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첫날 어김없이 달렸는데 올해는 1월 3일 10km가 첫 번째. 그리고 오늘 나는 남한산성 정상 수어장대까지 산길을 달렸다. 오르막 산길은 평지보다 서너 배 힘이 든다. 심한 오르막에서는 뛰는 건 고사하고 걷기도 벅차다. 새해가 된 지 6일이 지났지만 열정이나 의욕이 벌써 사그라든 것 같아 오늘 산 달리기를 택했다.올해도 난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와 학습 정신, 열정적인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가끔 나는 내가 달리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몸이 찌뿌듯해서 달리기도 하고, 기분 전환하기 위해 달리기도 하고, 생각만 많고 뭔가 머릿속이 엉킨 거 같은 때 달리기도 하고, 날씨가 좋아 그냥 달리고 싶어 달리기도 하고, 어떤 전환점에 서서 새롭게 시작하기 전 맘의 다짐을 하기 위해 달리기도 한다. 어떤 이유든지 달리는 건 나를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작업인 것이다. 달리면서 나는 늘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에게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달리며 내 눈은 시야를 멀리 두고 많은 걸 담으려 한다.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크게 보고 자신 있게 나가지고 주문을 외고 한다.
심장 박동이 격해지고 온 몸이 반응하며 주로를 달릴 때 나의 몸은 점점 탈진 상태로 가지만 완주해야 한다는 의무감, 강해지는 정신력, 내면에 스며드는 자신감을 느끼며 입에서는 단내를 뿜어내며 달린다. 이것은 결코 걸으면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가끔 40km 걷기도 하지만 심장이 멎을 듯한 격한 감동이나 도전의 희열을 느끼긴 어렵다(물론 자연경관을 더 많이 눈에 담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마라톤에서도 가능하다).
마라톤에서 눈으로 자연의 깊이를 느끼기 위해서는 달리는 길바닥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주로 상태가 좋아야 한다. 트레일런의 산길이나 자갈길 등은 길바닥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달려야 한다. 체력적인 부담도 있지만 끝까지 주로 상태를 보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달려야 해서 많은 생각을 하며 달리는 나만의 장점을 가질 수 없기에 참가하지 않는다. 트레킹이나 하이킹은 걷는 거기에 심장의 격한 울림이 없어 안 하고. 내 젊은 시절 전국을 달리며 꽤나 즐겼던 사이클링은 도로에서 눈을 떼면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 먼 목적지를 빨리 도착하는 쾌감은 좋으나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느끼는 깊이가 얕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사이클링 또한 심장 박동이 격해질 정도로 페달을 밟는 경우는 드물고. 집에 있는 자전거는 몇 년째 그대로다.
트레일런은 인위적으로 포장된 길이 아닌 오솔길, 산길 등과 같은 자연 그대로의 비포장 길인 트레일(trail)과 런(run)의 합성어로서, 자연 그대로의 길을 뛰는 운동이다. 그런 길을 걷는 것은 트래킹이고. 50km 이상은 울트라트레일런이라고 말하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각 도시에서 지역의 대표적인 산을 끼고 달리는 대회들이 무지 많다. 물론 50km 이하도 있고 100km 이상도 많다. 대부분이 산을 끼고 달리며 산 정상에 Post를 설치하여 인증을 하고 산과 산을 이어 달리기에 높은 산 정상 몇 개를 올라가야 한다. 강한 체력과 함께 사고의 위험도 있어 조심해서 달려야 한다. 평범한 아마추어가 스피드를 내며 산을 오르내리는 게 쉽지 않아 주로 고수들이 참여한다. 나는 6년 전 소아암환우돕기협의회 주관의 12회 행복트레일런 대회(30km)에 참가한 적이 있다. 수서역을 출발하여 대모산, 구룡산 중턱을 달려 청계산의 정상인 옥녀봉, 매봉, 이수봉을 찍고 인능산 정상을 지나 세곡동 사거리 도착 지점까지 완주했다. 400m 이상의 정상 두세 개를 오르내리는데 쉽지 않았다. 오르면서는 거의 걸었지만 내려오면서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험한 산길이라 땅을 쳐다 하며 걸어야 했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조심해서 내려오느라 하산길에도 스피드를 낼 수가 없었다(트레일런 고수들은 이런 하산길을 날다람쥐처럼 잘도 달렸다).
고도가 높지 않고 완만한 산이라면 평지 속도의 1.5배로 달리는데 이때 나는 평지 기록의 거의 두배가 걸렸다. 낮 시간임에도 이런데 100km 이상 밤을 새워 이틀을 달리는 코스라면 나는 밤길에 엉거주춤 걸을 게 틀림없다(이런 나지만 128km 트레일런을 완주한 적이 있다. 2020년 1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트레일런대회였다. 산이 그다지 높지 않기에 참가했지만 민가도 없는 허허벌판에 밀림 같은 숲 속을 달리는 코스라 길 잃어버리기 딱 쉬운 코스였다. CP에서의 음료나 먹을 거 준비가 별로였기에 달랑 작은 배낭 하나에 물만 넣고 달렸던 나는 할 수 없이 한밤 중 산속의 민가에서 맨밥을 얻어먹어야 했었다. 나는 어찌어찌 달려 24시간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남한산성의 정상에는 수어장대가 있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에 쫓겨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 군 지휘부가 있던 곳이다. 이곳은 청량산으로 높이는 483m. 산성역에서 수어장대까지의 산길은 짧은 트레일런 코스나 마찬가지다. 겨울 추위로 자주 운동을 못하다가 산길을 달리려니 숨이 턱까지 찬다. 오르막을 걷는 데도 발에 경련이 인다. 오르막을 빨리 오르려 뒤꿈치를 들고 힘을 주어 오르다가는 종아리 근육이 당기며 뭉쳐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기에 조심스럽게 걸어 오를 수밖에 없다. 평지나 완만한 경사는 뛰지만 거북이 달리기나 마찬가지다. km당 기록이 10분.
기록 단축을 위해 산길을 빠르게 달리는 연습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안 한다. 내 나이에 무리한 오르막 달리기도 그렇지만 가끔 하는 연습으로는 눈에 띌 정도로 기록이 나지진 않기 때문이다.
산길 달리기는 평지와 완전히 다르게 숨이 가쁘다. 그만큼 호흡을 조절하며 달리기가 쉽지 않다. 숲길이라 어디 멀리 보기도 어렵지만 나무뿌리가 돌출되어 있고 바위돌이 여기저기 삐져나온 산길은 조심해서 달려야 한다. 약식 트레일런이지만 완주는 해야 했기에 걸으며 뛰며 수어장대에 닿았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남한산성을 가까이 두고 살면서 남한산성의 사계를 보는 것도 큰 행복이다. 수어장대에서 보는 겨울의 하늘이 마치 가을 하늘 같이 청명하다. 수어장대에 오르면 인조의 비극보다는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산성 동남쪽 지역의 책임을 맡았던 이회 장군의 억울한 죽음과 한이 깃든 매바위의 전설이 더 애틋하다.
누구나 달리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달리며 얻는 것도 다르다. 기록도 그중의 하나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마라톤에 대한 기사가 넘쳐난다. 이렇게 연습해라 이렇게 달려라 이렇게 호흡해라 등등. 하지만 아마추어가 풀코스를 330, sub-4 뛰기 위해서는 엄청난 연습 달리기를 해야 한다. 아마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연습한다고 그런 기록을 낼 가능성도 거의 없고. 중요한 것은 뛰면서 신체와 정신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를 확실하게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되었다면 자기에 맞게 뛰면 된다. 달리는 자세를 논하는 글들이 많지만 몇십 년을 자기에 맞게 걷고 뛰며 살았는데 그게 쉽게 고쳐지나? 자기 폼에 특화돼서 꾸준히 달리는 연습이 제일이다. 그러다 보면 건강도 좋아지고. 하지만 마라톤에서 호흡은 중요하다. 코로 흡입하고 입으로 뱉어야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나는 코와 입으로 동시에 흡입하고 입으로는 크게 내뱉는 리듬을 탄다. 하지만 숨이 차기 시작하면 들숨날숨이 정신없이 반복되고 숨쉬기 자체도 힘들다. 특히 중간에 스피드를 조금 올려 뛰면 호흡이 엉망이 된다. 그래도 힘들더라도 나만의 호흡법을 유지하려고 한다.장거리 달리기에선 자기만의 호흡 리듬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규칙적인 호흡 리듬.
산길을 달리며 평지와 달리 나의 호흡은 엉망이 되었다. 숨이 턱턱 막혀 걷기도 힘든 비탈길은 낑낑대며 올라갔다. 그렇게 수어장대까지 오르며 나는 심장의 격렬한 반응에 희열을 느꼈다. 심한 오르막에서는 심장이 멎을 듯했지만 죽지는 않는다는 걸 알기에 끝까지 산길을 달렸다. 산성역에서 수어장대까지 산길은 5.3km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