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차 서울가양대교-강변역] 맨발의 귀가(2)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17장 맨발의 귀가 (2)


17일 차 2017. 6. 26 서울 가양대교 구암공원-여의도-서울 강변역 (26.8km)


비는 거센 폭우로 변했다. 하지만 나의 자동차도로 우산은 든든했다. 한강철교에서 동작대교 전까지 2.7km를 빗속에 있으며 비를 맞지 않고, 비 오는 날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게 뜻밖이었다. 지금 이 길은 라이더도 없다. 여전히 나 혼자 걷고 있다.

동작대교 거의 다 와서 자동차도로 우산은 없어지고 나는 한강변으로 걸어 나가야 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퍼 부었다. 도보여행자는 이런 때 고민을 한다. 갈 거냐, 아니면 큰 비는 피하고 쉬다가 갈 거냐. 이런 상황에서 나는 주로 가는 길을 택한다. 주저하면 꼭 숙제를 미룬 거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나의 성격 탓도 있다. 나의 이런 조급증은 긍정의 자신감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땐 판단 미스의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신중한 판단은 도전을 주저하게 하고 무모한 도전은 때로는 예기치 않은 실패를 가져오니 어떤 게 좋다고 말하긴 힘들다. 문제는 우리는 매일 뭔가를 판단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네 삶이 피곤하다고 말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판단을 미루고 문제를 회피하는 게 답이 아닌 이상 난 도전을 즐기기를 권하고 싶다.

비를 맞으며 계속 걷기로 한 결정에 따라 나는 반포대교 방향으로 한강변을 따라 빗속을 걸었다. 온 몸이 젖었으니 물속을 걷는 듯 나는 그냥 비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반포대교까지 왔다. 조금씩 잦아들던 비는 반포대교를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치고 해가 쨍하고 떠올랐다. 비 온 뒤 내리 쪼이는 햇빛은 더 강열했다. 비에 젖은 옷도 말릴 겸 나는 햇빛을 그냥 받으며 걸었다. 아까는 빗속이고 지금은 태양 아래라는 차이뿐.

장거리를 걷다 보면 신발속도 후끈후끈해진다. 마라톤 할 때 운동화 속 온도가 43,4도라고 한다. 그러니 하루 종일 걸을 때 내 운동화 속 온도도 30도는 족히 된다. 그러니 이런 햇빛아래 젖은 운동화도 걸으면 저절로 마를 것이다. 지금 질척질척 젖은 운동화, 양말은 몇 시간 뒤엔 원래의 모습이 될 것이다.

언젠가 한강에 다리가 몇 개 있는지 찾아본 적이 있었다. 일산대교에서 팔당대교까지 31개였던가? 대개 다리 간 간격이 2~3km니 (전부가 그런 건 아님) 나는 다리 하나를 지나며 몇 km 걸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반포대교를 지났으니 내가 한강을 건너 집으로 갈 잠실철교까지는 다리가 몇 개 남은 건지 세어 보았다. 집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555m의 잠실롯데월드타워가 저 멀리 보였다. 그 맞은편이 우리 집이다.

어느 정도 걸으니 젖었던 옷은 다 마르고 오히려 한낮의 강한 햇빛으로 걷기 힘들 정도의 태양열이 온몸을 감쌌다. 어제 오후 느꼈던 서해아라뱃길의 더위, 그놈이었다. 온도도 거의 34도. 거기에 지금 걷는 한강변 길의 지열까지 더하니 오후 2시인 지금 최고의 열기를 뿜어내는 듯했다.

태양을 피할 길 없는 나는 일광욕이라도 즐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배낭은 벗어던질 수 없으니 운동화와 양말을 벗었다 (오늘은 거리가 짧고, 비도 예상되기에 발에 테이핑을 하지 않고 출발했다). 나의 맨발은 박세리의 맨발이었다. 1988년 외환위기 당시 US오픈에서 연못에 빠진 공을 치기 위해 양말을 벗던 골퍼 박세리의 발을 우리들은 기억한다. 지금 내 발은 하얀 양말을 신은 듯 그 당시 박세리의 발과 똑같다. 오늘까지 17일간 내가 걸은 피와 땀이 이 두 발에 그대로 담겨 있는 거 같아 뿌듯함이 느껴졌다

나의 맨발


성수대교에서 잠실철교 집까지는 7km. 아주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다. 맨발로 걷는 것이 혈액순환에도 좋다고 하고 한강변 이 길은 맨발로 걷기에도 좋은 매끈한 바닥이었다. 비 그치길 기다렸다는 듯이 라이더들이 쏟아져 나와 한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한 손에 운동화를 들고 맨발로 계속 걸었다 여름 피서 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한강변은 여름 캠핑 피서지로도 손색은 없다.

나는 이번 도보여행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긍정적인 사고로 걸었다. 사실 자연은 늘 그대로다. 자연을 탓하는 건 인간의 이기심이다. 내가 자연에 따르면 되는 것이었다. 긍정의 사고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웠고 또 내일을 기약하게 만들었다.

맨발로 걷고 있는 지금 나는 맨발에 피서를 즐기고 있고 덕분에 발바닥 마찰로 인해 혈액순환도 좋아지고, 햇빛 비타민이라는 비타민D도 섭취하고 있는 중이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게다가 조금 있으면 집에 도착하여 3일 만에 가족과 만나 저녁을 함께 할 테니 지금 맨발의 발걸음이 왜 아니 가볍겠는가?

청담대교를 지나 종합운동장 밑 탄천으로 갈라지는 길은 나에게 아주 익숙한 길이다. 평소 운동을 할 때 구리방향은 구리한강공원까지, 잠실방향은 이곳까지 오곤 했다. 나는 종합운동장을 등에 지고 잠시 벤치에 앉아 쉬었다. 잠실운동장에서 보이는 맞은편 뚝섬유원지, 국토종단 2일 차에 걸었던 길이었다. 그때 나는 뚝섬유원지에서 지금의 내 자리를 사진 찍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로 맞은편을 사진 찍고 있다.

잠실운동장에서 바라본 뚝섬유원지

맨발의 느낌이 좋다 보니 나는 계속 맨발로 걸었다. 맨발로 걸어서 잠실철교를 건넜다. 난 잠실철교를 건너 강변역과 인접한 철교 끝에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국토종횡단의 교차지점이었다. 나는 천천히 사위를 훑어보았다. 허공에 +를 긋고 그 교차점에 방점을 찍었다. 지금 서서 마주 보고 있는 맞은편 롯데월드타워 방향은 국토종단 3일 차 아침에 걸어 내려갔던 길이고, 오른쪽은 국토횡단 3일간 걸어왔던 한강하구, 강화도 쪽 길이고 왼쪽은 내일부터 걸어갈 국토횡단 7일간의 시작점 구리, 양평 방향의 한강변 길이다. 이번 국토종횡단의 교차점이 집 앞이라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잠실철교 밑 국토종횡단 교차지점

걸어온 시간들이 많았지만 앞으로 계속될 국토횡단의 시간이 나에겐 더 중요했다. 강원도로 가는 길은 기대가 되면서도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 나는 58살 청년임을 다시 한 번 맘속에 새기고 집으로 향했다.

오후 4시 조금 넘은 시간 아내가 반갑게 나를 맞아줬다. 아내는 괜한 고생이라며 핀잔주지만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씻고 쉬면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데 아내는 내 얘기에 별로 흥미가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혼자서 영웅담을 쏟아냈다.

저녁은 돼지보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국토종단 2일 차 집에서 하룻밤 묵을 때도 돼지보쌈이었다. 아내의 보쌈요리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나는 기름기 쫙 빠진 돼지고기를 상추에 얹혀 새우젓 된장 더해 한입 가득 쑤셔 넣었다. 허겁지겁 먹는 나의 모습을 보며 아내는 사서 고생하는 내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애정의 표정이기도 했다.

집만 한 데가 없다. 오죽하면 집 나가면 개고생이랄까. 늘 자던 방이지만 3일 차 국토횡단의 하루를 묵고 있는 거라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나그네 잠자리처럼 어색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내가 늘 자던 잠자리에서 금방 깊은 잠에 빠졌다.

오늘 거리 26.8km, 4.0/1h (쉬는 시간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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