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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Jun 27. 2022

내가 달리면서 배우는 것

길 위에서 배우는 인생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상실의 시대, 1Q84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작가지만 그가 유명한 마라토너라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의 작품에 그다지 흥미를 못 느껴 읽어본 책이 없다. 근데 딱 한 권 읽어본 게 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달리기를 하게 된 동기와 왜 달리는지를 에세이 형식으로 적은 책인데 달리기가 생활의 일부분이 된 내가 딱 공감하는 내용이다. 2009년도 발간되었는데 나는 그 책을 2016년 즈음 읽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4년 정도 지난 뒤였다. 내가 쓰고 싶은 말이 거의 다 이 책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만큼 공감하는 바가 컸다. 책에서 하루키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다'라고 썼다. 이 책을 통해 하루키가 엄청난 마라토너라는 걸 알게 된 뒤로 나는 그의 다작의 비밀,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문장력이 달리며 얻어졌다는 사실에 무척 공감하며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도 달리며 많은 것을 생각하고 많은 것을 구상하고 많은 글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나보다 11살이 많다. 그의 풀코스 기록은 3시간대며 100km 울트라마라톤은 11시간대다. 나보다 한참 빠른 기록이다. 글로서도 존경스럽지만 달리기로는 더욱 존경스럽다. 이 책을 발간한 2009년은 그의 나이가 60이 되던 해였다. 70이 넘은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하루키의 동력이 달리기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남자들이 퇴직하고 느끼는 상실감은 크다. 60 중반을 넘어 70에 가까워지면서는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존재)는 거의 없어져 버린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사회공간에서나 자신의 생각공간에서나)혼자 살아가야 하는 상실의 시대를 맞는다. 요즘은 백세시대다. 70살 이전은 노인이라고 말할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시니어들이 당면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도 당사자로서 직접 겪고 있는 중이지만 점점 사회로부터 유리되는 자신을 보며 뭔가를 하지 으면 무능한 늙은이로 전락할 거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래서 나도 그 뭔가를 해야겠는데 그중 하나가 달리기, 마라톤이다. 나는 이 뭔가를 통해 그나마 시니어 세대로 진입을 안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2022년 상반기를 보내며 나는 너무 게을렀다. 4월 독일에서의 생활을 제외하고라도 한 달에 150km를 달리자던 약속을 지키질 못했다. 지난 몇 개월 나는 한달에 60~90km밖에 안 뛰었다. 핑계가 많았다. 이번 주는 내내 비가 온다는 소식에 아침 일찍 탄천으로 향했다. 작년 한해는 시니어에 맞는 job을 찾아 일주일에 두세 번 출근하며 왕성하게 보냈는데 올해 할 일이 없으니 나태해졌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달렸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달리기를 못했다는 것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은 하루키와 비슷하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못했고 많은 구상을 못했다는 얘기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단순한 시니어 늙은이가 되어가는 불길한 상반기를 보낸 것이었다. 하반기의 할 일을 어느 정도 확정하면서 나는 6월 이번 달은 150km 달리기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하반기에 60대 청년과 같은 꿈을 담고, 때론 소설 줄거리를 구상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하루키와 같이 70대에 내가 젊은이 못지않은 정신세계로 살 생활의 구상을 하며 달렸다. 오늘 15km를 달려 나는 이번 달에 150km를 채웠다. 한 달에 150km 달리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은 10km 이상 달려야 하고 2주마다 한 번은 하프코스를 달려야 한다. 쉽지 않은 자기와의 약속이다. 올해 처음으로 이 약속을 지켰다.

   게으름은 신체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정신까지 전이되어 무기력한 삶이 된다. 시니어 세대는 몸이 약해지면서 몸과 정신이 같이 늙을 가능성이 많다. 나는 이런 시니어가 되고 싶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올해 74살이다. 그의 왕성한 집필 활동의 원천이 달리기다. 아마 지금 나이에도 그는 달리기 루틴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달리는 정도는 하루키에 비하면 힘들다고 말할 수준도 아니다. 하루키는 묘비명을 정했다고 책에 썼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나이가 들며 내 기록이 더 나아지진 않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달리고 싶다. 천천히 달리더라도 적어도 걷지는 않고 말이다. 내가 달리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달리며 미래의 삶을 구상하기 위해서다. 70살에 내가 펼치고 싶은 나의 세상이 있다. 7년 뒤다. 그래서 나는 건강해야 한다. 생활 설계나 구상도 아주 구체적으로 잘 준비해야 한다. 그런 것들의 대부분을 나는 달리며 한다. 달리면 머리가 맑기 때문이다. 먼 미래의 시간들을 준비하며 책임 있게 사는 자세, 시니어 세대로서 소비하는 시간이 아닌 만들어가는 시간, 이 시간의 대부분을 나는 달리면서 준비하고 싶다. 내가 앞으로도 변함 없이 달려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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