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딸과의 대화
2007. 3. 24
발신 : 아빠
수신 : 작은 딸
제목 : ㅎ ㅎ!
우리 예슬이 일찍 일어나서 답장했구나. 고맙구나. 아빠도 예슬이에게 메일 쓰고 예슬이 편지 읽을 때 제일 기쁘단다. 아빠는 예슬이가 늘 곁에 있는 거 같아. 예슬이도 그렇지?
아빠랑 홧팅하기로 했으니 공부할 때 어렵더라도 짜증 내지 말고 꼭 이겨내야 해 알았지?
배 아프면 화장실 가면 돼. 배 아프지 않게 조심하구.
엄마는 아빠보다 더 잘하는 거야 아빠는 말로 하지만 엄마는 마음으로 하거든. 엄마 이해하고 같이 해 알았지? 언니랑도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고. 학교에서도 선생님 존경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모든 과목을 다 잘할 수는 없는 거야. 너도 잘하는 과목이 많잖어. 수학은 아빠도 힘들어했던 과목이야. 지금 예슬이는 아빠보다 훨씬 난 거야. 자 힘내자 응?
편지지 어때? 별이 보여? 아빠는 어렸을 때 별을 보고 소원을 빌기도 했어. 예슬이는 하늘의 별을 보면 어땠어? 왠지 별나라에 가 보고 싶은 그런 생각 있었지? 저 세계는 누가 살까 궁금해하고. 편지지의 별처럼 희망을 갖고 하자. 아빠도 열심히 노력할게.
예슬이 사랑해~~ 기분 좋게 잘할 수 있지? 아빠가 항상 곁에 있다고 생각하고 홧팅하자. 그럼 안녕~~
>> 작은 딸과의 글에서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한 글이 많다. 그만큼 암묵적으로 공부를 강요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작은 딸 스스로 그렇게 느낄 분위기 때문이었다. 다 드러낼 수 없는 작은 딸의 고민과 그 고민을 조금밖에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이 글에 묻어있다. 공부 문제로 생긴 엄마와의 트러블을 중재하려고 엄마를 치켜세워 몇 자 적었지만 그게 얼마나 작은 딸의 맘에 와닿았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혼자 떠나와 안타까운 맘에 그렇게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쁜 편지지에 글을 써 보내면 좋겠다고 해서 별이 들어간 편지지에 글을 썼다. 작은 딸의 감성은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편이었다. 미대에 입학하고 정형화된 수업방식에 반항하며 창의력을 경시하는 교수를 무척 싫어했다. 하지만 그런 반항이 지금의 작은 딸 예술세계의 원동력이 되었다. 작은 딸은 독일에서 무한한 creative를 발현하며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실험하고 있다. 내가 작은 딸을 이해하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무지한 아빠였다.
PS : 작은 딸은 자주 배가 아프다고 했다. 공부 얘기하면서, 가기 싫은 학원을 나서기 전에, 외출하러 집 문을 나서자마자... 그런 작은 딸을 보고 나는 가끔 화를 냈다. 집 나오기 전 화장실 들렀다 오면 되는데 꼭 나와서 그런다고. 그런데 그건 원래의 증상이 아닌 새로운 상황을 맞아 뇌에서 신체로 전달되는 과민한 대장의 반응 증상이었다.
베를린에서, 런던에서, 파리에서. 그리고 한국에 와 있을 때도 작은 딸은 아빠가 '어씨' 역할을 잘하려면 작품을 많이 봐야 한다며 나를 전시장에 많이 데리고 갔다. 지금은 작은 딸과 외출한다면 나는 외출 전 작은 딸에게 먼저 화장실부터 갔다 오라며 느긋하게 기다린다. 어린 시절 공부 스트레스 때문은 아닌가 해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작은 딸과 함께하는 예술 여행은 나의 건조했던 삶을 촉촉하게 적셨다. 내가 프란시스베이컨의 인체해부 추상미술을 좋아하고 마크로스코의 삼면 분할 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다 작은 딸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