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과의 대화
2007. 5. 8
발신 : 큰딸
수신 : 아빠
제목 : 아빠 힘내세요
아빠~~ 잘 지내시죠? 저 예슬이에요~ㅎㅎ
오랜만에 아빠께 메일을 보내네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죠? ㅎㅎ
오늘이 바로바로... 어버이날이에요! 이렇게 뜻깊은 날에 아빠와 함께 할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ㅠㅠ
제 맘 아시죠?
오늘 엄마께 그라탕(리조또) 만들어 드렸어요. 아빠도 같이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아빠 나 6학년 때 친구들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감자 고로케 만들어 줬던 거 기억나요? 그때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했어요.
아빠가 돌아오시면 제가 꼭꼭 맨날 맛있는 음식 만들어 드릴게요. 아빠도 힘내세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ㅎㅎ.
아빠 사랑하구요 항상 건강하세요. 항상 아빠한테 고마워요.
멋지고 착하고 이쁘고 공부 잘하는 첫째 딸 예슬 올림.
>> 큰딸이 평소 표현을 잘 안 하지만 짧은 글에서 큰딸의 사랑을 읽기는 어렵지 않다. 어버이날 아빠와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의 글이지만 아빠에게 용기를 주는 글이기도 하다. 나는 큰딸 덕분에 지금 나이에도 늘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쓴 글이나 어떤 문학 토론을 할 때는 큰딸이 마치 나의 스승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큰딸을 가족관계가 아닌 서로 다른 객체로 존중하고 싶은 게 솔직한 나의 맘이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배움의 폭이 좁아지는 나이가 되면서 지금의 큰딸은 나에게 멘토나 다름없다. 기댈 곳이 있다는 거, 기댈 수 있는 곳이 큰딸이란 건 법적 노인이 된 지금 나이에 나에게 너무 감사한 일이다.
PS : 큰딸이 어버이날에 엄마를 위해 그라탕을 만들었나 보다. 중국에서 돌아오면 맛있는 음식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큰딸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스타일이지 음식을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다. 나는 딸들 어린 시절 이런저런 요리를 해서 함께 먹었던 기억이 많다. 덕분에 지금도 부엌칼 쥐는 게 낯설지 않다.
가까이 사는 큰 딸네는 직장 일로 바빠 주중에 집에서 저녁을 거의 먹지 않는 거 같다. 주말에 둘만의 시간에는 대부분의 요리를 사위가 하고 딸은 그걸 자랑삼아 보내곤 한다. 사위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요리 솜씨가 제법이라 사진을 보면 내 입에서 군침이 돌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큰딸이 만든 요리를 내가 얻어먹는 건 쉽지 않은 현실이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