히 더 걷는 길이었다. 그래서 오늘 거리도 55.4km가 된 것이고.
한적한 시골 도로는 차도 뜸하여 주변 들판이나 산 모든 자연이 내 벗인 양 살갑게 다가왔다. 가다 들른 시골구판장은 내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였다. 주전부리 과자 몇 종류와 라면 몇 개만이 선반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시원한 콜라를 먹고 싶었지만 냉장고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시골구판장은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하루에 한두 번은 들르는 동네의 사랑방이었다. 본래 구판장의 의미가 조합이 구매하고 판매하는 곳이라는 뜻인데 조그만 시골 가게를 운영하는데 뭔 조합이 필요하겠는가. 동네 이장이 이문을 남기기보다는 동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그때그때 필요한 물건을 읍내에서 떼다가 갖다 놓는 것이지. 여기서 빼 놀 수 없는 물건은 라면과 주전부리과자, 막걸리였다. 그래서 구판장은 대개가 동네 한가운데 있는 노인정 건물 한쪽을 빌려 물건을 놓곤 했다. 노인정 한쪽이 아이들에게는 좋은 동네 슈퍼인 셈이었다. 지금 시골은 구판장에도 노인정에도 사람이 없다. 집집마다 차량이 있으니 필요하면 읍내로 나가 직접 물건을 사고 또 더 필요한 상품은 택배를 이용하니 구판장이 필요할리가 없다. 그 많던 노인들로 북적이던 시골 노인정도 줄어드는 인구수를 반영하듯 그저 몇 명의 노인들만이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고 있을 뿐.
나는 보이는 것 그대로 맘으로 느끼며 때론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한적한 329번 시골 국도를 20여km 정도 이렇게 걸었다. 어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는 건 걷는 자에게는 최고의 찬사다. 그건 곧 자연에 순응하며 걷는다는 의미다. 아무 생각 없이 329번 국도를 계속 걸어 닿은 좌측의 이천호국원, 이곳은 출발지 곤지암읍으로부터 34.5km의 지점이다. 엄청 걸은 거 같은 데 갈 길이 먼 오늘이다 보니 아직도 21km나 남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8분. 오후 4시간 동안은 한 시간에 거의 4.7km를 걸은 셈이었다. 시골 정취를 느끼면서 무념무상의 진정한 도보자가 되니 발걸음도 빨라진 듯했다. 옷은 이미 다 말랐고 운동화 속 양말도 발과의 마찰열로 거의 다 말랐다. 장거리 도보의 이치란 자연에 순응하면 모든 건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것인가 보다.
남은 거리가 만만치 않으니 나는 다시 시간과 거리를 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 세찬 비로 인해 비를 피하며 도암요에 오래 머물렀던 시간이 아까웠지만 그래도 얻은 것도 많았다. 본래는 오늘 죽산의 죽주산성을 들를 계획이었다. 죽주산성은 죽산면으로 가는 방향과 다른 길로 3km를 산으로 걸어 올라가야 했다. 그럼 왕복 6km 그것도 산길. 지금 셈으로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만약 거기 산길을 갔다 돌아내려온다면 오늘 목적지인 충북 광혜원면에는 밤 11시는 넘어야 겨우 도착할 것 같았다.
나는 유난히 성벽을 좋아한다. 투박하게 쌓여 있는 성벽에는 민초들의 땀과 눈물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중국의 만리장성과 같은 웅장한 성벽보다는 우리나라 도처에 남아 있는 자그마한 성벽들을 좋아하고 그 속에서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곤 한다. 죽주산성의 이름은 죽산의 옛 이름 죽주에서 유래하며 신라 후기 진성여왕 때 견훤이 이 성에 진을 치고 세력을 키웠다고 하며 고려 시대 몽고군의 제3차 침입 당시에는 송문주 장군이 성 안에 피난해 있던 백성들과 합세, 몽고군과 싸워 이긴 전적지라는데 아쉽지만 죽주산성 답사는 이번엔 포기해야 했다.
충북 일죽읍에서 안성시 죽산면까지는 약 6km 정도 되는 거리인데 나는 이 거리를 걸어가면서는 두 다리가 쳐지기 시작했고 배낭도 자꾸 등에서 흘러 내렸다. 죽산 면내를 앞에 두고는 이미 40km를 넘게 걸어왔기에 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보통의 스케줄이라면 이 정도까지 걸어왔다면 거의 다 온 셈인데 오늘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나는 우측 멀리 죽주산성의 죽주산을 보며 죽산 면내로 걸어 들어갔다.
이미 43.5km를 걸어왔지만 오늘 목적지인 광혜원 면내까지는 아직도 12km를 더 걸어야 한다. 나는 죽산 면내에서 저녁을 먹어야 했다. 목적지 광혜원 면내 도착해서 먹겠다고 저녁을 참았다가는 힘이 부쳐 가다가 굶어 죽을지도 모를 정도로 나의 몸은 에너지 고갈상태였다. 시간은 이미 저녁 6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오늘 먼 거리에 대한 부담으로 비가 그친 오후 너 댓 시간을 빠르게 걸은 것도 피곤을 가중시킨 요인이었다. 배는 고픈데 입맛은 없었다. 백반 반찬이 10가지는 넘었다. 나는 밥에 물을 말아 억지로 들이키고 반찬 한두 개만 집어먹고 식당을 나왔다. 어둠이 지기 시작하여 맘은 급하고 식당에 더 오래 앉아 쉴 수도 없었다. 어쨌든 오늘 안으로는 광혜원 면내에 도착해야 했다. 이번 국토종횡단 나의 두 번째 철칙은 당일 목적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당일에 도착한다는 거. 걸어야겠는데 두 발이 지남철처럼 땅바닥에 딱 붙었는지 떨어지질 않았다. 드디어 나의 첫 시련이 시작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힘든 하루를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오전의 세찬 비와 먼 거리에 대한 심적 부담감이 종일 나의 몸을 지배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걷는데 배낭을 누군가가 뒤에서 낚아채는 것 같았다. 두 발은 앞으로 내딛는데 몸은 뒤로 제켜지는 느낌. 하지만 나는 걸어야 했다. 배낭이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장거리 도보 여행에서는 배낭은 가벼울수록 좋다고 하나보다. 하지만 야영을 해야 하는 배낭도보여행자인 나는 야영 장비로 인해 배낭을 가볍게만 꾸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배낭 무게를 이겨낼 강한 정신력이 더 필요했다.
안성시 죽산면에서 충북 광혜원면 가는 길은 이미 사위는 컴컴해져 나는 배낭 뒤에 매달은 작은 경광등 하나에 의지해 걸어야 했다. 차량통행은 많지 않았지만 밤길 시골도로 갓길은 매우 위험하기에 주의하며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지루한 걸음걸이였다. 그렇다고 지금 이 한밤 중 시골길 한가운데서 멈출 수도 없고, 죽산 면내로 되돌아 갈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그냥 걸을 수밖에.
어떻게 걸어서 왔는지도 모르겠다. 거의 흐느적거리며 걸어왔던 것 같다. 지나가는 차량도 뜸하다 보니 이곳이 길인지 산인지도 모를 정도로 길바닥만 보고 걸어왔다. 오늘 묵을 곳 광혜원 면내 사우나에 도착하니 밤 10시 49분. 오전 컨디션 좋은 때면 3시간이면 천천히 걸어도 가고 남을 거리인 12km를 무려 4시간이나 걸려 걸어온 것이었다.
사우나에서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나는 잠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바닥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아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오늘 어느 정도 시련은 예상하고 맘의 준비는 했지만 비까지 만났으니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오늘 55.4km를, 10kg 넘는 배낭을 메고, 혼자 걸어, 목적지에 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내 두 다리를 훑어봤다. 검게 그을린 두 발이 개선장군의 발처럼 보였다.
아침 6시 20분에 광주시 곤지암읍을 출발한 나는 밤 10시 49분에야 목적지 충북 광혜원면에 도착했다. 오전의 세찬 비바람, 오후의 빠른 걸음, 밤길의 흐느적거림. 나는 오늘 55.4km를 4.0/1h(식사. 쉬는 시간 제외)로 걸어 목적지에 왔다. 무척이나 긴 하루였다. 하지만 해냈다는 뿌듯함에 나는 오늘 힘들었던 모든 걸 바로 다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