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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Dec 04. 2017

마라톤 코스 첫 도전

중국 상하이 국제마라톤 하프코스 참가

   2013년 여름부터 뛰기 시작하여 점점 거리를 늘리던 나는 한번 뛸 때마다 10km 뛰는 것에 익숙해졌다. 기록에 크게 신경쓰지 않 뛰려한 것은 뛰면서 생각하자는 목적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꾸준히 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심폐기능은 좋아진 것 같고 자신감이 붙으면서 가끔 기록을 재보기는 했다.

   대개 초보 달림이가 10km를 한 시간 안에 들어온다면 잘 뛰는 편에 속한다. 나는 일 년여의 규칙적인 운동 후 10km를 한 시간 안에 뛰는 정도는 되었다. 그러니 아마추어 실력은 갖춘 셈이다. 하지만 하프코스나 풀코스에 대한 욕심은 없었기에 따로 스피드 훈련(단거리 스피드 훈련이나 계단, 산을 빠르게 오르는 훈련)이나 LSD훈련(long slow distance - 자신의 최대 스피드의 80~90% 속도로 장거리를 쉬지 않고 꾸준히 달리는 연습)을 한 적이 없어 기록이나 완주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다.

   2015년 11월 8일, 85개국 35,000명. 이 숫자는 2015년 상하이 국제마라톤에 참가한 인원이다. 나는 2015년 상하이 국제마라톤에 참여하기로 하고 2015년 여름부터는 나름 스피드와 지구력을 올리는 훈련을 했다(딱히 훈련이랄 건 없다. 내가 알아서 혼자서 아파트 단지를 좀 빨리 뛰는 정도니까)

  첫 출전의 하프코스를 무리하게 잡다가 몸에 무리라도 오면 안 될 거 같아 2시간 20분을 목표로 했다. 나는 21.0975km를 15km 이후에도 페이스를 유지하며 10km뛸때의 속도로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상하이 마라톤은 하프코스 이상 참가자는 주최 측이 지정한 병원에서 모든 건강 검진한 결과표를 첨부해야 참가가 허락된다. 그만큼 안전에 신경을 쓴다. 그런 걸 보니 나도 지레 겁이 나기도 했다. 20km가 됐던 30km가 됐던 기록을 의식하지 않고 동네 산보하듯이 쉬엄쉬엄 뛴다면야 안전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지만 기록을 의식하면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기록을 의식하며 뛰기 시작하자 나는 '생각하며 뛰자''뛰면서 생각하자'는 본래의 취지가 무색하게, 달리면서 시계를 보는 습관이 생겼고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도 꾸준한 연습으로 10km까지는 생각하며 달리는 여유가 있었던 것은 심박수가 130~150회 정도로 숨이 찰 정도는 아니여서다. 하지만 10km 넘어가면서부터도 그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같은 속도로 뛰다보니 심장박동수가 크게 올라가고 숨쉬기가 가쁘니 다른 생각할 틈이 없다. 심장박동수가 두배로 된다면 어떨까? 우선 숨이 가빠 답답하다. 그리고 헐떡헐떡 하니 쉬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어폰을 끼고 달린다면 어느 정도 스피드로 달리는 건지 짐작이 된다. 빠르게 달린다면 이어폰을 끼고 달릴수는 없다. 나는 보통 10km 넘어서면서 스피드를 계속 유지하려 할 때 심박수가 올라가는 걸 느낀다. 그러다가 스피드 욕심을 내면 심박수가 1분에 150회가 넘어 180까지 가고 머릿속은 하야 진다. 이런 땐 어떤 생각도 나지 않는다. 진정한 마라토너가 된 것 같긴 하다. 우리는 보통 1분에 60~80회의 심장박동을 한다. 180라면 엄청난 심박수다. 대회 출전을 위해서 나는 그러한 높은 심박수 환경에 익숙해져야 했다.(아마추어 모든 대회는 하프코스 3시간, 풀코스 5시간이 제한시간이다)

상하이 마라톤 코스

     대회를 준비하며 나는 두 가지에 집중했다.  초반 10km는 무조건 55분에 주파하는 것과 25km 이상을 꾸준히 쉬지 않고 뛰는 LSD훈련을 통해 17,8km에서 급격한 체력 저하를 방지하는 것. 그래서 기록용 달리기 연습과 천천히 달리기 연습을 교대로 했다. 천천히 달리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행위는 나에게 여전히 필요했.

   대회가 다가올수록 초조함이 커졌다. 처음으로 뛰는 대회다 보니 다들 나보다 잘 뛸 것 같고. 무엇보 남들 의식하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달릴 수 있을까? 이런 대회에 뛰다 보면 옆사람과의 경쟁심이 생겨 오버페이스를 해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는데.. 나는 욕심부리지 말고 2시간 20분 정도로 뛰자며 진정했다. 나의 신체는 이 정도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마라톤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 많다. 대회 일주일 전에는 뭘 해라, 뭘 먹어라 등. 나는 대회 전날 탄수화물을 보충하기 위해 바나나와 떡을 몇 개 먹었다. 처음 출전의 기대감과 불안감으로 잠은 푹 자지 못했다.

   2015년 11월 8일.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가볍게 밥을 먹고 마라톤 출발지인 상하이 중심가 南京路(난징루)로 갔다. 출발은 8시. 황푸강을 끼고 맞은편은 푸동, 동방명주가 선명하다. 6시도 안되었는데 대회장은 인산인다. 날씨가 쌀쌀하니 오줌이 마려워 간이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줄이 엄청나다. 35,000명이 한꺼번에 모이니 대단했다. 하지만 짐을 맡기고 찾는 거라 든다 음료, 화장실 등은 글로벌 도시 상하이 수준에 맞게 잘 되어 있었다. 나는 몸을 풀며 사람 구경도 하며 맘의 준비를 했다. 외국인 참가자들도 엄청 많았다. 나는 민소매와 반바지 차림이었기에 추위를 녹이기 위해 계속 가볍게 뛰면서 몸을 풀었다. 그렇지 않으면 추워서 근육이 굳어질 정도로 날씨가 쌀쌀했다. 그러다가 또 오줌이 마렵고. 화장실을 세 번 갔다 왔다. 내 머리 속은 온통 출발하면 어떤 속도로 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평소대로 뛰면 될 텐데 나는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스타트 라인을 먼저 나오는 풀코스 참가자들

   그 넓은 난징루는 차량 대신 참가자들로 가득 차 맨 앞에는 선수들, 뒤로 떨어져 풀코스 주자, 그다음에는 하프코스, 그다음에는 10km 순서로 출발했다. 하프코스는 중간에 끼어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나 끝이 보이지 않았다. 풀코스 참가자들이 다 빠져나가는데도 3,4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대회 기록은 넷타임(개인별 출발선 밟으면서 측정)이기에 문제는 없다. 나는 절대로 오버페이스 하지 말자며 출발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참가자가 너무 많아 500m 정도는 아주 걸어야 했다. 그러다가 서서히 뛰기 시작하는데 2km 정도까지도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사람이 많아 오히려 이러다 너무 늦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3km 지나며 사람들 간의 간격이 벌어지고 제대로 달리는 모습이다. 재미로 참가한 사람은 보기에도 금방 티가 난다. 하지만 기록을 의식하고 참가한 사람의 표정은 다르다. 참가자들은 모두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는 듯 보였다.

  마라톤 코스는 상하이 시내 중심가를 지난다. 평소 지하철이나 택시로 다니며 보던 풍경을 이국땅에서 뛰며 본다는 건 대단히 흥분되는 일이다. 나는 시내를 구경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달렸다. 연도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응원하기에 신나기도 했다. 5km 지점을 32분에 통과했는데 출발선에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

난징루를 빠져나오는 참가자들

   오히려 천천히 내 몸을 주로에 맞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10km를 얼마에 달릴 건가는 하프코스 기록에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다. 최소한 1시간 안에는 들어와야 나머지 11.0975km를 1시간 조금 넘게 들어와 두 시간 초반대의 기록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애초 2시간 20분을 목표로 했지만 좀 더 당기고는 싶었다. 10km의 표지가 저 앞에 보이고 좌우의 사람을 살피며 달리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분이냐며 자기도 한국사람이란다. 나이가 나와 비슷한 또래였다. 나의 예상 기록을 물어보길래 2시간 20분 정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는 2시간 30분이 최고 기록이란다. 그럼 이 사람은 10km 후반에 얼마로 뛴다는 거지? 나는 순간 불안했다. 2시간 반 주자와 함께 뛰어서는 안 된다. 정말 대회에서는 17,8km 지점 넘어서는 스피드가 현격히 떨어지나? 나는 한편으로 걱정되었지만 그간 연습한 것이 있으니까 뛰어보자고 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먼저 간다고 인사하고 앞으로 달렸다. 한 사람씩 제치며 앞으로 나가는 쾌감이 짜릿했다. 15km 지점에서 보니 꽤나 빠르게 달려왔다. 5km를 26분에 뛰었다. 15km까지 그래서 1시간 25분. 크게 안심이 되었다. 나는 2,3km를 지금과 같은 스피드로 더 달렸다. 이제 1시간 50분대는 무난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나의 몸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18km 지점을 지나서부터는 두발이 디뎌지질 않는다. 뒤쳐졌던 사람들이 나를 앞지르고 달렸다. 뛰러 와서 걷다니 무슨 피지? 연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창피하게도 그렇게 2km를 걷다 달리다 하다가 20km 지점에서 사력을 다해 달렸다. 하프코스 골인지점인 상하이 체육관 정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한국인인 나에게 짜요(加油-파이팅)하며 마지막 힘내라고 외쳤다. 나는 골인 지점을 앞에 두고는 마치 올림픽에서 우승한 것처럼 득의양양하게 두 손을 치켜들며 골인했다. 1:57:02.

기록증. 980등(하프코스 참가자 7천명 중)/116등(50~60살 참가자 중)

    이 순간의 짜릿함때문에 하프코스를 달려온 것인가? 나는 벅찬 감동에 누군가를 붙들고 뭔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나를 맞으러 온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나의 완주를 사무실의 중국 직원들과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했다. 2년 전 처음 뛰기 시작하며 1km 뛰고 헉헉거리며 신물이 올라왔던 내가 하프코스를 완주하며 이런 기록을 냈다는 것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나의 철학. 나는 나를 위해 애쓴 내 두 발에게 뭔가를 해줘야 할거 같아 발마사지 집에 가서 한 시간 마사지를 하며 감사함을 표시했다(그때는 하프코스를 뛴 내 발이 이렇게 안 해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지금은 풀코스를 뛰고도 발맛사지는 하지 않는다)

  달리면서 얻는 것은 너무나 많. 그런 면에서 하프코스나 풀코스의 도전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뛰면서 생각하는 깊이도 달라진다. 풀코스를 달릴 때 나는 35km 이후 정신이 맑아진다. 온몸이 고통스러우니 잡생각이 없어져서 그런것 같다. 고통 속에서 맘이 순수해지고 어떤 욕심도 부질없다는 걸 느낀다. 오랜 시간을 달린다는 건 어느덧 나에겐 고통을 통해 나의 정신이 순백색으로 하얗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처음 달리며 터득했던 생각하며 달리고, 달리며 생각하던 거에 더해 긴 시간을 고통 속에 달리면 생각이 순백색이 된다는 또 하나의 진리를 얻었다.

골인 지점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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