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19일 차 2017. 6. 28 경기도 양평읍 생활체육공원–여주시–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58.6km)
남한강 기슭의 양평읍 생활체육공원은 조용했다. 아침 5시 20분, 알람 소리에 깼다. 오늘은 58.6km로 걸어야 할 길이 아주 멀기에 나는 알람을 이른 시간에 맞춰 놨었다. 오늘은 무조건 일찍 출발해야 한다. 아침 날씨는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날씨는 좋지 않았다. 날씨 탓하고 출발을 미룰 순 더더욱 없었다. 10분 만에 배낭을 꾸리고 가까운 편의점으로 갔다. 아침 6시에는 출발하기로 하고 편의점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먹거리도 샀다. 아침은 삼각김밥과 라면, 간식으로 김밥, 빵을 사고 초코바, 생수도 샀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 58.6km를 감안하여 나는 배낭의 무게와 먹거리에 대한 안배가 필요했다. 멀다고 미리 꽉 채워 배낭이 무거워진다면 이것도 문제지만 먹고 마실 거 준비가 소홀해서도 안 된다. 이런 상황을 다 감안하며 배낭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 했다. 오늘 코스를 미리 본 나는 양평읍에서 여주 신륵사까지 32km, 특히 양평읍에서부터 10km 지점인 개군레포츠공원까지와 거기서 조금 더 간 이포보에서 여주시내 초입의 현암교차로까지 17km의 걷는 길에는 먹고 마실 거 구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양평읍 남한강 자전거 길을 걷으며 국토횡단 5일차, 국토종횡단 19일차의 여정을 시작했다. 강화도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해협을 따라 걸어 서해 인천의 한강 어구에 닿아 한강을 짜라 3일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 한강은 여기서부터는 남한강, 북한강이라는 이름으로 갈라진다. 나는 국토종단 자전거 길의 이정표를 따라 여주, 충주 방향으로 걸었다. 남한강의 풍경이 아침 안개를 머금고 아름답게 펼쳐졌다.
이 길은 양평읍 창대리를 지나 회현리에 와서 남한강과 흑천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회현리 마을 안쪽으로 돌아들어가 걷게 되어있었다. 나는 회현리 마을을 지나 흑천교를 건너 후미개 고개를 넘었다. 이른 아침이라 인적은 없고 등교하는 학생들만 몇몇이 보였다.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학생들은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여기만 해도 마을이 띄엄띄엄 있어 학생 수도 많지 않으니 통학버스가 온 마을을 돌아 태우고 가는 거 같았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국토종단 10일차 지천초등학교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이 천진난만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곳의 아이들은 누가 말을 시키면 대꾸를 안 하고 잘 쳐다보질 않는다는 거였다. 아마도 부모들이 그렇게 교육을 시켜서 그럴 테지. 낯선 사람이 아는 체 하면 상대하지 말라고. 요즘은 친절을 베풀기도 어려운 시대다. 길을 가다가 맞은편 길 아이들 보고 “안녕“하니 ”안녕하세요“라고 답한다. 그래! 가까이서 하지 말고 좀 떨어져서 하는 거야. 이것이 내가 나름 터득한 여기 아이들과의 인사법이었다.
양평군 개군면 구미리의 후미개 고개를 내려와서 우측으로 돌아가니 개군레포츠공원. 이런 시골에 꽤 큰 규모, 꽤 괜찮은 시설의 레포츠공원이 있는 게 의아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은 없는데 주말에도 이용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소 엉뚱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4대 강 사업을 위해 퍼낸 남한강 모래를 이용해 만든 공원이었다. 몇 십 년 전의 이곳은 태풍 때마다 남한강이 범람하여 피해가 큰 지역이었다.
개군레포츠공원을 지나 나는 다시 남한강 국토종단 자전거 길로 걸었다. 어제오늘 아침의 날씨는 무덥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하지만 일교차가 심하니 오늘도 한낮은 불볕더위라는 일기예보였다. 오늘 아침 6시 좀 지나 출발해서 그런지 벌써 꽤나 많이 걸은 느낌이 들었다. 이건 오늘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하는지의 서막이었다. 출발할 때 약간 흐렸던 날씨는 완전히 개었다. 해는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오늘 58.6km에서 10km 걸었으니 이제 시작인 셈이었다. 남은 거리를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처음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각오를 다지며 빠르게 여주 방향으로 걸어 내려갔다. 오늘 완주한다면 남은 5일은 크게 무리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이 나한테는 매우 중요했다. 사실 이번 국토종횡단을 통틀어 이틀간 113.6km 걷는 것은 꽤나 힘든 일정임에는 틀림없다. 58살 청년을 외치며 걷지만 이렇게 먼 거리는 뭘 먹고, 언제 먹고, 배낭에 충분한 먹거리나 물은 있느냐 즉 보급이 중요했다.
여기서부터 여주시까지는 인적도 드문 남한강 자전거 길이다. 한적한 이 길에서 이포보를 앞에 두고 산책 나온 젊은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4대강 사업 후 남한강 물이 흐르지 않으니 녹조현상이 심하다고 했다. 그들이 가리키는 바로 옆 내가 걸어가고 있는 남한강은 그들 말대로 강의 흐름이 멈춘 듯 보였다. 녹조현상은 없었지만 쓰레기가 강가에 가득 고여 물도 탁했다. 강이 흐르지 않으면 죽은 거지.
나는 지금 남한강의 물이 맑고 탁하고가 문제가 아니다. 갈 길이 너무 멀다는 게 문제였다. 이포보에 도착했다. 이포보공원의 다리 디자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남한강을 끼고 조성한 이포보공원은 사람 하나 없이 을씨년스러웠다. 이포보공원 주변을 천천히 다시 봤다. 방금 본 다리 디자인은 뭔지 모르게 어색했다. 그건 자연의 멋이 아닌 인공의 멋이었다. 4대강이 어찌됐건 강물이 흘러야 강이다. 남한강은 예로부터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남한강을 선점하고자 하는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곳이었다. 옛날 백성들이 지금의 이포보를 보면 무슨 말을 할까? 치수(治水)를 잘하는 왕이 성군이라고는 말했을 것이다.
오늘 걸으며 4대강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지만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오늘 남한강을 걷는 목적은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58.6km의 먼 거리를 무사히 완주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이포보에서 여주보까지의 거리는 13km. 자전거로는 최상의 라이딩코스였다. 그만큼 길도 널찍하고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쉴 곳이 마땅치 않고 평일에는 그나마 있던 간이 가게마저 문을 닫아 물이나 먹는 걸 여유 있게 담지 않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침 배낭 안에 있던 건 김밥 한 줄, 빵 한 개, 초코바 3. 그리고 500ml 생수 2개. 그나마 생수 한 개는 다 먹고 한 개도 반뿐이었다. 한낮의 온도가 35도를 가리키고 있고 태양은 사람의 피부를 찌를 듯 내려 쪼였다. 마땅히 쉴 그늘도 없지만 이 길을 쉰다고 다음에 오아시스가 나오는 것도 아니기에 마냥 걸어야 했다. 드디어 나는 오늘 정신력으로 걸어야하는 시점이 시작됨을 느꼈다. 어제 55km 걸었던 피로가 알게 모르게 남아 있어 그런지 넓게 잘 포장된 자전거 길은 나에게는 오히려 황량하게 비쳐 걸으려는 나의 의욕을 자꾸 꺾었다. 이포보에서 여주보 가는 길은 나무 하나 없는 시멘트 바닥의 길이었다. 넓은 평야의 길 같았다. 이곳은 양평 출발지로부터 26km 지점인데 걸어오며 쉴 곳이 마땅치 않아 계속 걸어온 나에게 한낮 더위는 나를 그만 걸으라고 했다. 배낭 속 먹거리도 거의 다 먹고, 먹는 물도 이포보 지나서 다 마셨다. 마실 물을 아껴먹을 정도의 더위가 아니었다. 우선은 있는 물이라도 마셔야 했다. 그만큼 한낮의 태양이 강열했다. 드넓은 남한강변 한가운데로 나 있는 자전거 길. 이 길을 벗어나 뭘 사겠다고 가게를 찾는다면 몇 km를 나갔다 되돌아와야 하니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걸으며 먹는 물부터 구해야 했다. 이포보 한참 지나니 야영장이 보였다. 이곳도 설거지물은 있으나 먹는 물은 없었다. 야영장은 평일이라 아무도 없었다. 목은 타들어가고 난감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야영장을 빠져나오는 차가 한 대 보였다. 나는 막 뛰어가 손을 흔들어 나가려던 차를 세웠다. 사막에서 구세주라도 만났다. 다행히 그들은 먹고 남은 2L 생수가 하나 있다며 나에게 주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그것이 꽤나 무거웠지만 나는 2L의 큰 페트병 물을 품에 안고 걸었다. 무거움보다도 목마름을 더 이겨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는 여주시 다 오기까지 2L 생수를 품에 안고 걸으며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었다.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견딜만한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던가 아니면 정신력으로 버티던가 둘 중의 하나라고. 나는 마치 누가 이기나 보자는 배짱으로 걸었다. ‘설마하니 죽기야 하겠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