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차 원주 문막-횡성군]산골 초등학교 내집(2)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20장 산골 초등학교 내집 (2)


20일 차 2017. 6. 29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횡성읍–강원도 횡성군 정금초등학교 (44.1km)


섬강 둑길을 걷다 보니 드디어 강원도의 자전거 길 끝이 나왔다. 인천 아라뱃길 자전거 길에서 시작한 길은 여주에서 횡성 방향으로 갈라지면서 강원도 방향의 자전거 길은 이곳 횡성 가기 전 10km 지점 섬강 지류에서 끝났다. 난 비록 걸어왔지만 서해에서 시작한 자전거 길이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쉬웠다. 다행히 걷는 나는 끝이 아니었다. 나는 섬강 자전거 길을 걸어 올라와 옥산교를 건너 횡성 방향으로 걸었다. 호저면 호저로와 광학로의 길을 따라 7,8km 걸으니 반곡 저수지가 나오고 저 멀리 횡성읍이 눈에 들어왔다.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영동고속도로를 지나다가 횡성휴게소라고는 들러봤는데 이 먼데를 걸어서 왔다고 생각하니 내 자신이 믿기지가 않았다. 강원도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나는 모든 게 처음이었다.

20170629_105524.jpg 한강에서 시작하여 강원도로 이어진 자전거 길의 끝, 횡성군 호저면 옥산리


오후 2시를 넘긴 오늘 더위도 꽤나 강열했다. 연일 한낮은 33,4도를 넘나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몸은 어제와는 많이 달랐다. 국토종횡단 첫 출발할 때만큼이나 신체 컨디션이 좋았다. 강원도에서 느끼는 모든 게 처음이라는 기대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횡성읍을 앞에 두고 이미 20km를 걸었음에도 나의 두 다리는 ‘횡성읍도 처음 가보는 곳이니 빨리 걸으세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횡성읍은 첫인상에서 나에게 많은 여유를 주었으나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읍내는 한낮의 더위에 지쳤는지 도로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횡성문화체육공원을 지나 읍내 중심가로 들어가려니 길 한복판에 성황당이 보였다. 예로부터 성황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신성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듯 이곳의 성황당은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있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원래 성황당은 자리를 옮기는 게 아니라지. 그래서 그런지 성황당을 그대로 두고 길을 돌려 낸 것이 이채로웠다.

20170629_143401 횡성읍 성황당.jpg 횡성읍 성황당


읍내의 작은 커피숍에서 더위를 식히며 오후 일정을 중간 점검했다. 32km를 걸었고 식사와 쉬는 시간을 빼고 한 시간에 4.3km로 걸었다. 이 정도면 어제의 피로를 완전히 회복했다고 볼 수 있다. 남은 거리는 12km. 지금 시간이 오후 3시 반. 오늘은 모든 게 순조로웠다.다만 2,3일 뒤인 국토횡단 8,9일 차에는 비가 예상된다니 지켜봐야 했다. 오늘 야영지는 횡성군 우천면 정금리 정금초등학교 운동장이다. 학교운동장은 야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나는 되도록이면 학교에 일찍 도착하여 어린 시절로 맘껏 돌아가 보고 싶었다. 6번 국도를 따라 걸으면 오늘의 목적지 정금초등학교에 닿는다. 6번 국도는 내가 내일 둔내면 청태산 방향으로 갈라지기까지는 계속 걸어야 하는 길이다.

횡성읍에서 진입한 6번 국도는 의외로 넓은 왕복 4차선 도로로 차들도 많이 다녔다. 갓길이 넓게 있어 크게 불편하진 않지만 화물차들이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걷는데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늦은 오후의 태양은 식을 줄 몰랐다. 오늘 낮 온도는 34도.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목적지, 도착 후 즐길 휴식시간, 초등학교에서의 야영 등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여러 기대감이 더위도 잊게 했다. 몇 km 지나니 차들은 뜸해지고 그 넓은 도로가 한적해졌다. 차선도 왕복 2차선으로 줄어들고. 길가에 식당이나 주유소도 없고 안쪽에도 민가가 별로 안 보였다. 정말로 강원도 내륙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게 실감이 났다.

걷다가 만나는 없어진 학교, 폐교. 횡성군 우천면 산전리 6번 국도 길가의 용둔초등학교도 폐교다. 1941년 설립되어 48회 동안 1,552명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폐교 안내문에 쓰여 있었다. 지금은 예술촌으로 바뀌었다. 교실이나 교정, 운동장, 그네, 아름드리나무들은 아이들의 것이었다. 폐교 문을 나오면서 사라진 아이들의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6번 국도를 계속 걸었다. 이곳에서 목적지 정금초등학교까지는 4km. 나는 한 시간 정도 더 걸어 정금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정금초등학교는 운동장 한쪽에는 잡풀이 무성하고, 놀이터 그네는 녹이 슬어 쇠줄이 끊어져 있었다. 폐교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운동장의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학교의 역사가 짧지 않음을 짐작케 했다. 이 학교는 예술촌의 그 학교와는 달리 아이들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1934년 개교했다는 이 학교도 폐교 대상이었는데 정신지체아 특수학교로 운용되어 폐교를 면했다고 한다. 전교 학생은 20여 명 정도. 학교 정문 앞 가게 주인의 말을 들으니 운동장의 잡풀이며 놀이터 그네가 이해가 되었다. 운동장의 잡풀은 아이들 키만큼이나 자라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도 안된 이른 시간이었다. 태양은 아직도 서쪽 하늘에 걸쳐 있었다. 오늘 나는 43.km를 4.3/1h(식사, 쉬는 시간 제외)로 걸었다. 일찍 도착하니 맘도 여유로워 잠시 운동장 벤치에 그냥 앉아 쉬었다. 그리고 학교 운동장을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는 운동장을 가로 질러 뛰었다. 어린 시절의 꿈과 추억이 되살아났다. 58살 청년은 어린아이가 되었다.

20170629_180635.jpg 횡성군 정금초등학교


학교 운동장 한쪽 아름드리나무 아래 텐트를 쳤다. 나는 수돗가로 갔다. 목욕까지 할 기세로. 근데 물이 안 나왔다. 요즘은 학교에는 당직교사가 없다.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나그네가 학교운동장을 하루 빌리는 건데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는 게 좋을 거 같기도 한데 말할 사람이 없었다. 교실건물 벽면에 보안회사가 붙여 놓은 교무실 전화번호가 보였다. 전화를 걸었더니 자기는 보안회사 직원이라며 선생님들 퇴근하면 자동으로 여기로 연결된단다. 그래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하룻밤 운동장에서 야영하는데 별일 있겠냐며 알아서 하란다. 나는 그 말이 승낙의 말로 들렸다. 수돗물이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화단 안쪽에 다른 수도가 하나 있다고 알려주었다. 보안회사 직원이 말하는 곳으로 가보니 화단에 물주는 수도꼭지가 하나 있었다. 간단히 세수하고 발도 씻었다. 나는 물을 길어 저녁을 준비했다.

밥, 라면, 햄, 김치가 오늘 저녁이었다. 햄을 데쳐내고 그릇을 헹군 후 쌀을 씻어 밥을 했다(나의 코펠은 작은 거 달랑 두 개다). 그리고 라면을 끓였다. 야외에서 먹으면 뭐든 맛있다. 그리고 많이 먹는다.

20170629_201726.jpg 산골 초등학교 내집
20170629_192908.jpg 저녁 진수성찬


그 사이 해는 넘어갔고 사위는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58살 청년은 다시 어린아이가 되었다. 그 아이는 또 학교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그네를 타고 소리를 지르고. 그러다가 또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고. 산골초등학교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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