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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Mar 03. 2022

남한산성 성곽길을 따라 달리다

남한산성의 숨결 그 이야기

  결혼하면서 성남에 살았으니 꽤나 오래되었다. 50대 초반 해외 발령받아 근무하는 동안 두 딸이 서울로 대학 진학하면서 집은 잠시 서울로 옮겼고 그 뒤 장성한 두 딸은 각자의 길로 갔고 재작년 여름 아내와 둘만 다시 성남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내가 살던 아파트는 재건축이 되어 4천 가구의 대단지 아파트 새집에 되었으니 남한산성을 곁에 두고 산다는 것이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성남으로 돌아온 후 남한산성의 멋에 흠뻑 빠졌다. 다시 성남 집으로 돌아온 때가 퇴직한 시기와 맞물려 나는 서울에서 달렸던 루틴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코스가 문제였다. 서울에서 달렸던 강변의 코스는 최고였다. 성남에서는 아쉽게도 그런 코스는 없다. 그래도 성남 탄천길이 달리는 코스로는 괜찮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달리기 코스는 남한산성길. 하지만 남한산성 안을 달리는 건 좋지만 남한산성까지의 오르막 달리기는 쉽지 않은 코스다. 나는 이 길을 마라톤 연습 구간이라고 생각하며 가끔씩 낑낑대며 달린다. 언젠가 모임에서 건강이 화두가 되어 마라톤 취미에 관심이 집중된 적이 있다. 내가 남한산성을 가끔씩 뛰어 올라간다는 말에 누군가 물었다 ' 남한산성 성곽 둘레가 얼마나 돼요?'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남한산성 전체 성곽길을 달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남한산성 내의 도로나 보행자길을 달렸지 성곽을 따라 달린 적은 없다. 성곽길은 업다운이 심하고 길이 투박해 등산화를 신고 걷는 등산길이다. 하지만 언젠가 또 이런 질문을 받을지도 모르니 나는 천천히 뛰어서라도 성곽전체 길이를 재보자고 했다.(실제로 나는 좁은 오르막 길이나 급경사의 내리막 계단은 벌벌 기며 걸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남한산성 성곽 둘레 길이는 7.7km. 처음으로 남한산성 성곽을 따라 달렸던 길에는 아름다운 경치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느꼈던 남한산성을 써본다.

남문~동문~북문~서문~남문의 성벽길 따라 달렸던 주로 흔적 (7.7k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방어를 목적으로 지은 산성으로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 터를 활용하여 조선 인조 4년(1626) 대대적으로 구축하였다. 성곽(본성) 길이는 7.7km(외성을 포함하면 12km). 남한산성은 다른 산성들과는 달리 산성 내에 마을과 종묘사직을 갖추고 있어 전쟁 시 임금이 남한산성 행궁에 머무르는 임시수도의 역할을 했다.

   2월 중순인데 아직 잔설이 남아 있고 바람도 차다. 그런 날씨에다가 평일이라 인적도 드물다. 나는 남문에서 출발하여 정확히 거리를 측정하기로 했다. 등산객이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4대 문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문이 남문, 이곳은 성남 위례 방면에서 진입하는 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다. 평소 나는 산성역 집에서 출발하여 이 문을 통과 수어장대 또는 동문까지 달리기에 익숙하다. 병자호란 때 인조도 이 문을 통해 산성으로 피신했다. 정조 3년(1779년) 성곽을 개축하면서 지화문이라 불렀다. '門' 한자를 보면 조화로움(또는 평화로움)에 이르다는 뜻이니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던 정조가 개축하면서 이렇게 지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듯하다. 이곳의 4계절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운데 나는 특히 가을의 단풍과 설경의 겨울 지화문을 좋아한다.

남문(지화문)
남문의 풍경들

  남문에서 성곽을 오르는데 오르막 길에 잔설이 남아 있어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저 멀리 아침 햇살이 보이니 햇살을 받아 추위를 녹이고 싶어 빠르게 달려 오른다. 산등성이 정상에 서니 햇살이 눈부신데 음지의 눈은 그대로다. 성곽과 눈의 조화가 아름답다. 순간 병자호란 당시 민초병들이 신었던 짚신과 동상에 시커머진 발가락을 상상하니 아름답던 눈도 야속하게 느껴진다. 운동화를 신은 내 발도 지금 엄청 시리다.  

  동문으로 향한 이 길은 산등성이가 길게 이어지다가 내리막이 계속된다. 산등성이 정상은 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쉬운 곳이다. 지휘와 관측을 위해 세웠던 2층 누각의 남장대터는 주춧돌만 남아있지만 빈자리는 아직도 그때의 기개를 느낄 수 있다

남장대터 누각 자리

   남장대터 산등성이를 달리면 이내 내리막 산길이 계속 이어진다 동문 방향의 하산길. 경치에 취해 달리기엔 내리막이 가파르고 눈도 남아있어 조심스럽게 걸으며 내려온다.

   걸으며 보니 성곽의 단단함이 눈에 들어온다. 촘촘히 쌓은 벽돌은 민초들의 땀이 배어 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난 구멍(총안)은 경사로 되어 있어 밑에서 올라오는 적을 향해 총을 쏘거나 뜨거운 물을 부어 적의 침입을 막았다. 달리며 만나는 암문, 남한산성에는 성곽을 드나들기 위한 비밀 통로(암문)가 16개가 있는데 내려가며 마주치는 이곳의 암문이 가장 크다. 폭과 높이가 3m, 길이는 6m 정도 된다.

암문
총안

   동문을 향한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걷듯 달리듯 내려온다. 남한산성 내 수문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다. 동문 맞은편에 깊이 파인 수문이 있는데 산성 내에는 80여 개의 수문이 있었다고 한다. 남한산성은 자원과 물이 풍부하여 전략적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수문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가는 코스는 남문(지화문)에서 청량산 정상에 있는 수어장대에 오른 후 내려오며 서문과 북문을 거쳐 산성마을에 도착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곽의 아름다움을 꼽자면 나는 단연코 동문 성곽을 꼽는다. 동문 성곽길은 산세가 가파르고 길이 좁아 등산코스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도 많이 찾지 않는다. 나도 이번에 처음 이 길을 달렸다. 눈을 들어 건너편 동문 성곽길을 보니 한 편의 그림이다.

동문과 성곽길

   평소 동문까지 달렸을 때 느꼈던 아쉬움이 있었다. 남한산성 7.7km 본성이 청량산 검단산 남한산으로 이어져있는데 유일하게 이곳이 끊어져있다. 끊어진 곳은 광주에서 성남으로 가는 342번 국도길. 도로를 지하로 하고 성곽을 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하며 동문 성곽길을 오른다. 오래전 서울 외곽 몇 개의 산을 달렸던 트레일런 대회가 생각난다. 울퉁불퉁하고 좁은 산길을 헉헉 거리며 달렸다.

   오전의 남향 햇살이 따뜻해서 기분이 상쾌하다. 사실 이 길이 남한산의 성곽길이고 남한산성은 지금 달리는 이 남한산에서 유래되었다.(수어장대가 있는 산은 청량산이다)

남한산 동문 성곽길

     달리다 보면 유적지 표식 중 제일 많은 것이 '군포지' 표식이다. 군포지는 성을 지키는 초소인데 지금 보존되어 있는 것은 없다. 맨땅에 낙엽만 쌓여있어 표식이 없으면 알 수가 없다. 남한산성 내에는 125개의 군포지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북문을 향해 달리는 성곽길의 우측은 하남시. 비교적 길이 넓고 탁 트인 풍경이라 달리기 좋다.

   하지만 내리막은 경사가 심한 곳은 계단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발디딤이 조심스럽다.

   우측 저 멀리 하남 교산신도시 예정지를 보며 잠시 숨을 고르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온다. 계단을 내려서는 평평한 산등성이를 한참 달린다. 마라톤 하기 딱 좋은 코스다. 그렇게 해서 북문에 닿으니 작년 초에 시작한 북문 개축 공사에 기존에 있던 북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외벽이 단단히 설치되어 있다. 이왕 시작한 공사니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하길 바라며 그 앞을 지나 내가 좋아하는 연주봉옹성을 향해 달린다.

공사 중 북문

   서문과 이어져 있는 연주봉옹성. 옹성은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둘러싼 이중 성벽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옹성이 있는데 그중에서 연주봉옹성이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연주봉옹성에 서면 아차산과 남양주 일대 한강이 보이고 하남시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옹성의 특성상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야 하기에 오르는 길도 쉽지 않다. 나는 오르막을 뛰다 지쳐 걸으며 올라간다.

연주봉옹성 오르는 성곽길

  내가 연주봉옹성을 좋아하는 이유는 만리장성을 닮아서다. 중국에 근무하며 만리장성을 두 번 간 적 있다. 중국에 유명한 것들이 많지만 나는 만리장성을 첫째로 꼽는다. 그 웅장함과 광활함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연주봉옹성의 구조는 만리장성과 비슷하다. 만리장성에 비하면 아기 같지만 내 나름대로의 느낌은 있다. 그래서 나는 수어장대까지 뛰는 날 가끔은 연주봉옹성까지 더 뛰어가기도 다.

연주봉옹성

   연주봉옹성에서 암문을 나와 서문으로 가는 길은 슬픈 길이다. 서문은 인조가 청 태종에게 항복하기 위해 내려갔던 문이다. 서문에서 삼전도로 내려가는 길은 험하고 가파르다. 겨울 눈발이 날리던 그날 인조와 세자는 서문을 통해 내려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의 기억은 잊은 듯 서문은 단아하게 서있다. 서문은 크지는 않지만 세련미가 돋보인다. 슬픈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등산객 한명이 서문에 서서 송파나루를 바라보며 야호 소리를 지른다. 연주봉옹성에서 서문을 거쳐 수어장대로 이르는 성곽길은 비교적 평탄하고 넓어 달리기에 좋다. 그래서 나는 진짜 마라톤하는 기분으로 빠르게 달려 본다.

서문

   수어장대는 청량산 정상에 있다. 남문에서 수어장대를 거쳐 서문으로 이어진 길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며 길도 포장되어 넓다. 성곽 너머 우측에 잠실 위례 경치가 보인다.

수어장대로 향하는 길

   여러 번 왔던 수어장대는 이번엔 그냥 지나친다.

수어장대

   이제 출발지인 남문으로 가는 길.

   수어장대를 내려와 남문으로 가는 성곽길도 업다운이 심하다. 마지막 구간을 나는 천천히 달린다.

   저 멀리 위례 성남이 보인다. 다시 날씨가 흐려진다. 달릴 때는 몰랐는데 추위가 엄습한다. 벗었던 점퍼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천천히 달려 남문에 도착하여 달린 거리를 핸펀으로 확인한다. 이제 남한산성 성곽길 길이를 누가 물어봐도 말할 수 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남문에서 천천히 걸어 산성마을로 내려왔다. 마지막 추위에 인적 없는 마을이 쓸쓸하다. 초가집 너머 행궁에는 마치 조선시대 임금인 인조가 아직도 살고 있는 것 같다.

산성마을과 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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