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18일 차 2017. 6. 27 서울 강변역–팔당역-경기도 양평읍 생활체육공원 (55.0km)
아침 5시 반에 일어났다. 아내가 깰까 봐 조용히 혼자서 아침을 먹고 배낭을 메고 나오려는데 인기척에 깼는지 아내가 일어나 배웅을 했다. 집 떠날 땐 늘 아쉬움이 많다. 그래서 몰래 나오려 했던 건데.. 걱정마라며 아내를 가볍게 포옹하고 집을 나오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국토횡단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떠나는 아쉬움은 간데없고 내 머릿속은 바로 나머지 국토횡단을 위한 생각들로 꽉 채워졌다.
평소 집에서 운동할 때의 시작점, 강변역 잠실철교 밑 쉼터의 벤치가 오늘따라 더욱 쓸쓸하게 보였다.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지금 난 왠지 이곳에 다시는 못 올 것처럼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매일 보던 이정표도 다시 봤다. 상념에 빠지면 걷고 싶어지지 않는다. 나는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정신 차려‘ 하고 구리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래 걷자.
아침 6시부터 걷기 시작한건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55km로 매우 멀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구리 한강시민공원까지는 나의 마라톤 훈련 주 코스다. 강변역에서 구리 한강시민공원까지 왕복하면 12km, 거길 지나 강동대교까지 갔다 오면 15km다, 나는 국토종횡단을 결정한 후 올 2월부터 훈련 스케줄에 따라 매주 토요일 오전에 이 코스를 달렸다. 지금은 배낭을 메고 걸어가고 있다.
매주 뛰면서 이 길은 이미 양평을 거쳐 강원도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마지막은국토종횡단의 종착점 속초였다. 길이 눈에 익으니 발걸음도 익숙했다. 이른 아침 덥지도 않고 햇살도 적당하니 집에서 강동대교까지의 7.5km는 수월하게 걸었다. 강동대교에서 팔당대교까지는 13.5km. 오전에 빨리 걸어놔야 55km가 부담스럽지 않다. 어제저녁 집에서 포식을 하고 잠을 푹 잔 것도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나는 오전 10시 반에 팔당역에 도착하여 팔당의 먹거리 초계국수를 먹으며 한 시간 정도 쉴 계획이다. 평소 마라톤 훈련으로 달리던 길이었기에 달리고 싶을 정도로 빨리 걸었다. 한 시간에 4.7km로 속도로 걷고 있으니 무척 빨리 걸었다. 나의 두 다리는 나의 의지를 따라와 줬다. 덕소를 지나니 맞은편 강 건너 하남시가 보였다. 저 멀리 팔당대교는 점점 더 눈앞에 다가오고 나는 빠른 걸음을 계속했다. 집 냉장고에 얼려두었던 생수가 나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줬다. 팔당대교를 지나 500m 정도 더 가면 초계국수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오전 10시 반이면 점심으로는 이른 시간이지만 집에서 아침 5시 반에 반 공기 정도의 간단한 식사만 했기에 초계국수 한 그릇 정도는 단숨에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초계국숫집 조금 못 미쳐 팔당과 팔선녀의 전설을 알려주는 글이 있다. 팔당은 옥황상제를 보좌하던 팔선녀가 한강 팔당대교 근처 바댕이마을로 놀러 왔다가 어린 선녀가 길을 잃어 농부의 신세를 졌고 그 얘기를 들은 옥황상제가 농부에게 8개의 복주머니를 주었고 그 후 마을사람들이 팔선녀가 놀던 곳에 8개의 사당을 지어 복을 빌었다고 해서 팔당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글이었다. 모두가 8이다. 그런 연유는 아니겠지만 초계국수도 8천원, 그렇게 비싸지 않게 느껴졌다.
이곳은 앞에는 한강을, 뒤에는 예봉산을 두고 있는 산기슭의 넓지 않은 지형이다. 듣자니 초계국수는 팔당 맞은편의 하남시 미사리에서 유래됐다는데 한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온 미사리 초계국수가 팔당에 와서 더 만개 한 듯하다.
이곳 식당들은 양평, 충주를 거쳐 국토종단 하는 라이더들로 인해 장사가 쏠쏠하다. 양수리에서 갈라져 가평, 춘천으로 가는 라이더들도 꼭 이곳을 지나가야 했다.
라이더들의 화려한 옷차림 사이에서 나 같은 도보여행자는 배낭을 메고 있지 않다면 그저 평범한 산보꾼으로 비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배낭을 메고 라이더들과 함께 여주까지 이 길을 가야하기에 그들과는 동행인 셈이었다. 다만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나는 걷는다.
나는 식당에서 한 시간정도 쉬려다말고 중간에 일어났다. 나는 라이더만큼 여유로운 게 아니었다. 초계국숫집을 나와 30여 m 지나 꺾어 도니 옛 경의중앙선 철길인 자전거길이 나왔다. 자전거 길과 나란히 보행자 길도 있었다. 보기만 해도 걷고 싶어지는 길이었다.
경의중앙선은 원래가 단선철도라서 역에서 교행을 했다. 그래서 교행 할 기차를 기다리느라 기차는 역에서 한참을 서고했다. 그리 느리니 복선 철로가 깔렸고, 그것도 느려 지금은 그길 옆으로 새롭게 고속철이 생겼다. 그리고 예전의 경의중앙선은 지금은 기차가 아닌 자전거, 사람의 길로 변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은 느린 게 더 각광받는 시대니 경의중앙선 옛 철길을 따라 걸어 양평 가는 길, 오늘 나의 두 다리는 slow train인 셈이었다.
길을 걷다 보니 터널들이 계속 이어졌다. 터널 속은 한낮의 더위를 식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터널에 진입하면 서늘함이 바로 피부에 닿아 발걸음은 자동적으로 느려졌다. 터널이 끝없이 이어지길 바라며 터널 안을 천천히 걸어보지만 터널은 이내 앞쪽에서 환한 빛을 드러냈다. 대개 터널의 길이는 500m 남짓했다. 하지만 터널은 한낮의 더위에 지친 나의 땀을 씻어 내기에 아주 유용한 구간이었다.
팔당대교에서 다산유적지 입구 삼거리까지의 거리는 6km. 출발지 강변역 잠실철교에서부터 이곳까지는 24.5km, 한 시간에 4.3km로 걸어왔다. 이곳은 올 3월 지구력 훈련을 위해 몇 번 뛰어온 적이 있기에 익숙한 편이었다(그 당시 돌아갈 때는 버스로 갔다). 걸어온 길에서 양평으로 가는 길은 직진이고, 우측으로 돌아들어가야 다산유적지다. 유적지를 돌아보고 다시 돌아 나오면 왕복 4km를 걷는 셈이다.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다산유적지는 다산이 태어나고 유배의 기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생활했던 곳이다. 오늘은 천천히 걸으며 유적지를 살펴봤다. 여유당(與猶堂). 정약용의 생가로 노자도덕경의 "여(與)함이여, 겨울 냇물을 건너듯이, 유(猶)함이여, 너의 이웃을 두려워하듯이"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이다. 요즘 사는 게 원체 빡빡하니 인생을 여유롭게 살자는 의미의 여유당(餘裕堂)이어도 괜찮을듯했다.
다산유적지를 빠져나와 경의중앙선 옛 철길을 다시 걸으며 보이는 작은 족자섬.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두물머리 끝 쪽에 보이는 섬인 족자섬을 그린 그림, 독백탄(獨柏灘)의 실제 배경이 된 섬이다. 왼편 높은 산인 운길산에서 내려다보면 절경이라는데 여기서 보니 그 맛은 덜하지만 남한강과 북한강이 갈라지기 전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어 풍수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늑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었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곳,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그렇게 불리며 양수리(兩水里)라는 지명도 두 개의 물이라는 한자에서 온 것이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곳,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그렇게 불리며 양수리(兩水里)라는 지명도 두 개의 물이라는 한자에서 온 것이다.
양평을 향해 걷던 나는 구 양수철교를 지날 때는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한낮의 태양아래 한참을 서서 두물머리를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단선 철교 위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것의 위대함. 우리는 이젠 너무 큰 것에 익숙해져서 작은 것은 무시하고 쉽게 버린다. 그나마 이 철교는 자전거 길로 다시 태어났으니 축복받은 거다. 옛 경의중앙선이 철로일 땐 느리고 좌석도 비좁아서 환영받지 못했던 것이 지금은 이렇게 사랑받으니 이 철로도 느리다고 불평하던 시절의 설움은 잊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