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차 청도-삼랑진] 새마을,새마음 정신으로(1)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12장 새마을,새마음 정신으로(1)


12일 차 2017. 6. 15. 경북 청도읍–밀양시-경남 삼랑진읍 생태문화공원 (44.2km)


오늘은 국토종단 12일차, 청도군은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다. 새마을 정신, 새마음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해도 나쁘진 않으리라. 오늘 걸으면 국토종단은 이틀밖에 안 남는다. 나의 마음은 이미 종착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은 시골 동네마다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졌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 가사를 내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얼마나 오랜 동안 세뇌되었다는 말인지..

새마을 운동은 1970년에 박정희 정권이 농어촌 환경개선사업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정권의 수단으로써 활용한 측면도 있었다. 그 당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내용이 많이 있었고 이는 당시 정권의 치적을 부각하는 수단으로써 학생들을 세뇌시킨 면도 있었다. 하지만 새마을 운동은 긍정적인 면도 많아 특히 농어촌의 주거환경이나 소득증대, 농어촌 사람들의 폐쇄적 봉건적 사고를 깨치는데 일조를 한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어제 걸어왔던 25번 국도를 타고 밀양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도로는 도로명부터 새마을로라고 쓰여 있었다. 조금 더 걸으니 초록색 새마을운동 깃발이 촘촘히 이어져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아직도 이곳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인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온통 초록빛 새마을 깃발이었다. 이곳은 청도군 청도읍 신도1리,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였다. 사위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옛날 변변한 길도 하나 없었을 테니 그만큼 외지고 못살아서 이 마을부터 새마을 운동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청도읍 새마을로 새마을 깃발


신도1리는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을 업고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신거역 광장 앞에는 조그만 전시관과 함께 맞은편에는 시골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커피숍까지 있었다. 새마을운동이 오랜 시간을 거치며 낳은 이질적 마을풍경처럼 보였다. 이 마을은 집들도 잘 정돈되어 있고 시골 치고는 꽤 여유 있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새마을 운동을 말하자면 내 어린 시절 힘들게 살았던 기억이 더 많다.

새마을 운동 발상지 신도1리 카페


새벽부터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새마을운동 노랫소리는 온 마을을 깨웠고 노랫소리는 아침부터 마을 사람들을 다그쳐 마을 한가운데로 모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이면 이장쯤 되는 사람이 오늘 할 일을 얘기해 줬다. 그럼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은 후 삽이나 괭이를 들고 이장이 얘기했던 각자의 장소로 흩어져 나갔다. 새마을운동 후 내가 살던 시골의 가장 큰 공사는 도로포장 공사였다. 마을 사람들은 도로포장 공사장에 품삯 일꾼으로 나가 파헤쳐진 도로에서 돌을 골라 삼태기에 담아 길옆으로 쏟아버렸고, 움푹 파인 도로는 흙을 날라 메꾸는 작업을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들일이나 고기잡이배 청소나 그물 정리의 품삯일이 없을 땐 도로포장 공사장에 나가 품삯을 벌었다. 영수 어머니도 그랬다. 내 어린 시절 새마을운동은 새 마을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는 기억보다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막노동했던 기억이 더 많다. 나는 어린 시절의 힘들었던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아 서둘러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25번 국도로 걷기 시작했다. 출발지인 청도읍에서 밀양시까지는 22km. 오늘 목적지인 밀양시 삼랑진읍 낙동강변에 있는 생태문화공원까지는 44.2km다.

새마을운동 발상지인 이곳까지 겨우 6km 걸었으니 이제 시작이었다. 지금 걷는 이 길에서 밀양시까지는 시골길 걷듯이 마냥 걸으면 된다. 걸으며 특별히 가보고 기록할 곳은 없는 듯 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보면 된다. 어제 청도읍에 일찍 도착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이제 국토종단도 거의 다 왔다고 생각되니 맘이 한결 가벼웠다. 나는 배낭의 무게도 잊은 채 걸었다. 점심은 가다가 길가 맛있는 식당을 찾아보자는 여유까지 생겼다.

6월 중순인 요즘 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며 34도를 넘나들기에 한낮 더위라면 지열까지 감안하면 상당히 더운 날씨였다. 그래서 지금 뛸 듯이 몸이 가볍다 하더라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이럴수록 12시부터 오후 3,4시까지 한낮 더위에는 무리하지 않고 자기의 신체리듬을 잘 읽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오전인데도 서서히 더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점심때는 꽤나 더울 테니 시원한 콩국수로 결정했다. 지금은 몇 시간 뒤에 먹을 시원한 콩국수가 나를 걷게 만드는 동기인 셈이었다. 나는 10여 km를 쉬지 않고 걸었다. 정오가 다가오니 하늘 꼭대기에서 내리쪼이는 태양이 모자를 뚫을 기세다. 모자를 쓴 이마에서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길가 나무 밑에 앉아 얼굴과 목덜미에 선크림을 덧바르며 잠시 더위를 식혔다. 한낮의 자외선은 특히 피부에 조심해야 했다. 그을린 피부지만 더 이상 손상이 가지 않게 적당히 선크림을 발라줘야 했고 특히 피부가 약한 얼굴이나 목덜미나 뒷목, 손등 등에는 더 많은 주의를 필요로 했다. 아내는 나의 피부 손상도 끔찍이 걱정했다. 선크림의 향기에 아내의 향기가 뭍어 나왔다.

가끔씩 오가는 읍내 버스기사가 앉아 쉬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고. 대개 이런 시골에서는 읍내 버스가 짧은 거리를 한 시간에 한두 번 왔다 갔다 할 테니 기사들이 걸어가는 나를 틀림없이 봤을 것이다. 그래서 우린 이미 구면인 셈이었다.

걸을 땐 모르지만 쉬다 보면 잡생각에 입도 궁금해진다. 배고픔이 느껴졌다. 콩국수로 점심을 정했으니 콩국수 간판만 찾게 된다. 그런데 한적한 도로라 그런지 식당도 드물고 콩국수집은 더 더욱이 없었다. 나는 기다린다는 심정으로 계속 걸으며 찾기로 했다.

한낮 더위가 너무 심하니 주변 경관이 눈에 안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은 어지러울 정도로 높고 청명했다. 실내에서 창밖을 통해 봤다면 황홀한 하늘풍경이겠지만 도로위에서 보는 지금의 하늘은 순간 나의 머리를 핑 돌게 만들었다. 그만큼 한낮에 걷고 있는 나는 지금의 청명한 하늘과는 이질적 조화였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걷기에 부적절한 매우 더운 날씨라는 얘기였다. 쉬고 싶어도 나무그늘 길바닥 외에는 쉴만한 곳이 없었다. 조금 더 걸으니 커다란 초등학교가 보였다. 폐교였다. 좀 쉬고 갈 겸 호기심도 생겨 운동장을 가로질러 폐교 안으로 들어갔다. 폐교는 지역 영농조합이 임차하여 음식문화예술촌으로 바꾸는 중이었다. 학교운동장 모퉁이에 있는 폐교 표지석을 보니 1929년에 설립되었다가 작년에 폐교되었다는데 역사나 규모로 봐서 한창 때는 학생 수가 꽤 많았을 거 같았다. 폐교를 활용한 다양한 변화는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 너 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운영자의 마인드, 콘텐츠의 부족, 위치적 한계 등으로 실패의 경우가 더 많다. 비즈니스와 지역 문화를 연결시키는 게 그만큼 쉽지 않다는 얘길 게다. 어제 청도 소싸움경기장은 그나마 많이 알려졌다고 하는데도 적자에 문을 닫을까 말까 고민한다는데 이곳 폐교를 이용하여 지역특색을 살린 비즈니스로 성공시킬지 의문이 들었다. 음식문화예술촌이라니 먹을 게 있나 봤더니 교실 한쪽을 시식장소로 해서 떡을 팔고 있었다. 먹거리는 떡 종류 몇 개와 지역 특산물 정도였다. 배가 고팠던 나는 급한 대로 인절미로 배를 채웠다. 밥이나 빵, 떡은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으로 비만의 주원인이지만 걷거나 뛸 때는 절대로 필요한 영양소다. 이때의 탄수화물은 에너지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영양소도 상황에 따라 달리 작용하니 무턱대고 좋다 나쁘다 할 건 아니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인절미 간식


인절미 몇 개를 먹었더니 콩국수 생각은 잠시 사라졌다. 이곳은 밀양시내로부터 5km 정도밖에 안 떨어진 곳이었다. 시내와 이렇게 가까운 곳의 초등학교도 없어지니 요즘 시골, 농촌의 인구 감소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꽤나 걸은 거 같은데 밀양 시내가 시야에 나타나질 않으니 내가 제대로 가는가 싶어 길가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물어보니 계속 가다가 삼거리에서 산을 끼고 우측으로 돌면 밀양시청 가는 길이라고 가르쳐주었다.

내가 농부에게 물으며 서있는 길 한쪽에 무슨 표지석이 보였다. 통합기준점. ‘이곳 통합기준점은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리좌표며 이곳은 위도 35도 31분 33.15초 경도 128도 46분 01.97초 표고 23.1m’라고 쓰여 있었다.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내가 디디고 있는 땅의 높이가 23.1m인 거는 알 거 같았다. 이 길은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평평한 길이었다.

밀양시 통합기준점


걸으며 검색해 보니 통합기준점이란 게 전 국토의 2~3km마다 있다는데 나는 오늘 처음 봐서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곳 통합기준점 안내판에는 근처에 콩국수 식당이 어디 있고, 밀양 시내까지는 몇 km 남았는지 그런 내용이 없어 아쉬웠다. 나는 농부가 가리켜준 대로 쭉 앞으로 걸어갔다. 통합기준점만큼 정확하진 않지만 나의 추측거리기준점으로는 여기는 출발지 청도읍으로부터 19km 지점인 듯했다. 지금 시간이 오후 한 시를 넘기고 있으므로 중간에 한 시간 정도 쉬며 걸었다 치더라도 시간당 4km도 안되게 걸어온 것이었다. 빨리 걷겠다고 걷긴 했는데 맘만 그렇지 발걸음은 그렇지 않았던 거였다. 걷다 보면 이런 경우가 있다. 꽤나 많이 걸어온 거 같은데 알고 보면 얼마 못 왔고. 이런 경우는 대개가 여유를 부려서 그렇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야영이 예정되어 있기에 나는 너무 늦게 도착해선 안 된다. 한낮의 더위가 나의 걸음걸이를 지루하게 만들었지만 서둘러 걸어야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1일차 대구-청도] 청도로 가는 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