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과의 대화
2007. 3. 23
발신 : 큰딸
수신 : 아빠
제목 : 라오슬 하오!
아빠!
저 이슬이예요~
아빠가 보내주신 메일은 보내주시자마자 읽었는데,
요새 공부하느라 컴퓨터를 많이 하지 않아서~
이제야 답장을 보내네요~^^
아무래도 얼마 안 있으면 고등학교에 대해서, 진로에 대해서 확실하게 결정을 해야 하니깐...
조금 부담도 되고 걱정도 되고 그렇긴 하지만요~
아빠가 항상 걱정해 주시고 엄마도 항상 도와주시고, 학교 선생님들도 저한테 많은 도움을 주셔서 좋은 데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민사고는 못 갈지도 모르겠지만 외고는 꼭 가서 제 꿈을 더 넓게 펼칠게요!
아빠도 응원 많이 해주세요~
제 걱정은 너무 하지 마시고 아빠도 중국에서 아빠 꿈을 펼치세요~
아빠 사랑해요^-^*
아빠가 사랑하는 큰딸 이슬 올림!
>> 큰딸은 좀 과묵한 편이다. 평소 표현을 잘 안 하지만 알아서 잘해나가는 스타일이다. 큰딸이 중3이 되던 해 중국에 갔다. 아빠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걱정을 덜 끼치려는 맘이 듬뿍 담겨 있다. 사실 메일이니까 자기 생각을 자세히 표현한 것이지 얼굴을 마주 보며 얘기했다면 조금 달랐을 것이다. 늘 잘한다고 기대만 했지 큰딸도 고민이 많았을 텐데... 그 당시 내 앞길에 바빠 딸들을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내가 부끄럽다.
큰딸은 외고에 합격했고 꽤 괜찮은 대학을 졸업했다. 지금은 훌륭한 사회인으로 살고 있다. 힘든 시기를 스스로 이겨내고 사위와 함께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메일 글에 담긴 사랑과 응원, 믿음이 그런 결과의 밑거름이 된 것 같다. 큰딸은 지금도 전화나 카톡에선 덤덤하게 인사를 건네지만 편지 글에서는 한 장 넘게 사랑을 표현하곤 한다.
퇴직 후 가장 깊은 대화를 한 사람이 큰딸이다. 시니어 삶에 대해 고민할 때 큰딸은 가감없이 조언을 주었고 도움이 되는 정보도 많이 주었다. 요즘도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요할 때 큰딸을 찾곤 한다. 매서운 질책도 겸허하게 듣는다. 퇴직 후 큰딸은 나의 진정한 스승이 되었다.
PS : 라오슬 하오!(老师好!). 큰딸이 중학교 2학년 때 배웠던 중국어로 인사를 했다. 라오슬=선생님, 하오=안녕하세요. 중국어 열심히 공부하라는 격려의 제목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