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딸과의 대화
2007. 5. 5
발신 : 아빠
수신 : 작은 딸
제목 : 아빠는 예슬이를 응원해요~~
예슬이 말이 맞다. 노력한 게 중요하지. 그래도 이번 시험 많이 잘한 거야. 그 정도면 나중을 기약할 만 해. 훌륭해 우리 예슬이. 아마도 지금의 그런 마음 가짐이 기말고사 그리고 2학년에도 너를 좋은 성적으로 만들 거야. 지금처럼 조금씩 실력을 쌓아가 봐, 알겠지? 50등의 숫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아마도 이번 시험이 거기에 근접했을 수도 있어. 조금만 더 해보자 홧팅!!!
엄마랑 언니가 너한테 스트레스 주는 건 아니야. 네가 잘하길 바라서 하는 말이지. 엄마가 너 몰래 너 칭찬 엄청했어 아빠한테. 중학생 되더니 열심히 공부한다구.
시험 끝났으니 좀 쉬어. 외우는 거 많이 틀려서 성적 안 나오는 건 괜찮아. 그런 건 다음에 맘만 먹으면 잘할 수 있거든. 하지만 이해해야 하는 거 잘 모르면 갈수록 힘들 수 있어. 수학 영어 같은 거. 과학은 글쎄???? 그런 건 그래도 덜 중요한 과목 아닌가??? 예슬이가 잘 생각해서 차근차근 공부해 봐.
그리고 동대문 잘 갔다 오고 가서 사고 싶은 거 사. 우리 예슬이 이번 시험 아주 잘했어.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어린이는 지났지만 그래도 어린이날 축하하구... 안녕~~~
>> 작은 딸과는 공부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작은 딸은 중국에 있는 아빠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 아빠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자기만의 등수도 정한 거 같고. 하지만 나는 편지에서 은근히 기대를 표현했고 공부하는 방법까지 썼다. 작은 딸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자세히 보니 지적질이다. 웃음이 난다. 이 과목은 이렇게 공부하고 이 과목은 이래서 중요하고... 다시 읽으니 진정성 있는 조언이 아닌 꼰대의 글이다.
작은 딸의 글에서는 집안의 분위기를 낱낱이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작은 딸의 글을 보면 기쁘기도 하면서 앞선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엄마와 언니와의 관계에서 아빠가 어떤 말을 해야 화목하고 공부 지향적인 집 분위기가 될지 고민하며 글을 쓰다 보니 속에 없는 말도 잘도 쓰고 했네, 하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읽으며 18년 전 생각에 혼자 헛웃음이 나온다.
PS : 귀 뚫는다는 글을 보고도 답장에 그와 관한 아무 글도 없는 걸 보고 순간 놀랐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당시 작은 딸 귀 뚫는 것에 대해 속으로 반대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정도로 나는 아빠 꼰대였던 건 아니었는지...걱정을 가장한 과도한 관심, 결과를 의심하여 미리 지적하는 과도한 자식 사랑 뭐 그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