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차 양평읍-원주 문막]드디어 강원도로 걷다(2)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19장 드디어 강원도로 걷다 (2)


19일 차 2017. 6. 28 경기도 양평읍 생활체육공원–여주시–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58.6km)


계속 앞으로 걸음걸이를 내디딘다고는 하지만 분명 발걸음은 오전과는 틀렸다. 나는 자꾸 시계만 쳐다봤다. 이런 현상은 내가 지금 걷는 걸 상당히 지루하게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남은 거리도 몇 배로 길게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여주보를 지나 지름길로 간다고 강가의 샛길로 들었더니 길도 나있지 않은 산길이었다. 도로 돌아나갈 수도 없었다. 그런다면 3km를 헛걸음치는 꼴이다. 나는 산길을 헤치며 걸었다. 한참 산길을 돌아내려와 다시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지쳐 가는데 산길까지 걸었더니 맥이 쭉 빠졌다. 여주보를 지나 신륵사까지 6.5km를 간신히 걸어왔다. 시간은 벌써 오후 3시.

오후 들어 급속도로 떨어진 체력으로 32km를 9시간에 걸려 걸어온 것이었다. 내가 걸어온 길은 자전거 길로는 최상의 길이었지만 뙤약볕의 지루하고 쉼터도 없는 걷기에는 무척 힘든 길이었다. 평균시속 3.6km로 걸었으니 20km 지나서부터는 아마도 한 시간에 3km도 못 걸은 게 된다. 엄청 더디게 걸은 것이었다. 아직도 가야할 거리가 26km. 지금 속도로 걷는다면 7시간이 더 걸릴 테고 밤 10시는 넘어야 도착지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에 닿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나의 신체가 걷기를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오늘은 그만 걸으세요’ 했다. 오늘이 국토종횡단 19일째인데 여태껏 크게 겁나거나 두려운 적은 없었다. 한데 지금은 아니다. 무식한 자신감도 한 몫 했다. 어제 55km 걸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가 쌓였을 텐데 ‘별일 없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에 먹는 것도 제대로 안 먹고, 먹거리 준비도 소홀했다. 먼 거리에 먹을 곳이 마땅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 치고는 아침식사와 중간의 보급은 너무나 부실했다. 게다가 오늘의 더위는 아침과는 전혀 다른 불볕더위였다. 더위도 더위지만 광활한 평야를 걷듯이 나무 그늘 한 점 없는 길은 두 다리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신륵사에 나를 닿게 한건 체력이 아닌 58살 청년의 정신력이었다. 나는 시급하게 나의 몸에 영양분을 보충해야 했다. 우선 근처 식당에서 매운탕을 시켜 밥 두 공기를 비웠다. 순간 졸음이 밀려왔다. 한편으로 내 몸은 서서히 충전되고 있었다.

나는 신륵사 남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정자 월송암에 앉았다. 오래전 아내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결혼을 앞두고 이곳에 와서 아내와 했던 얘기들. 당시 나는 결혼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이 정자에서 남한강을 바라보며 나는 결심했다. 이 여자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고.

20170628_142010.jpg 신륵사 월송암 정자


아직도 26km를 더 걸어야 하니 마냥 앉아 쉴 수가 없었다. 신륵사를 나온 나는 남한강 자전거 길이 아닌 여주시 안쪽 길 강천면을 지나 창남이고개를 넘어 문막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강원도 시골농촌으로 바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신륵사를 끼고 샛길로 조금 걸으니 천송삼거리가 나오고 우회전하여 걷다가 금당교를 건너서부터 강문로를 따라 걸었다. 차량은 별로 없고 한적한 시골길의 왕복 2차선 국도였다. 요즘은 대부분의 차량들이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강원도로 가기에 이 도로는 한적해서 걷기에 좋았다. 간간히 폐가도 보이고 슬레이트 지붕의 집이 아직도 있는 거 보니 전형적인 시골농촌의 모습이었다. 1970~80년대에 지붕용으로 많이 사용된 슬레이트는 석면이 함유되어 있어 폐암 석면폐증을 유발하는 발암물질이라는데 내 기억에 고등학교 시절에 야외에 놀러 갈 때 슬레이트판을 준비해서 거기다 고기를 구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아찔한 기억이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석면에 대한 치명적인 기사가 하도 많다 보니 지금 걷는 나, 내 폐가 괜찮은지 괜한 헛기침을 해 본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내 폐는 건강한 편이어서 24일간 내내 두 다리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강천면 사무소를 지나 계속 걸으니 영동고속도로가 나왔다. 시골길을 걷다보면 이정표가 별로 없다. 그래서 짐작으로 걸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영동고속도로를 밑으로 지나 한참을 걸었다. 한참을 걷다 이상해서 이 길이 맞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겨우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나 문막 가는 길을 물으니 오던 길 거꾸로 가서 우측으로 꺾어져가란다. 다행이었다. 1km 채 안되게 지나쳤으니 이 정도는 잘못 든 길 치고는 양호한 편이었다.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길로 꼬부라지니 길게 이어진 고개가 보였다. 마치 차 광고에 나온듯한 아름다운 고갯길이었다. 창남이고개. 영동고속도로를 옆에 두고 나란히 가는 이 길은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모든 차들이 이 고개를 이용해서 다녔다.

창남이라는 고개 이름이 정겹다. 어린 시절 친구 이름 같기도 하고. 창남이라는 이름은 창남이고개를 넘으면 마주치게 되는 섬강의 창남나루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창남나루는 여주와 원주를 이어주는 나루터로서 유명했던 곳이었다. 창남이고개 넘어 만나는 섬강을 건너서부터는 강원도였다.

20170628_172459.jpg 창남이 고개


신륵사에 도착하여 늦게나마 매운탕으로 영양을 보충하고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서 그런지 창남이고개는 어렵지 않게 넘었다. 섬강 다리를 건너니 강원도 원주시.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 견훤로를 걸어 문막읍을 향해 걷는데도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보급, 장거리 도보에서 특히 먹는 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하루였다. 지금의 나는 확연히 틀리다는 게 느껴졌다. 신륵사에서부터 여기까지 13km를 걸어왔다.

앞으로 더 걸어야 할 거리가 10km. 시간은 저녁 6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자 맘이 급해졌다. 이런 때 빨리 가려다 무리하면 금방 신체리듬을 잃기 쉽다. 두 다리의 피로도 신경써야하지만 배낭의 무게를 인지하는 것도 중요했다. 나는 신체 상태를 점검해보았다. 아까보다는 나졌지만 무리하지 않는 게 나을 듯했다. 왜냐면 나는 어제부터 해서 지금까지 이미 100km를 넘게 걷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나머지 거리를 한 시간에 3.2km 정도로 천천히 걷기로 했다. 그럼 남은 10km를 걷는데 3시간이면 충분했다. 빠르게 걸을 때 한 시간에 4.5km와 비교하면 걷는 속도는 25%나 줄어든 것이었다.

나의 신체는 매일이 같을 순 없다. 나는 매순간 나의 몸을 알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 오늘은 자신 있게 출발했지만 역시 58.6km라는 먼 거리와 한낮의 더위가 쉽지 않았다.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야 함에도 쉽게 생각하고 중간에 먹고 마실 거에 대한 준비가 소홀했던 게 더 큰 문제였다. 결국 자만심이 문제였고 준비성이 문제였다. 일상도 똑같은걸..

오늘 10kg 넘는 배낭을 메고 쉬지 않고 걸어 58km를 14시간 안에 완주한다는 것은 시속 4.2km로 걷는다는 걸 의미한다. 식사와 쉬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경기도 양평읍에서 오전 6시에 출발하여 밤 8시에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목적지에 닿기로 한 오늘의 도보 계획 자체가 무리가 따르는 계획이었다.

원주시 부론면 노림리 간이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며 나는 오늘 계획의 무모함을 다시 한 번 반성하고 무리하지 않고 밤 10시 안에만 목적지에 도착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5일간의 남은 일정 211km가 있기에 무리하다가 국토종단 때처럼 왼쪽 발목이 붓는 참사를 만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늦은 거 천천히 걷자 결정하니 무겁던 다리도, 어깨를 짓누르던 배낭도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시골은 어둠이 깔리면 모든 게 잠든다. 나는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었다. 늦은 점심을 먹었기에 배는 고프지 않았다. 알사탕을 한 알 입에 너니 단맛이 온몸에 퍼져 기분이 좋아졌다. 경동대학교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정문을 지나니 문막읍 후용리 동네가 나왔다. 걷는 내 모습이 지치긴 지쳐 보이나보다.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내 옆에 서더니 어디서부터 걸어왔냐며 문막읍까지 태워주겠단다. 나는 이번 국토종횡단 에서 철칙으로 정한 게 있다. 첫 번째가 어떤 경우라도 차는 절대로 타지 않는다였다. 사실 많이 지친 지금의 나의 모습은 남들이 보기엔 측은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며 걸어왔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걸어왔다. 지금은 지치고 힘들어 보이지만 나는 내일 또 힘차게 6일 차의 도전을 시작할 것이다.

후용리 앞에 보이는 영동도속도로를 밑으로 지나 우회전하니 저 멀리 문막읍 아파트 불빛이 보였다. 힘내라고 준 음료수 한 병이 나를 족히 몇 km는 걷게 만들었다. 목표가 보이면 힘이 솟게 마련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시골길에서 보는 영동고속도로는 수많은 차량들의 불빛이 현란하게 오가고 있었다.

20170628_201219.jpg 문막읍을 앞두고 어두워진 길. 우측은 영동고속도로

문막읍에 들어섰지만 오늘 묵을 사우나까지 3.5km를 더 걸어야 하는 게 지루했다. 나에게 있어 마지막을 잘 견뎌내는 건 매우 중요하다. 목적지 거의 와서는 피로감과 지루함으로 집중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몇km를 이겨내기 위해 도착해서 만끽할 성취감이나 달콤한 휴식을 상상하며 마지막을 걷기로 했다. 일종의 긍정으로의 사고전환이었다.

밤 9시가 넘어 문막 읍내를 한참 걸어 목적지 사우나 근처에 도착했다. 문을 연 식당은 없고 편의점만 보여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웠다. 많이 피곤한지 밥맛이 별로 없었다. 먹으면서도 빨리 씻고 자고 싶은 맘뿐이었다. 사우나에 도착하니 밤 10시 10분. 주인아주머니가 내 모습을 보고 도보여행 중인걸 한눈에 알아봤다. 청년 한 명도 도보여행 중인데 그는 저녁 6시쯤에 들어왔다며 그 청년은 짐도 간단하던데 나 보고는 왠 짐이 많냐고 물었다. 난 피곤하여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그 청년처럼 산보하듯 가볍게 다니고 싶소’ 속으로만 한마디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오래 걸은 하루였다. 58.6km. 4.0/1h(식사, 쉬는 시간 제외). 온 몸에 맥이 다 풀렸다. 하지만 행복감이 밀려왔다. 아무에게나 감사하고 싶어졌다. 나의 가족, 나의 벗, 내가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며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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