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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편지 약속. 지금도 비밀 속 사랑은 계속된다

작은 딸과의 대화

by 김쫑

2007. 3. 24

발신 : 작은 딸

수신 : 아빠

제목 : 사랑하는 아빠!!


아빠! 답장을 바로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지금은 토요일 7시 16분이에요. 일찍 일어났어요 저만요.

언니랑 엄마는 자고 있어용~ 토요일에 공부하기 싫은데 엄마가 하래요. 나 미쳐!!*_*

어제는 엄마 나가시기 전까지 수학공부 했어요. 언니는 친구랑 통화하다가 간장 쏟았데요~

지금 제 주위는 깜깜해요. 그래서 컴퓨터 자판도 아예 안 보여요. 근데 잘 칠 수 있어요.

내 옆에 사탕이 있어요. 초콜릿도 있어요. 오늘 윤희 생일이라 피자헛에서 생일파티 할 거예요.

피자는 목요일에도 먹었는데 오늘도 먹네~ 목요일에는 부회장이 쐈어요~

아빠 저도 공부 열심히 할게요.

우리 개인적인 얘기는 메일로 해요. 비밀 지키고요.

아빠 그럼 안녕히 계세요~


>> 딸 둘을 두었지만 성격이나 취향, 재능이 많이 다르다. 큰딸은 이성적인 편이고 작은 딸은 감성적인 편이다. 그런데도 부모는 둘을 공부(성적)라는 하나의 목표로 키웠다. 재능을 무시했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교육이었다. 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언니에 치어 작은 딸은 공부소리만 들어도 지겨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편지글에서는 그런 내색하지 않고 잘해보겠다고 썼다. 18년이 지나 돌이켜보면 작은 딸에게 미안한 게 되게 많다. 작은 딸은 그렇게 싫어했던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으로 인해 성적은 늘 중위권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걸 학원에 보내며 위안을 삼았으니 부모 자격이 있었던 건지 원... 작은 딸은 고등학교 1학년 2학기가 돼서야 자기 길을 가기 시작했다. 미대 진학을 위한 학원 수업을 위해 학교에 방과 후 자율학습을 빼달라고 요청하러 가서 담임선생에게 사정 얘기를 했을 때 절박한 부모 맘을 남 얘기 듣듯이 한 선생의 태도에 화도 났지만 나는 작은 딸을 위해 사정을 해야 했다. 작은 딸은 정규 수업 시간에 불필요한 과목을 들으며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작은 딸은 미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작은 딸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겨줬다. 늙다리 교수들의 자기 방식 전수 태도와 캔버스에 표현할 무한한 표현의 자유, 사고의 자유를 제한하는 고정관념에 회의를 느끼고 방황했다. 어렵게 졸업까지는 했지만 작은 딸은 한국의 미술대학에서 보낸 4년을 후회했다. 개인의 creative를 중시하지 않고 교수 개인 취향에 따라가는 커리큘럼을 거부했다. 그래서 다시 공부하고 싶어 했다. 부모에게 다시 손 벌리는 게 미안해서 알바를 하며 독일 유학을 준비했다. 독일은 미디어, 설치, 회화 등 다양한 예술의 융합을 시도하며 비판적 실천과 개념미술의 중심에 서 현대 미술의 중요한 흐름을 리드하는 나라다. 입학은 어렵지만 학비가 거의 안 든다는 것도 독일을 택한 이유였다. 작은 딸은 지금 독일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며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창작의 한계를 두지 않고 맘껏 작품을 구상한다. 작가로서 평생 힘든 길을 가겠지만 끊임없이 연구하며 창작활동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 이 글을 쓰면서 작은 딸에게 실토하고 싶다. 그때는 아빠 자격이 없었다고. 자녀를 무한 신뢰하는 것이 훌륭한 교육임을 지금 뼈저리게 느낀다고.

PS : 작은 딸은 일 년에 한 번 한국에 와 기획했던 작업을 한다. 그때 나는 '어씨(보조)'로서 작은 딸의 작업에 참여한다. 설치물을 만든다던가 카메라 촬영을 돕는다던가 할 일이 무척 많다. 사람을 쓰면 다 돈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딸과 작업을 위해 먼저 작품의 컨셉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때 난해한 부분이 많아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작은 딸이 아닌 작가와 얘기할 때 나는 굉장히 조심스럽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잘 안 되는 경우도 많다. 그땐 작가니까 그렇게 하는구나 하고 그냥 받아들인다. 그만큼 작은 딸의 작업을 존중한다. 이렇게 만든 작품이 독일의 영화제에서 저명한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십여 편의 상영 작품에 선정되었을 때 밀려든 감동은 작은 딸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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