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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Nov 21. 2022

공식 대회 기록은 숫자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오랜만의 공식 대회 하프코스 출전

   연습 달리기를 하면서도 나는 늘 기록을 잰다. 하지만 무리한 목표를 두고 달리진 않는다. 마라톤을 시작하며 한때는 기록에 욕심을 부려 혼자 이런저런 훈련을 한 적도 있지만 열댓 번의 공식 대회 풀코스 출전에서 나의 기록은 sub4(4시간 안에 완주)를 한번 달성한 것이 전부였고 대개 4시간 10분~4시간 30분 사이였다. 60대가 어서는 4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으로 뛰고 있다. 사실 내가 42.195km 뛰며 21km 정도까지는 기록이 나쁘진 않다. 28km 넘으며 급격히 체력이 떨어져 페이스가 느려지다 보니 4시간이 넘는다. 지금은 욕심내지 않고 풀코스를 뛰고 있다. 그렇더라도 중장년의 기록에 비해 나쁘지 않으니 그것에 만족한다.

    그럼 최근의 내 하프코스 기록증은? 없다. 마라톤을 시작한 후 똥배짱으로 대회는 풀코스만 참가했다. 하프코스 대회 첫 참가였던 2015년 상하이 마라톤, 처음이자 마지막인 공식 대회 하프코스 참가 기록이다. 그때 하프코스를 뛰고 나서 두 다리에 뭔 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상하이 집 근처의 발마사지집에 가서 한 시간 마사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022년 하반기를 사회적기업 경영컨설팅을 하며 바쁘게 지냈다. 한해를 마감하며 나는 일 년의 생애에 기억에 남는 강한 임팩트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하프코스 최고 기록 도전. 평소 운동으로 하프코스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하지만 기록에 대한 부담감은 있다. 나는 연습에서 하프코스를 2시간~2시간 5분 사이에 뛰곤 한다. 서너 달에 한번 전력 질주해도 1시간 55분 정도다. 최고 기록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목표 1시간 48분. 마라톤 대회는 경쟁자들이 있어 연습 때보다는 기록이 더 좋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스피드를 유지하며 처지지 않고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 한번 처지면 따라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식대회 참가 신청을 하며 나는 악착같이 뛰어 보기로 했다. 목표 기록을 달성한다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이다. 그건 내 시니어 인생의 또 하나의 도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2022년 11월 13일 일요일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출발지에는 만여 명의 참여자가 모였다. 하프코스 참가자는 1,200명 정도(대부분 참가자가 5~10km, 풀코스는 400명 정도). 코스는 올림픽공원을 두 바퀴 돈 후 한강변으로 달려 잠실운동장에서 턴해 다시 돌아오는 코스. 날씨가 조금 흐렸지만 춥지는 않고 코스 경관도 좋아 최적의 주로 조건이다.

출발지-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광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 나왔지만 나는 오늘 비장한 각오로 출발선에 섰다. '1시간 48분... 한번 달려 보자' '2022년 잘 살았다,  시니어지만 뭔가를 배우며 참신한 머리를 유지하고 신체는 젊은이 못지않게 단단해지자' 나는 늙고 싶지 않다고, 특히 정신은 더 늙고 싶지 않다고 서서 외치고 있었다. 출발선에서 몸을 풀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총성이 울렸다. 일제히 주자들이 뛰어 나간다. 나는 하프코스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와 나란히 달렸다. 오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5분/1km로 꾸준히 뛰어야 한다. 조금 버거운 도전이지만 전력질주 페이스로 달렸다. 나는 예상했던 기록인 10km를 48분에 태그 하자 페메를 제치고 앞으로 달렸다. 17~18km 지나며 5분 40초/1km로 느려질 거를 예상하기에 그전까지는 전력질주가 필요했다. 15km 넘어서도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다. 이제 골인지점이 3km 남았다. 점점 두 다리가 무거워지고 스피드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지난 10년간 나는 많이도 달렸다. 특히 몸이 찌쁘드하고 정신이 산만할 때 많이 달렸다. 마라톤을 하며 얻고자 했던 많은 것들 중 신체의 건강은 두 번째였다. 나는 정신이 늙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쉬엄쉬엄 달리는 것이 아닌 한계의 달리기를 통해 정신을 일깨우고자 했다 늘. 그래서 오늘의 도전은 도전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고 기록증에 신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지친 두 다리를 힘차게 앞으로 내디뎠다. 풀코스가 아닌 하프 코스니 얼마 안 남았다고 되뇌었다. 20km 지점에서 페가 나를 앞지른다. 나는 뒤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그를 쫓아 달렸다. 그래야 1시간 50분 안에 골인하기 때문이다. 올림픽공원에 접어들어 저 멀리 골인점이 보이자 페메는 더 빠르게 치고 나갔다. 몇백 미터 남기고 그를 쫓아가긴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페이스메이커와의 간격을 보면 1시간 50분 안에는 들어갈 거 같았다. 그런데... 골인점에 다다르자 아치의 시계가 희미하게 보이는데 1시간 53분을 가리킨다. 그럼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도 기록을 초과했단 말인가? 아쉬웠다. 하지만 하프코스 최고 기록이니 뿌듯한 맘이 들었다.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긴 줄을 서서 기다려 기록이 나온 전광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내 앞에 두 명의 젊은이가 기다리며 말을 건넨다. '아버님 하프코스 뛰셨나 봐요?' (마라톤 대회는 배번을 보면 참가한 종목을 알 수 있다)' '스마트워치로 보니깐 1km 이상은 더 뛴 거 같은데 어떠셨어요?' 올림픽공원을 외곽으로 두 바퀴 돈 후 바로 한강변으로 달리는 주로였는데 한강변으로 나가기 전 올림픽공원 안으로 진입해서 한참을 달린 후 한강변을 향해 뛰어갔던 게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오늘 이 기록만으로도 나는 나를 칭찬할 만하니까.

    2015년 첫 대회 참가의 기억이 생생하다. 3만 5천 명의 참가자들이 상하이 황푸강 난징루 도로에 길게 이어져 있었다. 참가자들이 다 빠져나가는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때 나는 첫 출전 마라톤으로 하프코스를 2시간 안에 골인하며 기록이 주는 성취감에  매료되었다.

   마라톤에서 기록은 나를 뛰게 만드는 동력이다. 꾸준히 운동해야만 달성할 수 있다는 정직한 계시다. 7년 전 상하이 대회 기록보다 좋으니 기분이 좋았다. 올해 마무리는 이 정도면 좋은 피날레라 생각하며 전철을 탔다.

  집에 돌아와 목욕하고 쉬고 있는데 주최측으로 부터 문자가 왔다.

헐~~ 주로 안내의 실수로 1.4km 더 뛰었다니... 그럼 내 진짜 기록은?

주관사 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난리가 났다. 이런 대회는 처음이다 미친*들아, 환불해 달라, 다신 니들이 하는 대회는 참가 안 한다 등등. 1.4km를 더 안 뛰었다면?? 내 기록도 꽤 좋았을 텐데... 와우~~해냈다!! 수정된 기록증으로 받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니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주최 측에서 다음 대회 한번 무료로 참가할 수 있는 쿠폰을 준다니 내년 봄에 다시 도전하여 1시간 40분대의 기록증을 받아보자며 맘속으로 도전의 의지를 다졌다. 공짜로 대회 참가하고 다시 도전의 이유가 생겼으니 좋고.

   1시간 48분을 맘에 새겼다. 기록은 자랑하기 위해 만드는 건 아니다. 다만 기록이 있어야 도전할 목표가 뚜렷해지고 목표가 뚜렷해지면 실천할 계획이 구체화되고 그런 계획이나 생활이 내 삶의 활력소가 된다. 기록은 때로는 사람을 지치게도 하고 중간에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안다면 숫자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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