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14일 차 2017. 6. 17 부산 동래–남포동-부산역 (15.5km)
국토종단 마지막 날의 아침은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출발 준비로 하루를 시작했다. 다만 13일 전 임진각을 출발하면서는 까마득했던 560km가 이제 15km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지난 13일간 두 발로 밟았던 순간순간의 점들은 이어져 선이 되었다. 점에서 선으로.
잠깐 잔 거 같은데 아침이었다. 깊은 잠이었다. 고행의 대가는 늘 달콤한 잠자리로 보상받는다. 국토종단 부산에서의 하루 밤은 잠깐 잔 듯한 기억으로 순식간에 끝났다.
늦게까지 자고 싶었지만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마지막 날의 아침을 조금이라도 빨리 맞고 싶어서일 게지. 마지막이라는 것이 모든 피로를 잊게 했다. 몸도 마음도 하늘을 날 듯했다. 기분이 좋다고 배속까지 채워지는 건 아니었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니 허기진 배가 먹을 걸 계속 요구하고 있었다. 오늘 나는 오후 1시 즈음 부산역에 도착해서 국토종단을 마무리 할 계획이다.
아침 7시. 이른 시간은 아니지만 토요일이라 그런지 부산의 도심 속은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거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식당들도 거의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최종 목적지인 부산역 방향으로 걸으며 마지막 날의 걷기를 시작했다. 지금 나는 어제의 아침과 그 모습 그대로다. 마지막이라는 거 외에 변한 건 없었다. 배가 고파 편의점이라도 들어갈까 하는데 교대역이 보이는 전철역 근처에 샌드위치 파는 아줌마가 보였다. 우선 급한 대로 샌드위치와 우유로 허한 속을 달랬다. 이것도 먹은 거라고 빈속의 속 쓰림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여기서부터 부산역까지는 10km, 12시 안에는 도착하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부산역을 그냥 지나쳐 먼저 남포동으로 갔다가 부산역으로 다시 돌아올 계획이다. 부산역을 지나 되돌아오면 왕복 4km를 더 걷는 것인데 부산하면 그래도 영도다리, 남포동이니까. 나는 그곳에서 부산의 향취를 느끼고 부산역으로 다시 돌아와 마지막 한 점을 찍을 생각이다.
오전 9시가 지나면서 길가의 가게들도 하나둘 문을 열고 차량도 점점 늘어나며 도심 속 부산의 아침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행상을 하는 할머니들도 좌판을 깔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로 대충 때운 내 뱃속은 금방 허기를 느꼈는지 다른 뭔가를 또 요구했다. 부산을 잘 모르는 나는 막연히 자갈치 시장에서 6.25을 떠 올리곤 했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라고 6.25때 먹거리를 상상하는지 내가 봐도 가당치도 않다. 한참을 걸으니 부산진시장이 나왔다.
부산진이라는 말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부산진성에서 유래되었고 부산진시장도 1913년 형성되었다니 역사가 꽤 깊은 시장이다. 역사가 있으니 다양한 먹거리도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쭉 늘어선 노점식 식당들이 보였다. 어제저녁도 굶고 아침도 샌드위치였으니 배가 꽤나 고팠다. 맨밥보다는 국물 있는 게 좋을 듯 한데 쭉 늘어선 노점식 식당들은 칼국수 김밥 떡볶이가 주 메뉴였다. 시장의 역사에 비해 메뉴는 다른 시장과 별반 차이 없어 보였다. 나는 국물 있는 칼국수로 정하고 한 곳으로 들어갔다. 3,000원. 맛이 독특했다. 비릿한 듯 고소하고. 그 담백함이 겉치레가 없는 맛이었다. 칼국수면 다 같은 칼국수인지 알았더니 다름이 느껴졌다. 밥은 공짜였다. 칼국수 한 그릇으로 부산의 맛과 인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3천원의 호사였다. 밥 두 공기를 말아먹으니 스르르 눈이 감기며 졸음이 쏟아졌다.
부산진시장을 나온 나는 부산 시내를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걸어 부산항 방향으로 향했다. 부산항은 바다는 안 보이고 높은 크레인과 대형 선박과 부둣가의 차량 등으로 복잡하게만 보였다. 나는 그 복잡함이 인체의 핏줄처럼 느껴졌다. 우리 몸은 피가 고이면 동맥경화로 병이 생긴다. 하지만 우리는 정신이 굳는 건 잘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부산역까지 걸어서 왔는지 모른다. 부산항의 피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부산항을 앞에 두고 우측으로 걷고 다시 우측의 지하차도를 빠져나와 걸었다. 부산 시내의 넓은 도로와 만나며 좌회전해서 몇 발짝 가니 초량역. 그다음 역이 부산역이었다. 나는 부산역을 옆에 두고 그냥 지나쳤다. 시간은 오전 11시. 나는 두 시간 뒤에 이곳으로 되돌아와 나만의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남포동, 영도다리, 자갈치 시장. 부산에 여행 오는 사람들이 해운대와 함께 꼭 들르는 이곳, 토요일 한 낮이라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각지에서 각각의 사연을 안고 온 사람들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처럼 큰 배낭을 메고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나는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임진각을 출발할 때 쏟아져 들어오던 관광객들을 보며 느꼈던 이질감.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여기 이들과 함께였다.
나는 남포동 형형색색의 군중 속을 빠져 나와 부산역으로 걸었다. 부산역을 향해가는 내가 약간 상기되어 있음이 느껴졌다. 부산역에 도착하면 뭘 하지? 사실 특별한 세리머니는 생각한 게 없었다. 오늘의 흥분도 내일이면 어제의 일일뿐. 삶이란 늘 그런거니까.
토요일 오후 부산역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오늘 국토종단의 마지막 날, 부산 시내를 아주 천천히 걸어(15.5km, 3.1/1h) 종착점인 부산역에 도착했다.
역 광장 한쪽이 공사 중이라 부산역은 더욱 혼잡스럽게 느껴졌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부산역 광장에 도착한 나는 부산역 안으로 들어갔다. 임진각을 출발할 때 끊어진 자유의 다리는 은연중 나에게 남쪽으로는 부산역을, 북쪽으로는 두만강역을 떠오르게 했다.
부산역 사무실에 가서 내가 걸어온 사연을 얘기했더니 부 역장 역할을 하는 팀장이 사인으로 나의 완주를 축하해주었다. 나이를 묻기에 58살 청년이라고 했더니 놀란다. 난 청년이니까 그렇게 말한 거뿐인데.
나는 부산역 광장에서 사진 몇 장을 추억으로 만들며 잠시 쉬었다. 14일간 560km 국토종단은 끝났다. 부산역 광장 지금 내 앞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여기도 나에게 관심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나는 혼자였다. 지난 14일간의 시간들이 마치 먼 이야기로 들려왔다.
이번 국토종단의 완주는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였고, 나에게 작고 소소한 것에 대해 감사하도록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질 국토횡단에 자신감도 갖게 했고. 58살 청년의 두 발은 벌써 국토횡단 첫날 출발지인 강화도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