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13일 차 2017. 6. 16. 경남 삼랑진읍 생태문화공원–부산 금정산–부산 동래 (45.7km)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는 고작 9km. 오늘 45.7km를 걸어야 하고 부산 금정산 고개 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모르고 나는 정자에서 계속 쉬었다. 그래서 결국 오늘 나는 오전엔 천당을, 저녁엔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
사실 낙동강을 그냥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낙동강 황산언은 양산시 물금읍 가기 전에 있었다. 황산언 넓은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사람들이 살아왔고 물을 이용하면서 농경생활도 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걷는 이 길은 아마도 수 천 년 전에 그 누군가도 걸었을 것이다. 가야진사에서 황산언을 지나 물금읍 방향으로 걷는데 자전거 한대가 내 곁에 섰다. 자전거로 국토종단중인 할아버지였다. 임진각에서부터 진짜 걸어오는 거냐고 물었다. 힘내라고 양갱을 하나 주는데 나는 줄게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를 무척 따진다. 하지만 가식의 꺼풀을 벗으면 나이는 무의미 해진다. 이번에 걸으며 만난 라이더 할아버지들은 기꺼이 나를 친구로 맞아 주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로 나의 뜻을 전하고 다시 낙동강 길을 걸었다. 자전거 할아버지는 뒤에서 걷는 나를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항상 맘을 기쁘게 한다. 나는 이번 1,000km 국토종횡단 도보여행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대부분 맘이 따뜻하고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특별나게 뭐 적을 게 없었다. 미사여구가 더 가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저 맘속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하는 게 최고의 글이기도 했다.
양산시 물금읍을 지나니 부산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낙동대교가 보였다. 저길 넘으면 부산이다. 나는 빨리 부산 땅을 밟고 싶은 맘에 서둘러 걸었다. 서둘러야 했던 것은 낙동강 길을 너무나 천천히 걸은 탓도 있었다. 낙동대교까지는 출발지 삼랑진에서부터 23km 지점. 앞으로 남은 거리는 22.7km. 근데 지금 시간이 오후 3시. 어찌 됐던 아침 7시 반에 출발하여 오후 3시인데 이제 반 걸었으니 정말 너무나도 한가로운 낙동강 유람 길이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더 여유부리다가는 오밤중에 목적지인 부산 동래온천에 도착하게 생겼다. 부산시 북구 화명대교에 왔다. 부산 지리를 모르니 동래 가는 길을 다시 한 번 물어봐야했다. 산보하던 중년의 아저씨가 나의 행색을 보고 알아봤는지 걸어간다면 금정산을 넘는 게 제일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나는 애초 계획대로 금정산을 넘는 수밖에 없었다. 걸어서는 더 빠르게 가는 길은 없었다. 금정산을 넘으려면 화명대교에서 빠져나가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안 듣고 나는 혹시 만덕터널 쪽의 다른 길이 있나 해서 직진하는 바람에 다시 화명대교까지 돌아와야 했기에 4km는 족히 더 걸을 꼴이 되었다. 다시 물어 금정산 고갯길로 들어가는 초입에 접어들었는데 시간은 이미 저녁 6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삼랑진읍 낙동강 경치에 빠져 평소보다 한 시간 늦은 7시 반에 출발하기도 했거니와, 낙동강 길을 유람한다고 걷다 쉬다 했고, 양산시 가야진사에서는 정자에서 낮잠까지 즐겼으니 여유를 부려도 너무나 여유를 부렸다.
그래서 결국은 36.5km 금정산 입구 지점까지를 아침 7시 반에 출발하여 저녁 6시 반이나 돼서야 도착한 것이었다. 사위는 어둑어둑해지는데 아직도 11.2km가 남았다. 그것도 평지가 아닌 금정산 고개를 넘어야 했다. 금정산 고갯길 초입에서 내가 걸어서 간다니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는데 그 이유를 고갯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나는 금방 알게 되었다. 나는 금정산을 걸어 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금정산은 해발 801m의 높은 산이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고갯길의 정상도 해발 400m가 넘었다. 추풍령 고개로 미리 겁먹었던 그 높이가 221m였는데 금정산은 고개 정상이 추풍령이나 어제 걸었던 미전고개와는 차원이 다른 고갯길이었다. 게다가 사위는 이미 어두워져서 갓길도 없는 고갯길은 걷기에도 위험했다. 길고 지루한 오르막은 그 길이만도 5km가 족히 되는 거 같았다. 요즘 이 고개를 걸어서 넘을 부산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덕터널이 개통하기 전에는 이 산길도로를 통해야만 동래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거의 두 시간을 걸어 정상에 다다르니 금정산성 먹거리촌이라는 성문모양을 한 큰 간판이 보였다. 평일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았고 불이 꺼져 있었다. 식당가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고 싶지도 않았다. 빨리 하산하고 싶은 맘뿐이었다.
이미 시간은 밤 8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내려가는 길은 꾸불꾸불 어디가 어딘지 알 수도 없었고 갓길도 없어 가끔씩 오가는 차들에게 주의하느라 발걸음도 빨리하기 어려웠다. 계속해서 내려가는데 가끔씩 오가는 차량 불빛이 이곳이 내려가는 길임을 확인해 주었다. 나는 그냥 도로 바닥만 보고 내리막 길을 내려왔다. 얼마를 걸었을까. 정신없이 걸어 내려오니 숲 사이로 아파트 단지 불빛이 보였다. 반가운 불빛이었다.
시간이 너무 늦었기에 나는 어디 묵을 곳을 찾는 게 급했다. 부산 동래의 기억은 희미했다. 그곳의 여관이나 장은 온천물이 나온다는 기억만이 있다. 지금 나는 온천물이 나오던 안 나오던 상관이 없다. 그저 빨리 씻고 눕고 싶은 맘뿐이었다. 온천장역 방향을 물어 조금 더 걸으니 온천 모양의 네온사인이 보이는 여관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관이 맘에 들고는 둘째고 제일 먼저 보이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녹초가 된 나는 배낭을 벗어던지고 침대에 벌렁 누워 버렸다. 시간은 밤 10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지옥을 빠져 나온 것이었다.
아침 7시 반에 삼랑진읍을 출발한 나는 밤 10시 반이 넘어 목적지 부산 동래에 도착했다. 오늘 나는 45.7km를 3.7km/1h(식사와 쉬는 시간 제외)로 걸었다. 자만과 방심이 나에게 큰 교훈을 준 하루였다.
꿈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들이 있다. 자만심과 만용도 경계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오늘 나는 고생을 자처했다. 출발 시간을 한 시간 늦춘 것에서부터 낙동강에 푹 빠져 어정어정 걸은 거, 가여진사에서 한 시간 넘게 잔 거, 금정산 고갯길을 우습게 본 것 등. 늦은 오후부터 밤 시간 무거운 두 다리를 질질 끌며 걸었던 대여섯 시간은 이번 국토종단에서 내가 만난 마지막 시련이었다. 나는 부산역을 하루 앞두고 혹독한 시험을 치렀다. 시간에 쫓기어 저녁도 먹지 못한 게 이제야 생각났다. 하지만 배고픈 것도 잊었다. 나는 여관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하마터면 나는 욕조에서 그대로 잠이 들 뻔했다. 눈꺼풀이 무거워 욕조에서도 자꾸만 잠이 들었다. 뭐 먹고 싶지도 않지만 허기를 채우러 나가기도 귀찮았다. 배낭을 뒤적이니 초코바 한 개가 남아있었다. 초코바 하나 먹고 나는 바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피곤하니 뭔지도 모를 무수히 많은 꿈들이 들었다 나왔다 했다. 나는 ‘끝났다 끝났어’ 하며 마구 잠꼬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