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12일 차 2017. 6. 15. 경북 청도읍–밀양시-경남 삼랑진읍 생태문화공원 (44.2km)
밀양 시내에 접어드니 아파트와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당연히 인절미 몇 개로는 오후를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점심을 먹어야 했다. 길가 중국집의 콩국수 그림이 한눈에 들어왔다. 찌는 듯한 더위에 배낭을 짊어진 등판에선 땀이 줄줄 흐르고, 나는 들어가자마자 콩국수 곱빼기요 외치고 배낭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며 땀을 닦았다. 늘 하듯이 핸드폰과 보조배터리도 충전했다. 어제 청도읍 야영으로 보조배터리가 반만 남은 상태였다. 밀양시에서 만난 중국집 주인은 친절했다. 이 더위에 20여 km를 걸은 후 먹는 얼음 콩국수가 어찌 맛이 없겠는가! 하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닐 것이다. 이곳 중국집의 콩국수 면발은 소면과는 다른 짜장면 면발을 사용하여 굵기가 굵고 먹는 느낌이 찰져서 입안이 풍성했다. 주인의 호의로 더 쉴 수도 있었지만 지금 시간으로 보면 나는 빨라야 저녁 7시에나 삼랑진읍에 도착할 수 있을 거 같기에 배터리 충전을 중도에 그만두고 식당을 나왔다. 23km 남았는데 시간은 오후 2시 15분, 여유부리지 말고 꾸준히 걸어야 하는 거리다.
밀양은 영남루다. 밀양강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영남루는 영남제일루라는 현판 글씨대로 영남 제일이라는 데 손색이 없었다. 영남루는 밀양강을 굽어보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내가 밀양 시내를 어떻게 지나 삼랑진읍으로 갈건 가를 손으로 집어 알 수 있을 정도로 영남루에서는 밀양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익공식(翼工式)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조선시대 밀양도호부의 객사 부속 건물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건물이었다. 나는 영남루 경치에 취해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운동화도 벗고 배낭도 풀고 영남루 누각에 기대어 누웠다. 영남루가 세워져 있는 곳은 절벽은 아니지만 몇 발짝만 나가면 절벽이었다. 문득 이걸 이렇게 지탱하고 있는 게 뭔가 싶어 영남루 밑으로 내려가 보았다. 가로 세로 5줄씩 납작한 주춧돌에 큼지막한 나무기둥이 영남루를 받치고 있는데 내 눈에 비친 25개의 주춧돌과 나무기둥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 멘 25명의 힘센 장사의 모습처럼 보였다. 나는 그 나무기둥의 의연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영남루만 보고 갈 수는 없었다. 영남루와 이어진 산을 올라가면 밀양읍성이 있는데 이곳은 영남루보다 더 높은 곳이기에 밀양강과 밀양시는 물론 저 멀리 낙동강 지류까지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국토종단 4일 차 곤지암에서 광혜원 가는 일정에서 죽산의 죽주산성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을 밀양읍성 길을 오르며 위안으로 삼았다.
밀양은 사명대사가 태어난 곳이라는 것도 영남루 뒤편에 있는 사명대사 동상을 보고 알게 되었다. 여러모로 밀양은 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강과 읍성, 느림과 여유. 하루 묵으며 이곳에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걸어야 했다. 나는 밀양시내, 밀양역을 지나 삼랑진 방향으로 걸었다.
삼랑진으로 걸어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낙동강변을 따라 걷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를 지나 미전고개를 넘는 길이다. 물론 낙동강 길을 따라 걷는 게 낭만도 있어 좋겠지만 많이 돌아가기에 나는 빠른 길처럼 보이는 미전 고개를 택했다. 그런데 이건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삼랑진 음달산 미전고개 정상이 187m밖에 안되지만 지루하게 구불구불 이어지는 8km의 길이었고, 내가 고갯길을 걷기 시작할 즈음은 시간은 이미 오후 4시 반을 넘기고 있어서 내 신체는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상태였다.
영남루와 밀양읍성을 돌고 내려온 시간이 오후 3시 15분. 나는 밀양시내에서부터 미전고개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삼랑진읍 청학리 청용마을까지 7km를 급한 마음에 정신없이 걸어왔다. 오늘은 여러모로 신체밸런스 유지에 실패한 날이었다. 오전엔 너무 여유롭게 걸었고, 영남루에선 너무 쉬었고, 거길 내려와서는 뛰다시피 걸었고.
미전고개의 오르막은 4km 정도 계속되었다. 두 다리가 무거웠다. 얼굴을 찌푸리며 한참을 낑낑대며 걸어올라 가는데 저 위에서 근처 사찰의 스님 한분이 내려오고 있었다. 정상이 멀었냐니깐 아직 좀 더 가야 한다며 스님이 나보고 “왜 그렇게 걷냐”고 물었다. 아마도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힘들게 걷는 게 안쓰러웠나 보다. 내 얼굴은 스님의 평온한 얼굴과는 너무나 대조되었다. “스님은 왜 사세요?” 내가 되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도 지금 수행 중이라 잘 모르겠다며 그저 웃었다.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내가 왜 걷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의 고개는 정상적인 컨디션이라면 쉽게 넘는 고개였다. 하지만 오늘은 오후 들어 왠지 모르게 지쳐갔고 마치 마라톤 마지막 구간을 지나는 느낌이다. 배낭이 두 배로 무겁게 느껴졌다. 6월이라고 한낮의 더위를 너무 가볍게 본 건 아닌지.. 게다가 길고 지루하게 늘어진 고개가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미전고개를 그렇게 걸어 올랐다. 그렇게 힘들게 걸어 올라온 고개는 정상이랄 것도 없이 슬그머니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그만큼 완만하고 지루한 길이었다. 미전고개 정상을 지나 내려가다 보니 보도연맹학살사건 표지가 보였다. 그냥 지나치면 모를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지금은 다른 데로 도로가 나서 차량도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이 고갯길도로 미전고갯길, 오죽했으면 6.25 때 밀양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알려진 학살사건이 고갯길 정상 후미진 이곳에서 일어났겠나 알거 같았다. 이곳의 상처는 이념이라는 괴물이 만든 동족간의 살육이었다. 같은 혈육의 이웃들이 이념의 괴물에 홀려 서로를 죽였으니 시대를 잘못 타고 난 혼령들이 불쌍할 따름이었다.
미전고개 내리막길이 계속되었지만 빠르게 걷기가 겁났다. 많이 피로한 상태에서 욕심을 부리다가는 다 나은 왼쪽 발목이 또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럽게 걷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저녁 7시. 내리막이 끝나가는 지점의 미전삼거리에 도착했다. 직진하여 삼랑진 읍내로 진입하여 낙동강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오늘의 목적지가 나온다. 여기서 목적지 삼랑진 낙동강변 생태문화공원까지는 약 3km. 근데 많이 지쳐 있던 나는 빨리 가서 쉬고 싶은 맘에 스스로 방향을 판단하여 앞으로 걷지 않고 미전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걸었다. 아뿔싸! 그 길은 삼랑진에서 밀양으로 다시 나가는 또 다른 도로 삼상로였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 깨달았을 땐 이미 2km 더 걸어 들어온 뒤였다. 몸이 지치고 피곤할 때 길을 잘못 들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잘못 걸어온 길만큼 되돌아 나가야 하니 그걸 깨닫는 순간은 몇 배 손해 본 느낌이 든다. 이럴 땐 오히려 나를 달래는 게 좋다. 긍정의 힘. 2km 걸었으니 망정이지 더 걸었다면 어쨌을까. 나는 스스로 위안하며 잘못 걸었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밤 8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나는 오늘 44.2km를 3.8/1h(식사, 쉬는 시간 제외)로 걸어 여기에 왔다. 날이 이미 어두워져서 그런지 낙동강 공원에는 산보하는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조그만 손전등에 의존해서 간신히 텐트를 쳤다. 강변 둑을 올라와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갔다. 사정 얘기를 하고 식당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간단히 씻고 이곳의 명물이라는 민물수제비매운탕으로 저녁을 했다.
오늘은 예상치 못한 몹시 힘든 하루였다. 하지만 나는 이번 국토종단에서 그렇게 걷기를 바랐던 낙동강 유람의 그 시작점에 와있다. 부산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내가 오늘 묵을 이 드넓은 낙동강변이 모두 내 집처럼 느껴졌다. 어둠속 낙동강은 나를 덮을 이부자리처럼 포근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별들을 보며 깊은 감상에 빠졌다. 방금 전까지 느꼈던 극심한 피로는 서서히 나를 떠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신체는 다시 서서히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내일 또 걸을 수 있다.
드넓은 삼랑진읍 낙동강변 생태문화공원에 텐트 하나, 그 속에 한 사람. 가끔 무슨 야생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외로움뿐만 아니라 무서움도 극복해야 했다. 나는 낙동강의 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