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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Jan 25. 2023

여차하면 외계인, 시니어

퇴직 후 보낸 5년의 시간들

   지난 5년은 과거의 나를 지우는 시간이었다. 퇴직 후 나는 생각만 많고 길을 못 찾아 악몽에 시달린 적이 있다.  가끔 상상의 도피처로 퇴사한 회사를 그리워하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은 나를 나약하게 만들 뿐이었다.

    잠결에 내가 이상한 소리를 내자 아내가 놀라 나를 흔들어 깨웠다. 회사 다닐 적 꿈을 꾸며 한 잠꼬대. 회사를 떠난 지 언제인데 아직도 이런 꿈을 꾸나 잠시 짜증이 났다. 현실에선 과거의 나를 다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꿈에서는 아직이었다. 거실로 나왔다. 꿈에서조차 과거의 나를 지워버려야 내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몇 번을 되뇌었다. 그만큼 퇴직 후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2년 전인가 본 면접의 기억이 떠오른다. 면접관이 서류를 훑어보더니 안경을 끌어내리며 힐끔 나를 쳐다봤다. 안경 너머 눈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회사 경력을 보니 이일 하고는 맞지 않는 거 같은데 … ….' 마스크 넘어 풍기는 고약한 분위기에 기분이 팍 상했다. 퇴직했지만 건강하고 일을 하면 생활도 활기차고 돈도 벌어 좋은 거 아니냐고 대답하고 면접장을 빠져나왔다. **시청 ****과 단기 일자리 채용공고(현장 확인, 서류 정리 등 공무원보조 단순업무) 면접 자리였다. 만 55살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1년 계약 일자리였기에 나이만 생각하고 응시했다. 저소득층·차상위계층·부양가족이 많은 자 등에 가점을 준다는 문구는 있었다. 나는 면접장에서의 불쾌한 기분을 저소득층 일자리를 뺏으려는 내 욕심 탓으로 돌리며 상한 기분을 위로했다.

    코이카 2년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여 서너 번의 면접을 봤다. 그중에 한 번이 위의 지자체 일자리. 그리고 작은 회사 두세 곳. 어떤 회사 책임자급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갔었다. 나이 제한이 없다고 해서 지원한 건데 지원자들 대부분 40대. 50대도 거의 없는 거 같았다. 60대인 나를 쳐다보는 눈이 마치 나를 화성에서 온 남자 보는 듯했다. 이럴 거면 면접 오라고 하지나 말 것이지 60대 한 명은 뭐 구색 맞추긴가? 불편한 대기실 분위기를 애써 외면하며 면접을 기다렸다. 나이를 먹었더라도 면접은 늘 긴장된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느끼는 무거운 침묵은 또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분위기다. 기다리는 시간이 일 년 같이 길게 느껴지며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퇴직 후에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 할 일 없을 거라고, 하물며 이력서 쓸 일은 더더욱 없을 거라고 했는데… …. 그러다 보니 면접을 보고 나면 남는 게 후회밖에 없다. 면접을 보고 온 날 밤 나는 악몽을 꾸곤 했다.


    퇴직 후에 겪는 가장 큰 혼란은 일상의 리듬이 깨지는 것이다. 기본적인 일상에서부터 과거의 나와 다른 삶과 마주한다. 퇴직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없다. 시간은 많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회사 생활할 때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문제인데 퇴직 후에는 머릿속이 텅 비어 문제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끄적여보지만 과거와 연관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만큼 퇴직 후 시니어의 삶은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이다. 나는 앞으로 새롭게 마주할 것들을 일(job)에 대한 부분과 삶(life)의 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니어에게 이런 계획은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필연적으로 과거의 나와 분리된 미래의 나를 생각해야 했다. 과거의 나를 지우고 내가 취할 일(정확히는 취할 수 있는 일)이 뭔지 현실을 자각해야만 했다.

    현실에서의 상처를 덜 받기 위해 과거의 나를 지우는 노력을 했지만 흔한 말로 나는 아직 물이 덜 빠졌다. 커피숍에서 옆자리 젊은 친구들이 알 듯 모를듯한 단어 갓성비니 웃픈이니 하는 말을 할 때 뭔 소리여 하며 쳐다보는 순간 나는 외계인이 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퇴직 후 자신의 달라진 처지와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왜소해지는 나의 존재를 인정하기까지는 의외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그것은 외계인이 되고 싶지 않은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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