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16일 차 2017. 6. 25 강화 초지대교–인천 서해갑문-서울 가양대교 구암공원 (46.5km)
리무진버스에서 인천공항 가는 길에서 가장 아름답게 봤던 서해아라뱃길 인공폭포는 물은 없고 죽은 동물의 갈비뼈처럼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다. 물이 있어야 할 곳에 물이 없으니 상상 이상으로 추한 몰골이었다. 아무리 인공으로 꾸민다 해도 자연의 멋을 이기긴 어렵다. 서해아래뱃길은 사람 손을 빌어 물길을 만들어서 그런지 어느 곳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어색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결국 인공은 가식이었다.
한강을 향해 흐르는 서해아래뱃길은 굴포천에 이르러 두 갈래로 갈라진다. 노을가든은 한강으로 흐르는 서해아라뱃길과 부천, 부평, 계양 등 내륙으로 흐르는 굴포천의 물 갈림길에 있는 공원인데 그곳에서 보는 저녁노을이 아름다워서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오후시간이라 저녁노을을 못 보고 가는 게 아쉬웠다. 서해아라뱃길을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매년 발생하는 굴포천의 범람 때문이었다 해서 그 옛날 홍수의 흔적이 어디 있나 싶어 봤더니 지금은 말끔한 정돈된 공원의 모습뿐이었다.
서울 쪽에 다가오니 주말을 맞아 가족단위로 캠핑 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대개는 서해아라뱃길 다리 밑이나 주위 잔디밭에 텐트를 쳤는데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었다. 내일은 나도 가족과 함께다. 국토종단 때는 2일 차에 집에서 묵었다. 국토횡단 때는 내일 3일 차에 집이다. 집 떠난 지 하루밖에 안되었는데 캠핑 온 가족들 보니 아내와 두 딸이 보고 싶어졌다. 무모한 도전으로 아내 속 썩이는 남편이고 두 딸에게 걱정 주는 아빠니 가족에게 미안하면서도 감사할 따름이다.
누군가 얘기했다 극한 도전의 가장 큰 장애물은 감상이고, 그 감상의 상당 부분은 가정과 연관되어 있다고. 가끔은 나도 혼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 국토종횡단 계획 수립 시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혼자일 때 내가 얻는 거보다 가족은 훨씬 많은 걸 나에게 줬다. 가족으로부터 억지로 허락받은 1,000km 도전이기에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24일간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이다.
애틋한 감정을 추스르며 걸어 아라대교 밑에 도착했다. 앞으로 쭉 걸으면 일산대교 방향의 한강이다. 저 앞의 맞은편에는 아라뱃길 선착장이 보였다.
어느덧 더위도 한풀 꺾이는 오후 4시. 출발지 강화도 초지대교부터 걸어 이곳 아라대교까지의 거리는 34km. 약암로 한강 어구 철책이 쳐진 해안도로에서부터 아름다우면서도 걷기에는 약간 지루한 서해아라뱃길을 걸어 이곳까지 왔다. 이곳까지의 총 거리 34km 중 29km의 길은 쉼터도 별로 없고 그늘도 없는 길이었다. 한낮의 온도는 34도를 넘나들고. 더위와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걷는 거에 충실하며 빨리 걷자고 결심했던 오후 시천가람터에서의 결정을 나는 충실히 이행하며 걸어왔다.
나는 아라대교에서 우회전하여 김포터미널 물류단지를 끼고돌았다. 갑자기 번잡한 시내로 들어오니 지루함은 없어졌다. 하지만 이 길은 차선과 자전거도로 표시가 헷갈려 주의해서 걸어야 했다. 아라육로 58번 길이었다. 걸으며 느끼는 지루함이나 자연과 동떨어진 도시의 번잡함이나 모두 내가 걸으며 이겨내야 하는 숙제였다. 나는 김포터미널 물류단지를 빠져나와 한강 올림픽대로 방향으로 걸었다.
강서 한강습지생태공원에 접어드니 서서히 두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출발지로부터 39km 지점이다. 서해아라뱃길 시천교 지점부터 빠른 걸음으로 걸어 18km를 쉬지 않고 걸었으니 지칠 만도 했다. 곧 비가 뿌릴 거처럼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걷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야영인데 비가 오면 큰일이다. 아직은 비가 안 오니 나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 날씨 상황을 봐야 했다.
가양대교를 몇 백 미터 앞두고 시간은 저녁 7시. 날은 어둑어둑해지며 날씨도 흐려 빨리 야영할 곳을 찾아야 했다. 방금 지나쳐온 방화대교 한강변 공원에는 야영장이 있는데 가양대교 부근 한강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가양대교 좀 못 미쳐 오른쪽의 굴다리를 지나 들어갔다. 아파트 사이에 작은 공원이 보여 그곳을 야영지로 정했다. 날도 흐리고 어두워서 그런지 사람은 없고 공원 아무데나 텐트를 치고 하루 밤 지내도 될 듯했다. 하늘은 어둠 속에서도 흐린 날씨가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밥을 해 먹기는 어려웠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부터 해결해야 했다. 아파트를 끼고돌아 아파트 상가의 식당에서 제육볶음으로 배를 채웠다. 고기가 들어가서 그런지 뱃속의 포만감이 엄청났다. 재빨리 공원으로 돌아온 나는 텐트를 폈다. 어차피 나는 오늘 야영을 결정한 상태였다. 나는 티셔츠만 갈아입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내일은 집이다. 이틀간 못 씻은 거 내일 다 씻어 낼 테니 오늘 하루쯤 이렇게 견딜 들 뭐 어떠랴!
제발 비만 오지 말라고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후드득 빗소리에 잠을 깼다. 텐트를 때리는 가벼운 빗소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비가 굵어지는지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순간 나는 무슨 판단을 해야 했다. 나의 1인용 텐트는 무게가 1.4kg로 아주 가볍고 납작해서 멀리서 보면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로 작다. 그나마 두 겹의 텐트라 겉에서 어느 정도 비나 바람은 막아주겠지만 폭우가 쏟아진다면 감당할 수가 없다. 특히 질퍽한 바닥에서는 도저히 잘 수가 없다. 나는 결심했다. 텐트를 걷기로 했다. 시간은 밤 11시. 텐트를 걷는 중에 빗줄기는 폭우로 변했다. 텐트를 대충 배낭 위에 동여매고 나는 아파트 인근에 있는 사우나로 뛰었다. 결국 그날 밤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나의 장비는 그런 폭우를 감당할 수가 없으며 나 또한 진흙탕을 침대 삼아 밤을 견뎌낼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사우나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 몸을 녹이는데 욕탕이 아닌 진흙탕 위에 둥둥 떠다는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24일간의 국토종횡단에서는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신체 리듬에 맞게 걷는 속도와 거리를 조절하는 것에서부터 날씨에 따라 코스나 출발 시간 등을 조정하는 일, 매일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나 등 오로지 나의 두 다리를 믿고 스스로 모든 걸 판단해야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과 한계를 극복하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오늘 거리 46.5km, 4.4/1h (식사, 쉬는 시간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