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차 강화도 순례] 설레는 출발,국토횡단(1)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15장 설레는 출발,국토횡단(1)


15일 차 2017. 6. 24 강화도 외포리–강화읍- 강화도 초지대교 (42.0km)


560km 국토종단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내의 표정은 그렇게 고생했으니 ‘어디 또 걷겠다는 말은 안 하겠지’ 하는 표정이었다. 국토종단을 극구 반대한 아내가 한 번만 허락한다는 조건으로 시작한 국토종단이었기에 아내의 이런 반응은 당연한 거였다

나는 처음부터 계획 자체가 국토종횡단 1,000km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내에게 1,000km를 얘기한다면 반대가 엄청날 거기에 우선은 560km 국토종단만 얘기했던 것이었다. 국토종단에서 돌아온 후 나는 우선 아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가정의 평화를 깨치면서까지 국토횡단을 떠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격다짐으로 떠난들 걷는 게 편하겠는가? 나의 신체는 어느덧 단련된 근육과 적정한 몸무게로 보기에도 단단한 몸매로 변해 있었다. 다만 새까맣게 그을린 다리와 어깨는 뱀이 허물을 벗듯이 벗겨져 흉측한 모습이어서 아내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거 봐요 괜한 짓을 해서 그렇지 “ 아내의 핀잔이 잦아지면 국토횡단 출발도 늦어질 거 같아 집안에서도 가급적 긴팔 티셔츠를 입고 허물이 벗겨진 데는 티 내지 않았다. 이리저리 며칠 눈치만 보고 있는데 일기예보는 다행히 6월에는 장마가 없었다. 하지만 장마가 좀 늦어진다고 해서 아주 안 오진 않을 테니 하루라도 빨리 출발해야겠기에 하루하루 맘은 조급해졌다. 어찌 보면 아내의 걱정도 당연한 것이기에 우기기도 그랬다. 30년 직장 생활하다가 퇴직하고 바로 1,000km를 걷겠다는데 어느 아내가 찬성할까? 특히 아내는 야영하는 거 때문에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1은 물거품이 된다. 나는 맘속으로 이번 주 토요일을 디데이로 잡았다. 어차피 아내는 반대할 것이다. 나는 아내와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국토종단을 마치고 6일 차 되던 금요일 저녁에 나는 주섬주섬 배낭을 꾸렸다. 이미 국토종단에서 경험했던 배낭이기에 신속하게 짐을 꾸렸다. 그 모습을 보던 아내는 설마 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나 내일 국토횡단 떠나. 본래 계획이 국토종횡단 1,000km였어. 당신이 반대할 거 같아서

국토종단만 얘기했던 거였어”


역시 아내의 반응은 싸늘했다. 가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는 표정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상의의 여지가 없다. 다행히 장마가 늦어졌기에 나는 지금이라도 결정을 내려야 했다. 더 지체한다면 장마와 겹쳐 포기해야 될지도 모른다.

나는 출발해야만 했고 아내는 붙잡는다고 안 떠날 남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고마워 여보”


아내에게 한마디 하고 나는 먼저 방으로 들어와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아내와의 불편한 심기보다는 내일 드디어 국토횡단을 시작하게 된다는 설렘이 더 컸다.

잠결에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5시도 안된 거 같은데 아내가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미안한 맘이 들었다. ‘이게 뭐 큰일이라고 아내를 이렇게 고생시키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가끔 아내가 나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번 국토종횡단은 확실히 이기적인 결정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나는 아내가 끓여준 북엇국으로 아침을 먹고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왔다. 27년을 함께 해준 아내가 오늘따라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2017년 6월 24일 토요일 강변역 첫차 전철 플랫폼에는 토요일 주말이라 그런지 너 댓 명의 사람만이 있었다. 이런 때가 맘이 약해진다. 출발 전에 느끼는 외로움 때문이다.

‘나는 지금 440km를 열흘간 걸어야 해. 감상주의에 빠져서는 안 돼!’ 나는 스스로 다짐하면서 전철 안에서 국토횡단의 지도와 오늘의 도보 계획서를 천천히 훑어봤다. 어느덧 나는 신촌 전철역을 빠져나와 강화도행 3000번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강화도행 버스는 이른 시간인데도 주말 놀러 가는 사람들로 제법 붐볐다. 강화도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30분 정도를 더 가서 출발지인 외포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집에서 아침 5시 20분 아내의 배웅을 받고 출발한 나는 강화도 외포리에 9시 반에 도착했다.

나는 오늘 강화도에서 속초까지 서동횡단을 V자 형태로 걸어 총 1.000km 도전거리 중 나머지인 국토횡단 440km를 드디어 시작한다. 나에게 한반도 북남서동(출발지를 우선으로 하니 동서남북이 아님) 국토종횡단 1,000km 도보 도전은 언젠가는 이루려던 꿈이었다. 14일간의 국토종단도 무사히 마쳤으니 국토횡단은 가벼운 맘으로 시작해도 될 듯했다. 국토종단을 두려움에서 출발했다면 국토횡단은 설렘의 출발이었다.

강화도 외포리 국토횡단 첫날


국토횡단의 출발지인 강화도 외포리. 30년 전 아내와 석모도 가기 위해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결혼해서 나중에 다시 한 번 와보자고 했는데 그 후로가 오늘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세월도 많이 흘렀고 모든 게 많이 변했다. 내일 석모대교 개통이라는 현수막을 보니 이젠 석모도도 배가 없이도 갈 수 있는 섬 아닌 섬이 되었다. 이번 국토횡단도 마뜩찮게 생각하는 아내지만 남편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런 거니 그저 아내에게 감사할 뿐이다.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 시간이 있었기에 시간은 벌써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국토종단 첫날 임진각에서 오전 9시 반에 출발했고 31km였던 거에 비해 국토횡단 첫날인 오늘은 벌써 오전 10시고 거리도 42km로 짧지 않다. 서둘러야 했다.

강화도는 멀리는 고인돌로부터, 고려 항몽의 유적, 개화기의 외세 저항의 역사 등 섬 전체가 하나의 역사다. 두 발로 강화도의 역사를 더듬으며 나는 국토횡단 440km를 걷기 시작했다.

강화도는 사전 계획을 세우면서 답사지로 선정한 곳이 많아서 나는 빨리 걸어야 했다. 그나마 국토종단 후 6일간의 휴식이 있었기에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강화도 하면 제일 기억나는 것이 고인돌이다. 외포리를 출발하여 타고 온 마을버스 도로를 걸어 바로 강화 읍내로 진입할 수도 있으나 나는 고인돌을 보기 위해 길을 돌아 오상리 고인돌군으로 먼저 가기로 했다. 외포리에서 나와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강화서로 국도로 걸어가니 내가면 방향으로 나지막한 고개가 나왔다. 주말이라 그런지 떼로 다니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사실 자전거는 타는 재미가 있고 먼데도 하루에 갔다 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두 발로 걸으며 느끼는 느낌과는 차이가 많다. 나도 한때는 자전거로 먼 곳을 여행해 본적이 있지만 두 발이 느끼는 자연과는 차이가 컸다. 두 발로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강화서로길 고개를 넘으니 바다는 안보이고 산에 둘러싸인 농촌 풍경이다. 내가면. 길가에 있는 내가초등학교 벽에 쓰인 글씨가 이채롭다. 내가 ‘최고’인 초등학교. 이런 학교는 성적만을 최고로 치는 교육은 안하겠지.

순수하고 정이 많은 아이들이 다니는 내가초등학교를 끼고 우회해서 들어가면 우측에 고려저수지가 보이고 이 길이 바로 강화나들길 5코스 길이다. 말 그대로 나들이 길이었다. 호젓하고 선들선들 바람까지 부니 걷기에 최고였다. 국토횡단 첫날 나들길을 걸으며 맑은 공기와 자연을 벗한다는 건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 신체는 자연과는 같은 방향으로 반응한다. 날씨가 좋고 적당한 온도에 바람까지 선선하면 내 몸도 신바람이 나서 힘든 줄 모르고 걷는다. 고려저수지는 인근의 고려산에서 나온 이름이라는데 고려저수지에서 고려산이 나온 건지 고려산에서 고려저수지가 나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고려저수지와 고려산을 끼고 걷는 강화 나들길 5코스는 힐링하기에 좋은 코스임엔 틀림없었다.

강화나들길 5코스 고려저수지


고려저수지 앞 소매점을 끼고 좌회전해서 1km를 더 걸으니 오상리 고인돌군. BC 10세기경으로 추정되는 12기의 고인돌군으로 모두 북방식 고인돌이었다. 강화도에는 고인돌이 많기로 유명한데 청동기시대에는 강화도에 꽤 많은 사람들이 살았나 보다. 그러니 청동기시대엔 혹시 강화도가 우리나라 수도였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봤다. 국토종단 3일 차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길가에 있던 산이리 지석묘를 보면서 국토횡단 강화도 길에서 고인돌을 보면 뭔가를 같이 느껴보고 싶었는데 오상리 고인돌군은 경기도 광주가 본가인 처자가 멀리 강화도로 시집온 느낌이랄까 (혹은 그 반대) 그런 친근함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곳의 고인돌 형식이나 모양이 비슷하니 그저 신기하고 놀랄 따름이었다.

오상리 고인돌군


고려산에 위치한 고천리 고인돌군은 고려산 서쪽 능선을 따라 해발 350∼250m 지점에 18기의 고인돌무덤이 흩어져 있는 곳이었다. 나는 오상리 고인돌군에서 고천리 방향으로 비포장도로를 걸어 한참을 가다 고천리 마을회관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올라갔다. 고천리 고인돌군에 가기 위해서는 산을 타야 했다. 산행은 별로 안 내켰지만 빨리 올라갔다 와야지 다음 강화읍 행선지로 갈 수 있기에 헐떡거리며 올라갔다. 한참 올라가니 초입에 고분군 안내 글과 함께 경사진 산자락에 지석묘가 보였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에 더 올라가 봐야 했지만 어느덧 맘이 급해 초입의 몇 개만 보고 내려왔다. 이제 겨우 10km 걸었는데 벌써 12시가 훌쩍 넘고 있었다. 그나마 이번 국토횡단은 6일간의 휴식기간과 함께 답사할 곳에 대한 충분한 사전 지식을 익혔기에 답사지에서 머무는 시간은 줄일 수 있었다.

고천리 마을회관을 빠져나와 좌측이 강화읍으로 가는 국도였다. 고비고개로. 왼쪽은 방금 고천리 고인돌군 보러 산중턱까지 올라갔던 고려산, 오른쪽은 혈구산이다. 완만한 경사로로 고개 정상의 해발은 178m. 국토횡단 첫날인 오늘 이 정도 고개는 빠른 걸음으로 넘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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