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대화
2007. 5. 31
발신 : 김쫑
수신 : 미미
제목 : 어느덧 5월도 가고...
벌써 5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내가 떠나온 지도 3달이 돼 가는군요. 참 세월 빨라요, 그치? 나 없는 동안 집안의 변화는 이제 점점 자리를 잡아 안정되었으리라 봐요. 나 없으니깐 불편한 게 많지요? 그래도 이렇게 자주 연락하니 당신이 꼭 곁에 있는 거 같아 좋아요. 애들도 공부 잘하고 어른스러워지는 거 같구. 예슬이 이슬이 메일을 보면 글이 어른스러워. 특히 예슬이. 이슬이도 아빠 생각하는 맘이 아주 깊어.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몇 번을 다짐하곤 했어요. 다 당신 덕이예요.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여기는 여름 방학이고 우리 애들과 만날 테니 그 시간이 기다려지네요. 만나면 훌쩍 커버린 예슬이 이슬이 보고 놀랄 거 같아. 잘 커준 애들이 대견스러울 테고. 당신이 있어 난 여기서 그나마 편히 잘 지내는 거 같아요. 시간은 금방 가요. 조금만 당신이 애써줘요 지금처럼만.
5월이 다 가니 나도 좀 맘이 그런데... 여기서 더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 돌아가서 좋은 결과 있을 거요. 떨어져 있지만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하루하루를 살려고 해요. 게으르지 않고 나 자신을 철저히 통제하면서요. 당신도 늘 행복한 생각으로 잘 지내요. 점점 더워질 텐데 더위에 건강 유의하고.
그래 또 다음에 얘기합시다. 5월 마지막도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싶네요. 안녕~~
>> 가족과 떨어져 중국에서 생활하는 일상에서 한 달을 마무리하면서는 가족 생각이 더났다. 가장의 책임을 방기하고 혼자 편하려고 온 건 아닌지, 1년 뒤 귀국 후가 보장되지 않은 불안감 등 복잡한 심경이 밀려오곤 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보내는 글은 미안함과 함께 걱정을 덜어주려는 내용으로 조금 길다. 어투 또한 지금 읽어보니 미안함이 커서 그런지 너무나 정중한 표현의 종결어미로 조금 쑥스럽기까지 하다. 오래전 글이지만 미안하고 감사함이 느껴지는데 지금은 그런 맘이 많이 희석된 건 아닌지... 오래된 메일을 읽으며 메마른 감정을 다시 푸근하게 만드는 노력을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PS : 해외에서 혼자 나가 생활하다 보면 자유로운 환경에 도취되어 무절제한 생활로 망가지는 사람을 더러 보게 된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매일 도서관으로 향했고 귀국 후 가장으로 복귀하여 책임질 가정을 생각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했다. 혼자 견뎌내는 삶은 철저한 자기 통제가 필요하다. 1년의 공부기간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4년이 지난 뒤에는 중국법인의 법인장으로 근무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자녀들의 대학교 입학과 맞물려 있어 혼자 상하이에서 근무하며 법인장으로서 부족함 없는 생활이었지만 절제된 일상생활을 하며 회사업무에 전념했다. 그 결과 5년을 중국법인의 대표로 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