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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Dec 30. 2021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한 나에게 코로나 블루는 없다

달리기의 일상은 코로나 블루를 하찮은 존재로 만들었다

   2021년이 이틀 남았다. 한 해를 돌아보며 제일 잘한 게 뭔가 돌이켜보면 꾸준히 달린 거구 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잊고 역동적이며 자신감 넘치게 한 해를 보낸 것은 순전히 달리기 습관 때문이다. 그동안 달렸던 기록들을 뒤적여 본다. 도전 정신? 아마도 꼰대가 되고 싶지 않고, 스마트한 외모를 갖고 은 욕심이 아닌가 싶다.

   작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가실 줄 모르더니 오미크론이라는 변종이 나와 온 세계가 난리다. 곧 끝날 거 같았던 코로나는 이젠 사람들이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시시각각 새로운 위험 환경을 만들며 우리 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끊어진지는 오래되었고 자연스럽게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정신적 문제도 사회 문제화되고 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라는 것은 많은 문제를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모이고, 술 한잔도 하고, 주말에 산행도 하고, 이런저런 운동도 같이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다 없어졌다.

  달린다는 것, 마라톤은 코로나 블루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달리는데 누구랑 같이 뛸 필요도 없고 달리는 장소에 제약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저 혼자서, 아무 데나 달리면 된다. 좁은 공간을 벗어나 달리며 자연을 만나는 것 자체가 코로나를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마라톤 동호회가 많은 이유를 보면 혼자 먼 거리를 뛴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다. 외로움이다. 실제로 나도 혼자 달리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특히 두 시간, 세 시간을 페이스를 유지하며 혼자 달린다면... 그만큼 혼자 달리기 루틴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난 달린다. 달린다는 것은 이미 나의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해를 앞두고 얼마나 나의 달리기에 충실했나 점검해 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매달 달렸던 거리와 기록들. 어떤 땐 가볍게 달리고, 어땐 땐 기록을 재며 달렸기에 기록이 들쑥날쑥이다. 대회에 참가할 때와 비교하면 연습주에서10km는 뭐 그렇지만 하프코스나 30km는 준비하는 없이 뛸 때는 대회 참가 때와 기록에서 차이가 난다. 그래도 누적된 거리를 보니 맘이 기쁘다.

   내가 최근 기록을 재는 대회를 달린 건 코이카 해외봉사단으로 캄보디아에서 근무할 때였다. 앙코르와트 마라톤 대회 풀코스와 귀국하기 두 달 전 참가했던 앙코르정글마라톤 128km(캄보디아 더위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게 해 준 것 또한 달리기였다. 캄보디아에서도 나는 달리기 루틴을 한국에서와 똑같이 유지했다).

   귀국 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마라톤은 그 중심에 있었다. 마라톤으로 다져진 건강한 신체와 역동적인 사고는 시니어인 나의 꿈을 무한대로 키워 줬다. 올해도 꾸준히 달렸던 나는 가끔 4시간 이내 기록을 한번 깨보고 싶은 욕심을 갖곤 했다. 내 생애에 sub-4는 딱 한 번이었다 5년 전 58살 때. 그만큼 42.195km를 4시간 안에 들어오는 것이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10년, 상하이 마라톤대회 참가가 첫 번째 대회였다(그 당시 나는 중국 상하이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오래된 기록증을 뒤져보니 감회가 새롭다. 2017년 2월 참가했던 서울레이스챔피언쉽대회 3시간 57분의 기록이 나의 최고 기록이다. 2016년 7월 내 고향 대천해수욕장에서 개최되었던 보령머드임해마라톤 기록증도 보인다. 그때 기록은 4시간 44분, 한여름 무더위에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많은 사람이 기권했던 대회였다. 2018년 코이카 해외봉사단으로 캄보디아로 가며 한국기록증은 더 이상 없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2년째 마라톤 대회도 자취를 감췄다.

달린 흔적들

    내가 달리면서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은 기록을 재는 것이다. 그래야 전력 질주하고 그런 가운데 나의 심장은 크게 뛰고 내 머릿속 잡념도 사라진다. 코로나 블루가 나에게 접근할 공간이 없다 나의 신체나 정신에. 2년간 지긋지긋한 코로나는 나 자신만 본다면 그다지 문제는 아니다. 그만큼 나는 달리며 코로나와 멀어져 있다. 그래서 코로나 시국에 내가 달리는 이유는 더욱 명료하다.

   나는 올해 62살의 한 해를 보냈다. 은퇴자로서 뭔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기에는 나이가 많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라톤을 통해 얻은 강한 체력과 신선한 사고력은 부단히 나를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만든다. 나는 올 한 해 노동부 산하 모 기관의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며 사회적기업의 경영자문을 하며 보람 있는 1년을 보냈다. 나를 활력 있게 만드는 마라톤 덕분에 1년이 행복했다.

   올해가 가기 전 기록에 도전해 봤으면 했는데 대회 공고가 떴다. 전국마라톤협의회에서 주관하는 연습대회. 참가자는 30명으로 제한, 기록이 4시간 이내인 사람만 참가 자격.  

   10월 말이지만 아침의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30명으로 제한했고 대부분이 330(3시간 30분 이내 주자)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경쟁은 어려웠다. 나는 후미에서 서너 사람과 함께 달렸다. 4시간 이내 달려보자는 욕심을 내보고 싶었지만 오버페이스 하다가는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기에 초반에 05:10/km 페이스로 달렸다. 그동안 꾸준히 운동했던 나의 체력을 믿고 싶었다. 하프코스까지는 잘 달렸다. 어차피 앞선 주자들은 나와는 페이스가 다른 주자들이고 제일 후미에 쳐진 서너 명이 함께 달렸다. 그런데 28km 지점 지나면서 나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같이 뛰던 사람들은 이미 내 눈에서 사라지고 내 뒤에는 한 사람뿐. 30km 지나면서는 05:50/km의 기록. 이런 기록이라면 4시간은 물 건너간 것이다. 나는 완주를 목표로 뛰었다. 다만 4시간 30분넘기지 않고 싶었다. 풀코스에서 4시간 반은 아무리 못달려도 넘지 말아야 할 기록으로 내 맘에 새겨진지 오래다. 36km 지나며 두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매번 겪는 고통이지만 호기롭게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4시간 이내의 기록을 위해서는 한 달에 300km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란 걸 다시 한번 깨닫았다(나는 매달 150km 정도를 뛰었을 뿐이다). 04:19:09.  28등. 완주의 기쁨이 컸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이다.

   여의나루 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두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맘은 평온하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몇 년 만에 받아보는 기록증인가. sub-4(4시간 이내의 기록)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이번 참가로 나는 또 한 번 많은 걸 얻었다. 코로나 환경이 먼 나라 얘기로 들린다. 천호역에서 내려 갈아타기 위해 걷는데 자꾸만 마스크를 벗고 싶어 진다. '코로나는 나를 무서워합니다'라고 외치고 싶어 진다. 어느덧 절룩거리던 두 다리도 아무렇지 않게 걷는다. 나의 두 다리는 63살의 희망찬 내년을 향하고 있었다.  역시 내년에도 내가 달려야 하는 이유는 명확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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