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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Apr 09. 2022

파리는 역시 파리다

느낌이 다른 도시, 도시 자체가 예술

   파리에서 테제베 고속열차를 타고 다시 독일로 향했다. 파리를 출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카셀까지 가는 여정, 5시간 25분 걸린다. 열차가 파리 동역을 출발하고 시내를 벗어나자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초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열차 안에서 파리에서 뛰었던 아침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파리에 4일간 머물며 딱 한번 뛰었던 그 시간을. 이번 일정이 아내, 작은 딸과 함께하는 여정이기에 혼자 뛰는 시간을 갖는 게 어려웠지만 그래도 한번은 뛰면서 파리 시내를 훑어보고 싶었다.

    파리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에펠탑, 개선문, 세느강, 루브르 박물관, 몽마르트르 언덕  무수히 많다. 단어를 떠올리면 누구나 아름다운 파리를 상상한다. 그만큼 파리는 가보고 싶은 도시다.

   파리 시내(중심가)는 그다지 크지 않은 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소들이 뛰어서 갈 정도의 거리에 있다(달리기를  즐기는 사람 기준의 거리 개념이며 걸어서 다닐 거리는 아니다). 나는 파리 시내 주요 명소를 두발로 뛰어보기로 하고 이른 아침 옷을 챙겨 입고 호텔을 나왔다. 아내에게 한 시간 반 정도 시간 양해를 구했다. 이번 여정에서 도시 도시에 도착하면 한번은 꼭 시내를 달리기로 내심 결정했던 터라 캐리어 안에 운동복은 필수였다.

파리 시내 달렸던 코스

   이미 며칠 동안 아내, 작은 딸과 함께 파리 시내를 보았다. 하지만 이른 아침 혼자 달리는 느낌은 또 달랐다. 호텔 앞 오페라하우스 도로는 한낮의 번잡스러움은 온 데 간데없고 고즈넉한 느낌마저 들었다.

오페라하우스 거리

   카페의 아침도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덩그러니 빈 탁자와 의자만 정열해 있다. 잠이 덜 깬 파리 거리의 아침은 한결 여유로웠다.

    호텔에서 1km 거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 첫날 도착하여 끝도 없는 줄을 서며 기다렸던 광장을 나는 혼자 맘껏 향유하며 달렸다. 달려서 와 보는 느낌은 며칠 전 붐비며 기다렸던 그때의 느낌과 너무 달랐다. 이 유명한 곳을 혼자만의 공간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역시 달리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달리는 이유였다.

루브르 박물관

   파리 시내에서 아침에 달리기 운동하는 사람을 심심찮게 봤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선문을 향해 달리는 데 다양한 연령대의 달리미를 만났다. 파리의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었다. 카루젤 개선문(우리가 알고 있는 개선문이 아님)을 지나 아름다운 튈리히 정원을 향해 달렸다.

루브르 박물관의 여유

    이 길은 콩코드 광장까지 1.3km 정도 이어지다가 샹젤리제 거리가 시작되고 그 끝이 개선문이다. 오버페이스 하고 싶을 정도로 달리기 좋은 곳이다.

    아름다운 정원은 나의 맘까지 아름답게 만들었다. 달린다는 것이 나에게는 체력을 단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감성을 얻는 행위라는 것이라는  또 한다. 아름다운 정원을 곁에 두고 차마 빨리 달릴 수 없어 천천히 뛰며 나만의 아침에 푹 빠졌다. 달리며 황홀한 기분을 느끼는 곳이 파리다.

튈르니 정원

   파리는 도시 자체가 그림이다. 그래서 하루밖에 달리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웠다.

   콩코드 광장의 분수대 분수가 아침 바람에 빗으로 빚은 머릿결 같이 한쪽으로 포말을 일으키며 흩어졌다. 미끄러운 바닥을 조심하며 나는 앞으로 계속 달렸다.

콩코드 광장 분수대

    샹젤리제 거리는 젊음의 거리다. 그리고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품 매장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가끔 낭만은 부유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거리의 이른 아침은 조용했다. 그래서 그런지 낭만과 달리기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장을 나는 뛰고 있었다.

   쭉 뻗은 도로, 달리고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일직선의 낭만, 야외 카페테리아에서 나는 모닝 커피향... 저 멀리 개선문이 보였다.

저멀리 보이는 개선문

   한걸음에 내달아 달리고 싶은 맘이지만 거리가 있어 개선문이 좀체 가까이 오지 않는다. 속력을 내서 달렸다. 숨이 가빴지만 상쾌한 느낌은 배가 되었다. 숨을 헐떡이며 닿은 개선문.

개선문

    여기까지 4.5km다. 개선장군이 되어 혼자 느끼는 감동은 엊그제 을 때의 느낌과 또 다른 감흥이었다. 뭐랄까... 내 주변에 흩어져 있는 행복의 감정 조각들을 모두 모아 내 꺼로 만든 느낌? 그리고 에펠탑을 향해 달렸다. 개선문에서 에펠탑까지는 2km 정도.  파리 시내 어디서든 에펠탑을 볼 수 있다.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은 파리에서는 300m의 철골탑은 엄청난 높이다. 빠른 걸음으로 달렸다. 에펠탑을 보고 거기서부터 돌아 달리는 코스로 세느강변을 달려 총 11.5km를 1시간 10분 정도로 주변 경관을 즐기며 편하게 달리자고 했지만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너무 여유를 부려 10분 정도 초과가 예상되어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에 빠듯해 빠르게 달렸다(대개 이런 때 나의 두발은 05:20/1km 속도다). 구글맵을 보며 정확히 달려 도로를 빠져나오자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다시 보지만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광경이다. 에펠탑은 높이로 인해 가까이 보기보다는 좀 떨어져 보는 게 더 멋있다. 호텔로 돌아가며 세느강변의 어느 다리에서 에펠탑을 보며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수없이 눌렀다. 그만큼 에펠탑은 최고의 그림이었다. 강변의 유람선과 하늘 그리고 철골탑과의 조화, 나는 멍하니 다리에 서 있었다. 특별히 생각한 것은 없었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공간이 너무나 조화롭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 두발을 쳐다봤다.

에펠탑

   아내는 오늘 아침 나에게 뛰는 걸 허락하며 아침 식사에 절대 늦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셋의 여행에서 뛴다고 혼자 행동하지 말라며 한 말이었다.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빨리 뛰려니 숨이 가빴지만 진짜 뛰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뛰면 하루 가뿐한 몸상태로 되니 좋구나~~.'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뛰었다.

   세느강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었다. 파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만큼 피부색도 다양하다. 흑인 청년의 뛰는 모습에서는 강한 심장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세느강변의 달리미

   강변은 최적의 달리기 코스다. 한강변도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 좋은 코스다. 한강변과 세느강변의 경치가 오버랩되니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여기가 한강인가? 세느강인가? 달릴 때의 즐거움, 상상, 삶의 자신감은 장소가 어디든 같다. 세느강변에서 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달렸다. 시니어의 꿈을 그리며 달렸다. 내가 달리는 이유는 60대 젊은 청년이 되고 싶어서다. 그렇게 나는 세느강변을 계속 달렸다. 3km 정도를 달려 좌측에 루브르 박물관이 보이고 측이 오르세 미술관. 세느강 다리에서 오르세 미술관의 전경을 찍는데 사진이 아닌 그림이 되었다. 오르세 미술관 외관 또한 거대한 작품이었다.

오르세 미술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기차역으로 쓰였다는 오르세 미술관은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 화가들의 작품들이 많다. 파리에 와서 루브르 박물관 외에 퐁피두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전시를 봤다. 루브르 박물관은 너무나 방대하고 장르별 분류된 수많은 공간이 있어 집중하기 어려웠다. 반면에 오르세 미술관은 회회 중심의 작품이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도 많아 나는 루브르 박물관보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며칠 전 본 미술관 내부의 둥근 천장과 대형 시계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느낌도 들었고.

오르세 미술관의 대형 시계

  오르세 미술관에 많이 전시되어 있는 고흐, 세잔느, 폴고갱, 마네, 모리조의 작품들... 그리고 부가티의 조각품. 나는 특히 세잔느 작품을 좋아한다.

오르세 미술관의 세잔느
반고흐

    오르세 미술관 앞 다리를 건너 루브르 박물관 광장에 다시 섰다. 루브르 궁전의 과거 이야기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해 수많은 예술 작품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박물관 광장에 중국 출신 미국 건축가 이오밍페이의 유리 피라미드 작품의 이야기, 과거와 현재가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범부의 눈에 비친 예술의 세계 그 이야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루브르 박물관 광장의 유리 피라미드

   예술을 품고 달린 건강한 파리의 아침, 아침식사 테이블에 놓여 있는 복고풍 식기와 수저세트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건 대량 생산한 그저 그런 상품이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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