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충북 광혜원 - 진천 - 오창 - 청주시 상당구 (53.6km)
2017. 6. 8.
진천읍내를 빠져나오면서 청주시 오창읍까지는 13km, 논밭을 끼고 굽이굽이 이어진 시골길 도로를 걸어 고갯길인 파재고개를 넘어 파재로로 계속 걸었다. 걷다가 무료하면 시골 정자에서 쉬기도 하며 나는 이 길을 맘껏 혼자서 누렸다.
이런 시골 길에는 당연히 주유소가 없다. 주유소는 이번 도보여행에서 내가 가장 많은 신세를 진 곳이었다. 야영하고 씻지 못한 날은 다음날 아침에 만나는 주유소에서 간단히 씻으며 생리현상도 해결했고, 먹는 물이 떨어져 물을 구하지 못할 때 주유소에서는 기꺼이 내게 물을 내주곤 했다. 나는 지금 먹는 물이 필요한데 주유소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농가도 물을 얻기에 괜찮다. 인심이 그 정도로 사납진 않으니까. 하지만 일을 나갔는지 집들이 비어 있는 경우가 많고 사람을 찾아 들어가려면 기르는 개들이 달려들어 무턱대고 들어가기가 그렇다.
나는 오창읍으로 들어가기 위해 파재로를 계속 걸은 후 진천군 문백면 옥성 교차로에서 진천 오창의 직선도로인 17번 국도로 올라탔다. 먹는 물을 찾던 나는 오창읍 거의 다 와서 주유소를 만날 수 있었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분들은 대개 나이 드신 아저씨들로 나의 행색을 보면 쉬어가기를 권했다. 그래서 잠시 쉬어 가려면 그들은 나에게 ‘왜 걷냐’ ‘어디서부터 걸어 왔냐’ ‘힘들지 않냐’ 등 질문을 쏟아냈다. 그럼 나는 대충 얼버무리는데 사실 나도 왜 걷냐에 대해 딱히 대답할 말이 없기도 했다.
오창읍 주유소에서 생수를 보충하고 가려는데 일하는 아저씨가 냉커피를 내왔다. 나는 이번 도보여행에서 수많은 정을 만났다. 만나고 헤어지는 몇 분의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건네는 그들의 순수에서 나는 이기적인 나를 반성하곤 했다. 한낮을 걸어와 땀이 흥건하던 차였기에 아저씨가 건넨 냉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믹스커피는 주유소에서 일하는 나이 든 아저씨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였다. 힘들게 일하시는 아저씨들은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커피 맛이 입에 맛을 지도 모른다. 당을 보충하며 커피 맛도 느낄 수 있으니까. 건강에 좋다 나쁘다는 차치하고 누구나가 간단히 마시기에 적절히 배합한 믹스커피에서 중용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건 너무 과한 상상인가? 따뜻한 정을 안고 주유소를 떠나니 발걸음도 흥에 겨워 달짝지근했다.
나는 되도록 걸으며 자연에 순응하려 했다. 순응한다는 것은 걷는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뜻과 같다. 비와 바람도, 보이는 풍경도 그리고 오늘 한낮의 뜨거운 태양도, 지금 걷고 있는 나조차도 자연의 일부분이다. 어차피 비가 와서 불편하다고, 태양이 내리쪼여 덥다고 불평한들 자연은 내 불평을 들어주진 않는다. 걸으며 자연에 감사한 걸 찾는 게 더 현명했다.
청주시 오창읍에 도착하니 오후 3시 18분. 걸어온 거리는 29km. 아직 24km가 남았다. 대부분의 날들에서 오후의 신체 컨디션은 오전과 차이가 많다. 오늘 나는 오전 신체 컨디션이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어서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오후 들어 어제의 피로가 완전히 가신게 아닌지 서서히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오늘은 청주 친구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기로 되어 있어 오후에 느끼기 시작한 피로에 대한 부담은 적었다. 친구 집에서 충분히 쉬면서 피로를 풀 수 있다는 것이 맘의 위안이 되었다.
친구와는 미리 연락을 해 놨기에 청주 무심천에서 만나 같이 걸어 집까지 가기로 했다. 동행이 있다는 건 외롭지 않아 좋다. 힘들 때 서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가 어렵고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둘의 체력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오랜 기간을 같이 보조를 맞춰 걷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혼자 걷기를 좋아한다. 힘들 때 걷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사색을 의미하고 그 시간은 나를 성숙하게 만든다고 나는 믿는다.
곧 만나게 될 내 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이웃에서 살면서 함께 한 죽마고우다. 나보다는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우리 둘이 다닐 때는 남들이 그를 형으로 알 곤 했다. 그 친구는 워낙 심성이 착해서 남을 해코지하거나 험담하는 소리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옳고 그른 거에 대해서도 너무나 반듯하여 고등학교 때는 선생들과도 마찰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힘든 고교시절을 보냈다. 그냥 타협하면 될 텐데 내 친구는 그런 걸 못했다. 선생은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춰야한다며 어떤 선생에게는 절대로 자기 뜻을 굽히질 않았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가 나를 동생처럼 끼고 다녔다면 고등학교 시절에는 덩치 큰 그를 내가 끼고 다녔다. 철없던 나였지만 그가 학교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보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는 착한 심성으로 고등학교 때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자식들도 모두 반듯하게 잘 큰 거 같다.
50년 지기인 우리 둘 사이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처음 도보 계획을 세울 때 친구는 자기가 저녁 만찬을 준비하고 기다리겠노라고 자기 집에 꼭 들르는 일정으로 짜라고 신신당부했다.
너무 늦은 시간에 친구 집에 들어가는 것도 결례인 거 같아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창읍을 통과하여 청주 시내로 진입해서는 좀 더 빠르게 걸었다. 대략 시간당 4~5km 속도로. 미호천을 건너면 청주시 중심가로 진입하게 된다. 나는 팔달교를 지나 청주대학교 방향으로 걸었다. 곧 만나게 될 친구를 생각하니 걸음걸이가 그냥 급해졌다. 10여 km를 이렇게 걸으며 청주 시내 깊숙이 들어왔다. 청주는 그전에도 몇 번 와봤기에 섧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시내 중심가에 높은 빌딩이 없는 게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고 시내 중심가를 감싸고는 고층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예전의 도시미관은 간데없다. 나는 충북도청에서 우측으로 돌아 무심천으로 향했다. 이곳은 출발지 광혜원 면내으로부터 45km 지점이다. 오창읍을 지나면서 피로감이 있었으나 곧 친구와 만날 거라는 기대감에 견딜만했다. 하지만 두 다리가 무겁고 특히 왼쪽 발목이 시큰거리는 느낌은 은근히 내일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어제에 이어 꽤나 먼 거리였던 오늘도 어느덧 8.6km만 남겨 놨다. 좋은 날씨와 쾌적한 시골길 도로는 어제 오전 빗속의 악천후와는 달리 기분 좋게 걷는 하루를 만들어주었다. 게다가 오늘 저녁을 친구와 함께 한다니 발걸음이 어찌 무겁게만 느껴지겠는가? 친구는 이미 30분 전에 무심천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은 보던 친구였지만 이런 행색으로 나를 보니 더 정겨웠나 보다. 친구가 배낭을 낚아채 대신 멨다. 그제야 나는 배낭의 무게가 느껴졌다. 어깨가 날아갈 듯 가벼웠다. 45km 내내 느끼지 못했던 배낭 무게를 벗고 나서야 느끼다니. 역시 자신을 극한으로 내모는 정신력이 중요했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 6시 41분, 무심천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저녁 산보 나온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친구와 나는 사람들 사이에 묻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발걸음에 담으며 집으로 향했다.
8.6km를 친구와 얘기하며 걷다 보니 빠르게 걸은 건 아닌데도 금방 걸어온 느낌이었다. 친구 집에 도착하니 저녁 8시 27분. 나는 오늘 53.6km를 4.3km/1h(식사, 쉬는 시간 제외)로 걸어 친구 집인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도착했다.
친구 집에 도착해서는 피곤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현관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삼겹살 굽는 냄새가 나의 모든 피로를 바로 잊게 만들었다. 삼겹살에 소주 두세 잔을 걸치니 그제야 몸이 반응하는지 온 몸이 매운탕속 푹 끓은 생선살처럼 풀리듯 노곤함이 몰려왔다. 아내들이란 다 똑같은가 보다. 친구 아내도 내가 걱정되는지 힘들면 다른 사람들 신경 쓸 거 없이 중간에라도 그만두란다. 친구는 나의 자존심을 세워주려는 듯 사내대장부 운운하며 아내에게 쓸데없는 소리한다며 나보고는 한 귀로 흘리라고 하고. 우리는 지난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랜 시간 저녁상을 마주했다. 늦은 시간이 되어 우리 둘만이 마주 앉은자리에서 그는 나에게 절대 무리하지 말라며 즐기는 도전이 되길 바란다고 몇 차례나 당부했다. ‘즐기는 도전’ 나는 이날 밤 친구의 깊은 우정을 또 한 번 가슴속에 새겼다
이틀간 나는 109km를 걸었다. 내일은 그나마 지난 이틀보다 짧은 43.5km다. 나의 체력이 이젠 이 정도 거리는 걷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이틀간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나는 이틀간 109km를 걸음으로서 힘든 산을 넘었다. 출발 5일간 총 217km를 걸으면서 나의 몸이 1,000km의 국토종횡단을 위한 기본적인 적응을 마친 것 같아 기뻤다. 비로소 나는 5일 차에 1,000이라는 숫자에 대한 부담에서 해방됨을 느꼈다.
나와 친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나눴다. 사실 나의 일정으로 보면 나는 너무 늦은 시간까지 친구와 이렇게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인데도 같이 하고 싶은 친구, 그래서 나의 좋은 친구인가 보다. 난 내일도 내가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채 늦은 밤을 친구와 함께 하다가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