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 광혜원-청주시] 반가운 동행(1)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5장 반가운 동행(1)


5일 차 2017. 6. 8. 충북 광혜원면-충북 진천읍-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53.6km)


어젯밤 광혜원 면내 사우나에서 피로에 찌든 몸을 뜨거운 욕탕에 담그고 풀어준 덕분인지 편안한 잠을 잤다. 아침 6시에 일어났는데 어제의 극심했던 피로감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크게 피곤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어젯밤 사우나에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는데 코 고는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바로 곯아떨어졌다. 이틀 전 곤지암 사우나에서 씻지도 못하고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쳤던 거에 비하면 어젯밤은 천국 같은 사우나에서의 하룻밤이었다. 애초 계획을 세울 때 어제 같이 먼 거리를 걷는데 거기다 늦은 밤에 야영까지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기에 이곳 사우나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일정을 잡은 건데 이렇게 계획을 세운 게 무척이나 다행스러웠다. 특히나 오늘도 53.6km, 어제만큼이나 먼 거리를 걸어야하기에 어제의 피로가 오늘로 이어진다면 앞으로의 일정에서 내 몸이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젯밤의 목욕이나 숙면은 일시적이나마 나의 신체 컨디션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야영을 하다가 사우나에서 하루 묵을 때에는 뜨거운 욕탕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기에 더없이 좋다. 하지만 두 발에 한 테이핑을 떼어내고 욕탕에 들어가야 해서 다음날 출발 전 다시 테이핑을 해야 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이 말은 곧 야영을 할 때는 고양이 세수만 하고 발을 씻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신발 속 마찰이 심한 발 부위는 자칫하면 물집이 잡히기 쉬우므로 일회용 밴드와 함께 섬세하게 테이핑을 해야 했다. 두 발을 스포츠용 테이프로 섬세하게 동여매는 데 약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24일 걸으면서는 두 발이 재산이니 철저히 두 발을 보호하는 게 생명처럼 중요하다. 덕분에 나는 1,000km 24일을 걸으며 발에 물집이 생기는 고생을 하지는 않았다.

24일간 나를 지탱해준 두 다리. 테이핑한 모습

아침 식사는 인근 터미널 분식집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나는 아침 7시 좀 넘어 진천방향으로 걷으며 5일 차의 도보를 시작했다. 광혜원 면내을 출발하여 진천으로 가는 길은 직선 길의 17번 국도가 있으나 이 길은 가로수도 없고 뻥 뚫린 국도로서 차들도 많이 다니기에 걷는 재미가 덜할 거 같아 광혜원면 월성리 신월리 송두리를 지나는 한적한 시골 길로 걸었다. 이곳 길은 충청북도 전형적인 시골농촌의 도로였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며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질박한 삶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기도 했다.

오늘 날씨는 좋으나 햇살이 따갑고 한낮에는 온도도 꽤 올라가 더울 거라는 일기 예보다. 어젯밤 죽산면에서 광혜원면 걸으며 힘들었던 기억은 어디 가고, 해냈다는 성취감이 남아 있어 그런지 아침 기분은 하늘을 날듯 좋았다. 사실 어제의 비는 가뭄이 심한 농촌에는 단비와 같은 비였다. 몇 달째 가뭄으로 온 국토가 말라가는데 나 걷기 좋으라고 비를 탓하는 건 너무나 이기적이긴 하다. 하지만 어제 오전을 생각하면 앞으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날씨였던 건 확실했다.

어제 오전에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지만 이번 비로 농작물이 완전 해갈된 것은 아니었다. 내려걸으며 보는 농촌 들녘은 그나마 오랜만에 뿌렸던 비였기에 논에 물을 대랴, 밭작물을 손질하랴 분주했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던 논에 물이 차니 메말랐던 벼이삭들이 등을 세우고 그 모습을 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배였다. 논밭에 일 나온 분들의 대부분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농촌을 깊숙이 들어가 걸으면 걸을수록 느껴지는 농촌의 적막감은 농촌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 지 오래됐다는 얘기가 실감이 날 정도로 인적도 드물고 젊은 사람들은 더더욱 보기 힘들었다.

물이 찬 논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에게 요즘 농사짓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마지못해 농사 진다며 요즘은 유기농 벼를 해야 그나마 쌀도 팔아먹고 돈벌이도 조금 된단다. 할아버지는 물 찬 논에 우렁이를 뿌리는 중이었다. 무농약 우렁이논. 요즘 사람들은 쌀을 안 먹으니 쌀이 남아돌아 벼농사를 지어도 걱정이라며 앞으로 언제까지 이 농사를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는데 나라고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너무나 변해 세상 탓이었다.

무농약 우렁이논


6,70년대만 하더라도 쌀이 주식이었고 흉작으로 쌀이 부족하여 혼식, 분식장려라는 미명 하에 쌀밥에 20~30%의 잡곡을 섞어 먹도록 강제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 시기에 미국의 잉여농산물 밀이 대대적으로 수입되며 정부는 밀가루 소비를 위해 밀이 몸에 좋다는 홍보도 많이 했다. 지금의 분식집이라는 말은 아마도 그때 분식장려정책에서 생겨난 게 아닌지..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점심때마다 도시락을 검사하여 흰쌀밥만 싸온 도시락은 압수했고 잡곡이 너무 적게 들어갔느니 하며 재어보는 촌극도 벌어졌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집안에서 쌀밥 구경하는 게 쉽지 않았으니 도시락 검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더 가난한 학생들은 그런 잡곡밥도 못 싸오는 지경이었으니 말하나 마나였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처치 곤란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권이란 게 국민들 먹는 것 가지고도 이용하는 거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그 시절 밀가루가 쌀보다 몸에 좋다는 말이 뇌리에 박혀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쌀이 영양가가 별로인 곡식으로 자꾸 생각하게 된다.

하늘은 높고, 청명한 하늘에는 맑은 구름들이 새털처럼 흩어져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늘 한 점 없는 시골길을 걷는 한낮 더위는 한여름을 방불케 했다. 어떤 밭은 어제 비가 흔적도 없는지 작물들이 메말라 줄기가 땅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그런 밭작물을 보며 걷는 나의 맘도 안쓰러웠다. 나는 이번 도보여행 기간에 비가 또 온다면 더 이상 비를 원망하지 않고 기꺼이 맞으며 걸으리라고 다짐했다.

청명한 6월 하늘


광혜원 면내를 출발하여 진천읍으로 가는 이 길은 충청북도의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는 길로 걷는 길 주변은 어머니의 편안한 치맛자락처럼 야트막한 산과 평지의 논밭이 이어져 있다. 그래서 시야가 좋다. 한눈에 사위를 다 보며 걷는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이나 느낌의 크기도 넓게 만들었다. 나는 어제의 장거리 도전이 어느덧 내 몸에 받아들여졌다는 듯이 먼 산을 눈에 넣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걷는 발걸음에 흥이 있다 보니 몸도 덩달아 반응을 하는지 전체적으로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지금의 나는 배낭의 무게조차도 잊었다. 이젠 내 몸엔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저 시골 한적한 길을 걷는 그림자가 되었다. 나는 오늘도 걸으면서 꿈을 꿀 것이며, 자연과 얘기할 것이며, 나의 미래를 얘기할 것이다. 도보여행의 답은 없다. 결국 걸으며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다.

처음 밟아 본 진천읍은 진천군청이 있는 소재지지만 그다지 크지도 않고 읍내 전체도 차분한 느낌을 주었다. 마침 시골장이 서는지 한쪽에는 천막이 쳐있고 좌판이 깔려 있는데 북적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장터 풍경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겐 이런 모습이 더 정겹게 다가왔다. 이곳저곳 기웃대며 구경도 하고 괜히 살 거도 아니면서 집어보고 얼마냐고도 물어본다. 당연히 점심은 이런 곳에서 먹어야 했다. 읍내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콩국수 간판이 보이는 허름한 식당이 보여 점심으로 콩국수를 먹었다. 손수 맷돌로 콩을 가는 주인 할머니 모습을 상상하긴 했지만 맛은 그에 못지않았다. 오늘 한낮의 날씨가 34도를 넘고 있으니 더위를 식히기에는 콩국수가 제격이었다. 17km를 걸어 여기까지 왔고 시간도 밥 때인 오후 한 시니 배도 고프던 차에 콩국물을 바닥에 남은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마셨다. 읍내의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나의 발걸음조차 느리게 하니 이곳에 좀 더 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식당을 나와 읍내 이곳저곳을 걸었다. 오랜만에 보는 다방이라는 간판이 마치 이곳이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몇 십 년 전의 어느 소도시인 거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다방 맞은편에는 대형 현대식 커피숍이 마주하고 있어 길 하나두고 있는데도 그곳 영어 간판이 다방이라는 한글 간판과 몇 십 년의 시간차를 말하는 듯 했다.

다방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지하층, 눅눅한 소파, 흐드러지게 웃는 레지의 얼굴..(레지는 영어 레이디의 일본식 발음이 잘못 전해져 그리 불렸다는데 이 동네 저 동네 떠도는 레지들의 인생은 산업화 시기 힘들게 살던 사회의 한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나는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다방에 들어가 레지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예전의 나의 기억일 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진천 읍내를 빠져나와 청주시 오창읍 방향으로 걸었다.

진천읍내 다방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일차 곤지암-광혜원] 첫 번째 시련(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