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차 강변역-양평읍] 한강에서 남한강으로(2)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18장 한강에서 남한강으로 (2)


18일 차 2017. 6. 27 서울 강변역–팔당역-경기도 양평읍 생활체육공원 (55.0km)


양수역을 지나니 여러 색상의 네온이 현란하게 춤추는 터널과 만났다. 옛 용담터널. 지금은 용담이브터널 일명 네온터널로 불린다. 터널이 예술로 승화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터널 안이라 시원하기도 했지만 화려한 네온의 예술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터널 안은 나 혼자. 나는 배낭을 벗어던지고 행위예술가가 되어 터널 안 아스팔트에 벌렁 누웠다. 차가운 바닥의 냉기가 온몸에 전달되니 꼭 냉장고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나는 큰 소리를 지르며 터널 밖 세상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렸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었다. 멀리서 라이더 두 명이 오고 있었다. 몇 분간의 행위예술을 마친 나는 다시 도보여행자로 돌아와 터널을 빠져나왔다

20170627_181947.jpg 지금은 자전거 길로 변한 옛 경의중앙선 터널

오늘 목적지 양평읍 생활체육공원까지 남은 거리는 18km, 나는 이미 37km를 걸었다. 나의 몸은 아직 피로하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었다. 가족의 힘, 집밥의 힘이리라. 오늘 아침 집을 떠나며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줄걸.. 그러고 보면 우리네는 감사하다 고맙다는 말에 참 인색하다.

신원역, 국수역 방향으로 걸으면서는 옛 철길 자전거 길은 끊어지고 자동차도로의 갓길로 연결되어 걸었다. 자전거 길을 걷다가 자동차 갓길로 걷게 되면 소음이나 주변 경관이 별로인 것도 그렇지만 도로 사정이 안 좋은 곳은 신발 안으로 작은 모래 알갱이 같은 게 들어와서 민감한 발바닥을 자극했다. 내가 걸으면서 짜증나는 것 중 하나는 작은 모래 알갱이가 신발 속 발바닥에서 느껴질 때다. 우리 인체는 어떤 땐 과도하게 반응한다. 도로포장상태가 나쁘거나 갓길에 잔돌이나 흙이 있는 길을 걷다 보면 자주 신발을 벗어 털어야 했다. 신발 속 이물질을 털어내기 위해 배낭을 내리고, 신발 끈을 푸는 행위는 잠시 쉬었다 갈 때 장비를 푸는 거와 같은 똑같은 동작이 필요했다. 그러니 배낭을 멘 상태에서 어디다 다리 하나를 올리고 신발 한 짝씩 털고 하는 게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갓길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길은 자연스레 천천히 걸었다. 암튼 무시해도 될 정도의 작은 알갱이지만 나의 발바닥은 아주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럴 때마다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다.

국수역에 도착하니 한 무리의 대학생 자전거 국토순례단이 쉬고 있었다. 앳된 모습들인데 오늘이 첫날이라 그런지 아직은 쌩쌩하고 약간 상기된 모습들이었다. 서로가 끌고 당기며 국토종단을 완주하길 바란다며 내가 파이팅을 외치자 모두들 함께 파이팅!. 젊은이는 희망이다. 지금은 나도 젊은이다. 나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보다는 도전하는 젊은이를 좋아한다. 요즘은 세상살이가 힘들어서 그런지 도전보다는 편안함을 찾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도전이없다면 미래도 없다. 그래서 나도 지금 도전중이다.

단체로 가다보니 학생들은 준비도 철저했다. 한 친구가 장비 통을 꺼내 자전거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었다. 준비가 철저할수록 더 많은 걸 얻는 법이다. 나도 그런 걸 알기에 이번 국토종횡단을 준비할 때 장비는 물론 나의 체력, 일정 등 세심한 계획으로 준비했다.

20170627_172416. 국수역앞 경기도 구토순례학생들.jpg 대학생 자전거 국토순례단


오늘의 목적지 경기도 양평읍 생활체육공원을 5km 남겨두고 시간은 오후 5시 반. 오늘의 걷기는 아주 순조로웠다. 빠르게 걷기도 했다. 40km 지점부터는 피로가 좀 느껴졌지만 일부러 무시하며 걸었다. 이 정도 피로는 58살 청년이 극복할 수 있었다. 한계란 자기 스스로 규정짓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나는 그런 한계에 익숙해졌고 어떤 때는 미리 안 된다는 판단으로 핑계를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나를 감싸고 있던 한계라는 껍데기를 깨고 한계 밖의 세상으로 나왔다.

국토종단 4~5일 차 이틀간 나는 109km를 걸었다. 그때는 비까지 왔다. 오늘과 내일 이틀간 나는 그때보다 더 긴 113.6km를 걸어야 했다. 이미 국토종단에서 경험했던 나는 국토횡단 이틀간의 장거리에 두려움은 없었다. 지금 나는 스스로 정한 한계는 없다.

이대로 걸어가면 저녁 6시 반에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겠고 야영에도 문제없겠다 싶으니 한껏 여유도 생겼다. 시간도 넉넉하겠다 나는 길가 언덕 위 밭에서 감자를 수확하는 농부를 보고 올라갔다. 반갑게 맞아주는 농부는 잠시 일손을 놓고 요즘 농촌을 얘기해 주었다. 감자 농사 인건비도 안 나오는데 놀리면 풀밭이 되니 매년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또 하곤 한다고. 내가 대화에 죽을 맞추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잠깐을 생각했던 나는 한 시간 넘게 감자밭에 서서 농부와 얘기를 나누었다. 해는 어느덧 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가 다되어가고 있었다. 저녁 6시 반에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여유를 부린 건데 이젠 오히려 맘이 더 급해졌다. 감자밭을 괜히 들렀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지난일 이었다.

밤길을 걸어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5km는 꽤나 멀게 느껴졌다. 어둠이 짖게 깔리니 더욱 그랬다. 나는 이미 50km를 걸어왔고 사위가 캄캄해지니 지금까지 괜찮던 몸에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두 다리도 천근만근, 모래주머니를 찬 것 같이 무겁고.

20170627_203734 양평문화원.jpg 어둠이 깔린 양평문화원


양평읍은 꽤 커서 읍내를 들어와서도 생활체육공원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시간적으로 볼 때 야영지에서 밥을 해 먹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야영지에 일찍 도착하여 자연과 함께 하려던 계획은 완전히 망가졌다. 나는 양평군청을 지나 목적지를 앞에 두고 뼈다귀 해장국집을 찾아 들어갔다. 문 닫을 시간 다되어 안 된다는 걸 30분 안에 먹겠다며 주문했다. 주방의 아줌마들은 빨리 퇴근해야 하는지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지만 밥을 말아 한 그릇 비웠다. 양평읍 생활체육공원은 남한강변에 있다. 공원 모퉁이에 텐트를 쳤다. 밤 9시를 넘긴 시간이기에 공원엔 나 혼자였다.

좀 일찍 도착했다면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좋은 공원이었지만 바로 잘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사위가 컴컴해서 어디 보고 말 것도 없었다. 괜히 농부와 수다를 떨다가 원. 하지만 그런 만남에서 얻는 것도 많다. 삶은 이야기다. 그래서 오늘 걸어온 55km 시간도 내 삶의 이야기다.

나는 오늘 아침 6시에 집을 떠나 55km를 4.3/1h(식사, 쉬는 시간 제외) 속도로 걸어 양평읍에 도착했다. 꽤나 먼 거리였지만 오전 오후 기복 없이 잘 걸은 하루였다. 내일은 더 많이 걸어야 한다. 나는 다른 생각할 여지없이 내일을 위해 바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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