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차 강화도-서울가양대교] 한강 아라뱃길(1)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16장 한강 아라뱃길 (1)


16일 차 2017. 6. 25 강화 초지대교–인천 서해갑문-서울 가양대교 구암공원 (46.5km)


첫날을 만족스럽게 마친 거에 비해서 어젯밤 수면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사우나가 강화도에서 좀 알려진 곳이라서 그런지 토요일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꽤 많았다. 두런두런 얘기 소리와 어린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까지 더해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새벽녘이 돼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오늘은 강화도 초지대교를 건너 김포 해안가를 걸어 서해아라뱃길을 거쳐 가양대교까지 46.5km로 강화도, 인천, 서울로 이어지는 코스다. 새벽잠이 충분한 수면은 아니었지만 졸릴 정도는 아니었다. 아침 신체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짧지 않으니 아침 일찍 출발했다.

아침 6시 좀 넘은 시간이니 식당이 문 열었을 리 없어 어제 밤에 갔던 편의점으로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이곳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한적한 강화 해변가에 위치해서 그런지 24시간 영업하지 않았다. 배낭을 뒤지니 사탕밖에 없다. 할 수 없이 아침을 거르고 출발할 수밖에. 나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 보며 초지대교를 건넜다. 초지대교 가운데서 나는 어제 걸어온 길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봤다. 왼쪽은 어제 강화 해변을 쭉 걸어 내려왔던 해안가. 덕진진, 초지진이 보였고 저 멀리 광성보는 굽어진 해안선으로 인해 감춰져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은 서해바다로 이어지는 바닷길이었다.

초지대교를 건너니 약암교차로가 나왔다. 이 교차로에서 우측으로 약암로를 계속 걸으면 서해아라뱃길의 시작점인 서해갑문이 나온다. 이 길은 좌우로 김포평야를 끼고 걷는 시골 국도다. 5km 정도 걸었는데도 문을 연 식당을 발견할 수 없었다. 계속 걷다보니 저 앞에 희미하게 철책이 보이고 철책 너머가 서해바다. 거기서부턴 철책을 끼고 가는 약암로 해안도로였다. 그 길에서는 먹을 데가 없을 건 더 분명해보였다. 철책과 나란히 가는 약암로는 철책 너머 서해안 바닷가를 끼고 한강 하구(河口)의 서해갑문까지 황량하게 이어지는 10km의 길이기 때문이다. 국토횡단 둘째 날 한강에서 시작하여 한강으로 끝나는 유람은 철책이 드리워진 저 앞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었다.

나는 먹을 거 찾는 게 급했다. 이대로 빈속으로 서해갑문까지 걸어갈 수는 없었다. 아무데서나 라면이라도 하나 끓일까.. 아침 8시인데도 태양은 오늘 더위를 예고하는 듯 했다. 오늘 날씨가 매우 더울 거라는 일기예보를 알고 있었기에 나는 나의 체력을 철저히 점검해야 했다. 체력은 제때에 잘 먹는 게 기본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제 집을 나올 때 아침을 먹은 거 외엔 제대로 밥다운 밥을 먹질 못했다. 어제 점심은 김밥과 떡, 밤에는 편의점 도시락, 오늘 아침은 아직이니 말이다. 나는 오늘 한강 서해아라뱃길 뙤약볕 길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꼭 아침밥을 먹어야 했다. 그리고 간식 먹거리도 사야했다. 걱정스럽게 먹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나는 약암로 해안도로 진입하기 전 주유소에 붙어있는 작은 편의점을 발견했다. 작아도 있을게 다 있는 우리나라 편의점. 편의점 뒤쪽으로 돌아 작은 식당도 보였다. 식당은 금방 문을 열었는지 주인아주머니가 야채를 다듬고 있었다. 식사는 밥을 새로 지어야 해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지금 아침밥을 먹으려고 한 시간을 기다리는 건 오늘 스케줄로 보면 상당히 긴 시간이다. 오늘 낮이 무척 더울 거로 예상되고 46.5km의 거리가 짧지도 않기에 나는 오늘 오전에는 쉬지 않고 빨리 걸으려던 참이었다. 있는 밥에 있는 반찬으로 그냥 달라고 했더니 밥통에 있던 밥에 이것저것 반찬으로 내왔다. 집밥 먹는다고 생각하니 맛도 괜찮았다.

뱃속은 금방 든든해졌다. 뱃속이 든든하면 몸은 다시 활력을 얻게 마련이다. 서해아라뱃길에는 편의점이 많지 않다고 들었기에 식당 옆 편의점에서 김밥 두 줄과 빵 2개, 초코바 5개, 생수 두 개, 구운 계란 3개를 사서 배낭에 넣었다. 걸으며 먹을 간식이 주종이었다. 한강을 따라 걷는 길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때론 지루하고,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걸어야 한다. 먹거리를 넉넉히 확보하니 배낭 무게도 묵직해졌다. 하지만 이 정도 배낭 무게는 오전에는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나는 서해아라뱃길이 기다려졌다.

나는 철책과 나란히 가는 약암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철책이 주는 의미는 여러 가지다. 어제 갑곶돈대에서 내려다본 강화해변의 철책은 돈대를 대신해 방어선을 구축한 새로운 설치미술품 같았다면 약암로 약 10km에 거쳐 일직선으로 드리워진 철책의 촘촘한 철망은 열병식에 도열한 수많은 장병들의 눈처럼 보였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6.25. 철책 너머 저 멀리 보이는 영종대교의 수많은 차량들은 철책을 비웃듯 질주하고 있었다.

철책너머 보이는 서해바다 영종대교


서해아라뱃길 역사가 궁금했다. 한강과 서해를 안전하면서도 빠른 뱃길로 연결시키려는 아라뱃길 개척 노력은 의외가 역사가 깊었다. 최초의 아라뱃길 개척 시도는 800여 년 전인 고려 고종 때였다. 당시 각 지방에서 거둔 조세를 중앙정부로 운송하던 조운(漕運) 항로는 김포와 강화도 사이 강화 해변을 거쳐 서울의 마포 경창으로 이어졌는데 강화 해협은 만조 때만 운항이 가능했고 특히 내가 어제 손돌목돈대에서 보았던 손돌목 부근은 뱃길이 매우 위험했다. 이에 안정적인 조운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손돌목을 피해서 갈 수 있도록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직접 연결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고 해방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운하 시도가 있었으나 추진되지 못했다. 그러다 1987년 굴포천 유역의 대홍수로 큰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하자 홍수예방을 위한 대량 수송로 확보와 평상시에는 운하로 사용하기 위해 1995년도부터 경인운하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후 오랜 기간 경인운하 사업계획 및 타당성에 대한 재검토가 계속되다가 2008년 국가정책조종회의에서 민자사업에서 공공사업으로 전환하여 사업시행자를 K-water로 변경, 2009년 드디어 첫 삽을 뜨게 되어 2011년에 완공되었다. (경인 아라뱃길 홈페이지에서 인용)

철책과 나란히 하는 약암로 길을 걸으면서 갑갑한 맘이 드는 건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철책을 옆에 두고 걷는 게 왠지 먹은 거 체한 느낌처럼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철책은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을 싫어한다. 부정적 성격의 소유자는 자기 방어적이고, 핑계가 많고, 뭘 하려 들지도 않는다. 부정적 사고를 긍정으로 바꾸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바꾸어야 한다. 나의 도전도 긍정에서부터 출발했다.

철책이 끝나는 지점, 모래자갈 등을 고르는 공사장을 지나니 중고차 수출단지가 나오고 그길로 들어가면 서해갑문 해넘이 전망대로 바로 갈 수 있다. 내가 걸어온 철책의 약암로 길은 나무 한그루 없는 뙤약볕 길이었기에 나는 지름길을 찾아 서해아라뱃길로 접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건너는 다리가 없었다. 초지대교 출발지에서 철책이 끝나고 서해갑문이 보이는 한강하구 이곳까지의 거리는 15km. 지금 시간은 오전 11시. 한낮의 더위는 점점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나는 강 건너 여객터미널 쪽의 아라빛섬과 해넘이전망대를 감상만 한 후 아래로 한참을 걸어 내려가 서해아라뱃길 첫 번째 다리인 청운교를 건넜다. 드디어 나는 그렇게 걷고 싶었던 서해아라뱃길로 접어들었다. 인천공항 갈 때마다 리무진버스 창가에서 보던 서해아래뱃길은 언젠가는 걸어보고 싶었던 길이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서해아라뱃길 우측은 출발지 서해갑문에서 보면 오른쪽 길이다.

서해갑문


서해아라뱃길은 라이더들에게는 천국이지만 접근성이 떨어져서 그런지 걷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하긴 한낮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이 길을 걷는 사람도 미친 사람이긴 하겠다. 나는 이런 땐 더위를 일부러 무시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더 경치에 더 몰입한다. 하지만 너무 덥고 지치면 어쩔수 없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라이더들은 꽤나 많이 보였다. 서해아라뱃길은 어디 쉬고 싶어도 쉼터가 없고 마땅히 앉아 간식을 먹을 자리도 없었다.(나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기에 아침에 편의점에서 먹거리와 물을 충분히 준비했다). 라이더들에게는 쉼터가 자전거로는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걷는 나에게는 두 시간은 걸어야 쉼터가 하나 나올 정도로 편의점이 안 보였다. 2,3km마다 있는 다리 밑이 그나마 그늘이 있는 쉼터였다. 한낮 더위에 지루함까지 더하니 발걸음도 더뎌졌다. 이런 한낮의 더위는 피하고 한 시간 정도 쉬었다 가는 게 맞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오래 쉴 수가 없었다. 나는 매일 걸어야 할 거리가 있고 도착시간이 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하겠다고 오래 쉬다가는 오늘 46.5km가 한없이 길어진다. 늦어지면 저녁 야영준비도 문제다. 더위도 피하며, 체력도 유지하고, 쉬며 걷기를 잘 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뙤약볕을 피하며 시천교다리 밑 시천가람터에서 아침에 사 온 김밥 한 줄 반을 먹었다. 반을 남겨둔 것은 늦은 오후 허기질 때 저녁 전까지의 허기를 때우기 위함이었다. 서해아라뱃길 오후 2시경의 태양은 아스팔트도 녹일 듯 작열하고 있었다. 라이더들도 이런 더위는 어쩔 수 없는 듯 시천가람터는 라이더들로 북적였다. 상당수가 6,70대 할아버지들이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옷에 어떤 자전거는 꽤나 비싸 보였다. 할아버지들의 자유분방한 삶이 부러웠다. 한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까지 가냐고. 어제 강화도를 출발해서 속초까지 간다고 하니 놀란다. 여행 중에 만나면 금방 친구가 된다. 나이는 상관없다. 76살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할아버지는 자기도 젊었다면 꼭 한번 그렇게 걸어보고 싶었다며 완주하라고 덕담을 건네주었다. 배낭에서 캔 음료수를 하나 꺼내 주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음료는 할아버지 배낭에서 한참을 있었는지 뜨듯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뜨듯한 정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30분 넘게 쉬었다. 더위 핑계로는 충분한 휴식이었다. 이 할아버지들이야 급할 게 뭐가 있겠는가. 나는 걸어서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었다.

라이더들의 천국 한강 아라뱃길


이제부터 또 더위와의 싸움이다. 나는 더위를 이겨내야 했다. 어차피 시간은 가고 늦은 오후에는 더위도 지나간다. 그래서 나는 한낮의 더위 속에서 어느 정도 빠르기로 걸을 건가를 생각했다. 덥다고 시속 4km 미만으로 걷다 보면 오늘 밤 8시 넘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너무 늦다. 나는 그 이상으로 걷기로 했다.

다시 배낭을 메고 그늘 한 점 없는 서해아래뱃길을 걸었다. 걸으며 지금 나의 신체 컨디션을 진단해봤다. 다리의 피로는 없었다. 점심도 방금 김밥으로 해결했던 차라 뱃속도 든든했다. 물도 자주 마셨다. 가끔 사탕으로 당도 보충했다. 그래서 그런지 더위가 두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배낭 허리끈을 꽉 조여 맸다. 배낭을 멘 어깨와 허리끈을 조인 허리가 한 몸이 되었다. 나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한강 경치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목표지점 만을 향해 걸었다. 느렸던 발걸음을 시속 4.5km로 걷자니 당연히 나의 걸음은 빨라졌고 도보가 우선이면서 땡볕아래 주변 경관에서 느꼈던 지루함이 덜했다. 지금은 초지대교를 건너 인천 서해갑문 한강하구 접어들었을 때와는 반대다. 방금 전까진 마냥 서해아라뱃길 경치에 빠져 거리, 시간 개념 없이 걸었다. 생각하는 순서가 바뀌는 게 걸음걸이에 무슨 영향을 줄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의 나는 도착지와 도착시간을 예상한 채 시간당 몇 km를 걸어야 할지 알면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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