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17일 차 2017. 6. 26 서울 가양대교 구암공원-여의도-서울 강변역 (26.8km)
결국 어제 나의 판단은 옳았다. 간밤에 서울, 경기 지방에 폭우가 쏟아져 어디는 물난리가 나고 그랬으니. 오늘 오전에도 비가 계속 내린다는 일기예보고 지역에 따라서는 국지성 호우가 내릴 거라니 오늘 내가 걸을 한강에서는 비가 적게 오기만을 바랐다. 오늘은 집에서 묵는 계획으로 걸을 거리가 짧다. 26.8km는 산보 거리다. 출발하려는데 비가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아무리 비가 온들 이 정도 거리를 못 걸을까 하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오늘의 목적지가 집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오늘 되도록 일찍 집에 도착해서 아내, 두 딸과 함께 저녁을 함께 할 생각이다. 어제 나의 변경된 잠자리 장소와 오늘 집 도착시간을 이미 알려 주었고 집 도착은 오후 4시 전으로 잡았다. 아파트 인근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한 후 근처 김밥 집에서 김밥도 한 줄 샀다. 점심은 한강변을 걸으며 이 김밥으로 할 생각이다. 오늘 저녁은 풍성할 테니 점심은 김밥으로 하고 위를 최대한 비워 놓는 게 좋을 듯했다.
한강변을 걷기 시작하며 시계를 보니 아침 8시. 오늘 거리가 짧아서 여유를 부린 탓도 있지만 출발이 좀 늦긴 했다. 하늘은 찌푸린 날씨에 비가 계속 흩뿌렸다. 영락없는 저녁 굶은 시어머니 얼굴이었다. 해는 없고 약간 습했지만 아침이라 어제 한낮 같은 더위는 없으니 걷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전날 흙탕물 잠자리의 위기를 모면하고 사우나에서 푹 잠을 잤고 아침밥도 든든히 먹었으니 신체 컨디션은 좋았다. 무엇보다도 오늘은 집이라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었다.
나는 아주 빠른 걸음으로 한강변 여의도 방향으로 걸었다. 비가 언제 또 폭우로 변할지 모르기에 최대한 빨리 걸었다. 평일 아침 한강변은 나 혼자 독차지였다. 간간히 비가 흩뿌리고 날씨가 잔뜩 흐려 있으니 아침에 산보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여의도 63 빌딩이 보이는 지점 대략 7,8km 정도 걸으면서 만난 사람은 연습하는 마라토너 한 명뿐이었다.
다행히 출발해서 걷는데 큰비는 오지 않았다. 여의나루역까지 10km의 거리를 2시간 14분 만에 걸어왔으니 시간당 4.4km 속도로 꽤나 빨리 걸었다. 비가 올 듯 말 듯 하면서 선선한 날씨도 빨리 걷는데 한몫했다. 이 길은 올 2월에 서울레이스 마라톤을 달렸던 코스였기에 기억이 생생하다. 눈에 익은 코스기에 특별히 감상하고 쉬고 할 그런 길이 아니었다.
국토종횡단 1,000km 도전 준비 4개월의 첫 달인 올 2월 말, 나는 체력을 테스트해볼 겸 이 대회에 출전했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 sub4(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를 달성했다. 그때 30km 지나서부터는 체력에 한계가 와 스피드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성산대교를 지나는 36km 구간부터는 뛰다 걷다를 반복했다. 질질 발을 끌며 뛰는데 골인 지점 100m를 앞두고 전광판 시계가 3시간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나는 그때 그 길을 지금은 배낭을 메고 걷고 있다. 물론 그때의 체력이 지금 나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여의나루 공원은 전철역과 바로 이어져있고 한강변을 끼고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어 사람들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월요일 오전 10시 20분, 흐린 날씨 탓인지 공원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쉬어가기 위해 그늘막 벤치에 않았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점점 굵어지고 금방 장대비로 변했다. 빗줄기가 어찌나 굵은지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 나는 계속 비를 피해야 했다. 굵은 빗줄기로 한강 맞은편 남산도 희미하게 보였다. ‘그래 쉬다 가자 좀 지나면 잦아들겠지’ 이런 비를 맞으며 걸으면 틀림없는 미친 사람이다. 오늘 걸을 거리가 짧고 한강변을 따라 계속 걷는 거라 쉬는 나의 맘도 편했다.
그늘막에서 비를 피하며 쉬고 있는데 저쪽에 장대비를 맞으며 걷는 한 사람이 보였다. 망토를 걸치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그 사람. 1947년생. 백마 부대원으로 월남전 참전. 어린 시절 어머니 돌아가심. 아버지는 살아 있으나 연락 안 하고 산지 오래됨. 이런 생활 한 지는 10여 년. 보라매공원에서 노숙을 하다가 3년 전부터 이곳에서 노숙. 왜냐면 이곳은 사람들이 많고 특히 젊은 연인들이 많아 여름에는 그들이 먹다 남긴 음씩 찌꺼기가 많음.
그의 인생이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건 생존의 몸부림뿐. 우리 둘은 공원 그늘막에서 비를 피하며 얘기를 나눴다. 그는 뭔가를 계속 얘기하고 싶어 했지만 오랜 노숙 생활에 몸이 망가져서 그런지 말이 어눌해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어제 산 구운 계란 한 개를 주고 내가 한 개를 먹었다. 구운 계란 하나인데 먹으면서도 연신 고맙다는 말에 나는 갑자기 그가 친형님처럼 느껴져 와락 껴안을 뻔했다. 빗속에서 우리 둘은 말없이 그저 강 건너 희미한 남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분위기가 어색하니 난 자리를 뜨고 싶었다. 같이 있다한들 어차피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비는 멈출 거 같지 않았다. 다행히 빗줄기는 좀 가늘어졌다. 나는 배낭에서 우비를 꺼내 걸치고 건강 잘 챙기라고 한마디하고 그와 헤어졌다. 나는 우비를 입고, 그는 망토를 입고, 우리는 서로 반대의 길로 걸어갔다. 아침부터 흩뿌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걸어왔고 걷는 한강변 길에 듬성듬성 물이 고여 있기에 옷은 물론 운동화, 양말도 이미 물이 흥건했다. 빗줄기가 굵어져 어쩔 수 없이 입은 우비는 습기로 끈적끈적하여 걸으면서도 눅눅한 느낌이었다. 도보 환경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나는 걸어야 했기에 도보만 생각하며 비를 맞으며 걸었다. 이미 국토종단 4일 차 경기도 곤지암에서 충북 광혜원 55.4km 빗속의 도보를 경험도 해봤다. 계속 비가 내리고 있으니 어딜 보고 여유 부릴 상황도 아니었다. 남산은 아까보다 더 뿌옇게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비를 맞더라도 그저 빨리 걷는 게 최상이었다.
세찬 비를 맞고 여의도를 빠져나오니 한강철교, 한강대교가 눈앞에 펼쳐졌다. 다행이 여기서부터는 한강변 자동차도로의 밑을 걷는 거기에 비를 맞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동작대교까지 약 2.7km는 내 머리위에 걸친 자동차도로가 우산인 셈이었다. 한강에 부딪히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다리 밑을 걷는다는 건 대단히 흥분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차타고 다니며 많이 봐왔지 한강철교나 한강대교를 바로 밑에서 볼 기회가 없었다. 한강철교를 지탱하고 있는 화강암 교각은 인간의 척추같이 강건하게 보였고 그 위에 놓인 철로와 수시로 지나가는 기차는 음식이 식도라는 레일을 통해 창자로 내려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철교 밑에서 본 한강철교는 그만큼 인체의 구조와 흡사하게 느껴졌다.
한강철교 옆 제1한강교는 6.25 때 패퇴하던 이승만 정권이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폭파했던 다리다. 무너져 내린 다리를 수만 명의 피란민들이 아슬아슬하게 건너던 한 장의 사진은 그 후 6.25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