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내 평생의 꿈은 서울에서 파리까지 걸어가는 것. 나는 올 4월, 30년의 직장생활을 마친 58살의 후기 청년이다. 중년이라는 말이 더 익숙한 나이지만, 아직 마음도 몸도 젊은 청년이다. 1,000km 국토 종횡단 도보여행은 '후기 청년'으로서 도전의 시작이었다. 이 글은 2017년 6월 4일 출발하여 임진각에서 부산까지 국토종단 560km, 강화도에서 속초까지 국토횡단 440km를 혼자 걸었던 이야기다. 24일 동안 10kg 넘는 배낭을 메고 하루 40km 이상을 걸으며 때론 1평도 안 되는 텐트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50대에 접어들어 직장과 사회에서 퇴물 취급을 당하고 가정에서조차 소외되어가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지는 세대가 아닌, 아직도 왕성한 청년임을 사회에 알리고 싶다.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해 있는 40대, 50대에게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아주고 싶다.


24일간 두 발로 걸은 국토종횡단 노정

목차

프롤로그

제 1장 두려운 첫걸음

제 2장 서울 서울 서울

제 3장 다시 집을 떠나며

제 4장 첫 번째 시련

제 5장 반가운 동행

제 6장 짝 다리로 걷다

제 7장 문학이 있는 발걸음

제 8장 아~ 추풍령

제 9장 추풍령 넘어 남쪽으로

제 10장 호국의 다리 건너

제 11장 청도로 가는 길

제 12장 새마을 새마음 정신으로

제 13장 낙동강 지나 금정산으로

제 14장 걸어서 온 부산역

제 15장 설레는 출발, 국토횡단

제 16장 한강 아라뱃길

제 17장 맨발의 귀가

제 18장 한강에서 남한강으로

제 19장 드디어 강원도로 걷다

제 20장 산골 초등학교 내 집

제 21장 두 개의 고개를 넘다

제 22장 미친 도전, 대관령을 뛰어서 넘다

제 23장 빗속의 동해안 길

제 24장 1,000km의 끝


프롤로그

나에게 2017년의 시작은 조금 우다. 오래 근무했던 지금의 회사에서 성과가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롭게 밀려오는 4차 산업혁명으로 '경험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회사에서도 오래 직장 생활한 내 나이를 '지는 세대'로 보는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느새 나는 회사에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책장 깊숙이 꽂혀 있는 책을 꺼냈다. 13년 만에 처음 꺼내보는 것이었지만 그때 책을 읽으며 했던 다짐이 아직 생생했다. 당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서 십오 년을 근무했던 나는 1년 전 경쟁회사로 이직해 신규 사업을 책임지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맡은 신규 사업은 2년 차에도 나질 기미가 없었다. 회사도, 나도, 이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책임자인 나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피가 마를 지경이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회사가 나를 선택한 것은 능력을 믿었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니 나 스스로도 자존심이 구겨졌다. 애꿎은 저녁 술자리만 늘어났고, 이러다 반강제로 퇴직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나를 감싸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답답한 마음에 점심도 거른 채 광화문 거리를 걷고 있다. 그때 한 건물에 걸려 있던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나는 무심코 그 건물 지하의 책방으로 내려갔다. '책 속에 무슨 답이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이 책 저 책을 뒤지던 내 눈에 두꺼운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한 노인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2,000km를 혼자 걸었다는 내용이었다. 신기한 마음에 대충 훑어보다 그 책 3권을 전부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전직 기자 출신의 프랑스인이자 61살 노인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2,000km 실크로드를 2년간 걸어서 간 기록. (그 당시에는 노인이라고 느꼈었는데 지금 내 나이를 보니 노인이라고 하긴 좀 그렇다.) 단숨에 읽어 버린 그 책에서 나는 직면했던 문제의 꿈을 찾았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나도 언젠가는 걸을 것이며, 그 노인보 더 먼 거리를 걷겠다고.

그 당시 나는 성실한 남편으로서, 두 딸의 아버지로서 가정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자아, 인생을 논하기에 가정이라는 틀은 너무나 완고했다. 성실하게 가장의 역할을 다하면서 사는 것이 내 인생의 최종 목적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 개인의 다른 세계를 꿈꾸는 것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어찌 보면 가정에서 나는 없었고 남편과 아버지만 있었다. 가족이란 것은 나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기에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행복이란 다 그런 거니까.

하지만 그 책을 보는 순간 나는 ''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묻게 되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언젠가는 아주 먼 길을 걸어 보자고 다짐했다. TV에서 본 티베트 승려들처럼 오체투지(五體投地)로 걷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현실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아주 먼 길을 걷는다면 무언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나이는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걸었던 나이보다 세 살이 적다. 58살. 요즘 하는 말로는 '후기 청년'이다. 장년이라는 말을 듣기에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아직 모든 것이 너무 젊은 나이다. 책 속에서 그 노인을 만난 후로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던 '언젠가는 나도 아주 멀리 걸어야겠다'는 꿈을 펼치기 좋은 나이다.

하지만 , 꿈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정한 후 직면 문제는 생각보다 많았다. 우선 가족의 동의가 필요했다. 두 번째는 어디를, 얼마 동안 걸을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다. 마지막으로는 나의 신체가 아주 먼 거리를 걸을 정도의 준비가 필요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배낭을 메고 때론 야영지에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며 1,000km를 혼자 걷는다고 한다면 그 누구라도 반대할 게 뻔하다. 하물며 아내는 말하나마나다. 아내를 설득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이번 국토 종횡단을 어렵사리 동의해준 아내는 내가 걷는 24일 내내 나의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 주었다.

성공적인 완주를 위해서는 나의 신체를 장거리 걷기에 적합하게 단련하는 게 필요했다. 평소 불규칙한 운동으로는 1,000km를 하루 40km 이상씩 걸어 24일에 완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짧지만 4개월간의 체계적인 훈련을 시작해 그 계획을 성실히 이행했는데 그것이 내 몸의 좋은 토양이 되었다. 절제된 생활에 체계적인 훈련을 빠뜨리지 않고 준비한 4개월은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걷기로 결정한 초반에는 국토종단으로 임진각에서 부산까지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 언제 다시 국토를 걸을 기회가 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또한 두 번째로 꿈꾸고 있는 중국 동서횡단 5,600km를 위해서도 국토 종횡단 1,000km를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참에 마음껏 국토를 사랑하고 느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1,000km 도보여행에서 전라도 지역이 빠진 게 못내 아쉬웠다. 전라도는 해안가 도보여행 계획으로, 다음으로 기약했다.

이번 국토 횡단 1,000km 백패킹 도보여행은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도전이었지만, 상심하고 절망하는 중장년층을 위한 도전이기도 했다. 요즘 우리 사회는 40대 중후반이 되 직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해 50대가 되면 중년도, 노인도 아닌 끼인 세대가 다. 젊은 시절 온몸을 바쳐 일했던 50대는 자녀들이 성장하며 가정으로부 소외되고 사회에서도 저물어가는 세대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의 50대들은 자신의 꿈을 고 자신감도 잃었다. 하지만 그들도 분명 2,30대에는 '뭔들 못하겠냐' 하는 자신감이 가득했었다. 다만 가정을 위해, 회사를 위해 젊음을 바쳐 우직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50대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주고 싶다. 사람들에게도 50대는 장년이 아닌, 청년의 후기 시대라는 사실을 일깨주고 싶다.


나는 이번 도전을 하며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는, 어떤 경우라도 차는 타지 않는다.

둘째는, 당일 목적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당일에 도착한다.

이 두 가지 원칙은 걸었던 24일 내내 내가 지켜낸 나와의 약속이었다.

마지막으로 무모한 도전을 반대하면서도 24일간 매일 걱정하며 전폭적으로 나를 응원해준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2017년 8월 김 종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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