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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Apr 01. 2018

프놈펜의 한낮 더위를 달리며

프놈펜 왕립대학을 뛰다

  코00 단원으로 파견 나온 나는 두 달간 프놈펜 왕립대학에서 현지어를 공부 중이다. 처음 접해보는 캄보디아 언어가 생소하지만 언어를 모르고는 임지에 부임하여 원활한 활동을 수행할 수 없기에 코00의 파견 전 교육은 체계적이면서도 철저하다. 이런 게 다 한국 정부의 돈으로 이뤄지는 거니 나는 공부를 게을리할 수가 없다. 이곳 프놈팬 왕립대학(Royal University of Phnom Penh (RUPP))에서 나는 매일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캄보디아 언어를 배우고 있다.

  프놈펜 왕립대학은 캄보디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으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곳의 외국어학부 한국어학과의 캄보디아 교수로부터 현지어를 배우고 있다. 2주간 현지어 학습에 전념하며 나는 잠시 뛰는 걸 잊고 있었다. 프놈펜 도착 2주가 넘어가니 맘의 여유가 좀 생겼는지 다시 뛰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프놈펜의 한낮 더위는 35도를 훌쩍 넘는다. 프놈펜의 공기가 아주 나쁘다고는 할 순 없지만 한낮 도로를 달리는 것은 더위와 매연을 같이 먹는 거기에 나는 캠퍼스를 달려보기로 했다.

  캠퍼스 내를 달리기 위해서 오늘 아침 마라톤 배낭을 메고 뛰어서 학교로 향했다. 캄보디아는 더운 나라라서 아침을 일찍 시작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아침을 대개 길거리 가게에서 쌀국수 등으로 간단히 먹는다. 아침 간식으로 바나나 구이 등을 파는 행상도 많다. 나는 집을 나서 큰 길가에서 파는 "엇쏨쩨앙"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엇쏨쩨앙은 바나나를 쌀밥으로 감싸서 구운 것으로 달리미들이 먹기에 안성맞춤인 간식이다. 숙소에서 학교까지는 4.7km.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한낮 더위를 피해 4시부터 뛰기로 했다.

엇쏨쩨앙. 한개 250원


  오후 3시 반 아직도 태양은 뜨겁고 온도는 36도를 가리키고 있다. 나는 모처럼 땀에 흠뻑 젖어보자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10km를 뛰기로 했다.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프놈펜 왕립대학 제1캠퍼스는 대학의 메인 캠퍼스지만 크진 않아 최대한 넓게 돌아 달리면 대략 2km.

출발지인 대학 본관 앞

 2주간 눈에 익은 학교지만 뛰면서 보는 풍경은 조금 남다름이 있다. 가끔씩 학생들이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본다. 캄보디아는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대체로 생활이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뛰거나 운동하는 사람은 거의 볼 수가 없다. 하물며 한낮에 이렇게 뛰는 사람은 없다. 교내에는 무수히 많은 오토바이 주차장이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학교를 온다. 그래서 달릴 때 오토바이를 조심해야 한다. 물론 교내기에 그들이 천천히 가기도 하고 나를 비껴가기에 크게 신경 쓰며 달릴 건 없다.

학교 내 곳곳에 설치된 오토바이 주차장

이삼백 미터 달려 나는 CjCC라는 건물을 끼고돌았다. 이 건물은 일본이 ODA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준 것으로 3개의 건물동을 갖고 있으며 시설도  좋다. 일본은 일찍부터 빈곤국가를 돕기 위해 이러한 원조 활동을 많이 했는데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많은 지원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에 대한 캄보디아인들의 인식은 우리와는 달리 우호적인 편이다. 이러한 원조 사업은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역할도 하기에 이곳 캄보디아 거리를 달리는 오토바이는 전부 일본 제품이며 승용차도 거의 다. 캄보디아의 현실이 아직도 해외원조에 많은 걸 의존하고 있어 안타깝지만 그 원조가 부패 없이 국민들을 위해 사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CjCC 본관

CjCC 본관을 끼고 도니 일본어학과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 꽃이 활짝 핀 나무가 나를 반긴다. 꽃이 하도 아름다워 뛰던 발길을 멈추고 지나가는 학생에게 물었는데 이름을 금방 잊어버렸다.

일본어학과 건물앞의 나무.우측 흰색은 학교담

텅 빈 축구장은 한낮의 더위에 지친 듯 잔디마저 나른하게 보인다. 나는 2주간 있으면서 이곳에서 공을 차는 학생들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지금 뛰는 나는 학생들이 보기에는 미친 사람이다.

축구장

   축구장을 끼고 도니 우측에 학생식당이 보인다. 나도 한두 번 와봤던 곳이다. 야외에 천막을 쳐 논 듯한 식당인데 이런 식당이 학교에 서너 군데 있다. 물론 좋은 식당도 두세 군데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한다. 식사는 저렴해서 한 끼에 한국돈 1,000원 정도. 맛도 좋다. 위생은 이 나라 수준으로 보면 나쁜건 아니.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

  CKCC. 내가 공부하는 곳이다. 한국 정부가 지원사업으로 지어준 건물이다. 물론 CjCC가 한참 먼저 시작했지만 CKCC도 이 대학에서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이곳 강당은 시설이 좋아 학교 행사 외에 많은 기업들이 이곳을 사용하고 있다.

한.컴 협력센터

CKCC를 지나 나는 처음 출발했던 본관 방향을 향해 뛰었다. 본관 앞은 큰 호수가 있다. 호수가는 경치도 좋고 나무 그늘이 있어 뛰기도 좋다. 많은 학생들이 그늘에서 공부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있다. 동네 개구쟁이들이 호숫가에서 수영을 하다 나를 보고 웃으며 물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본관 앞 호수가

호숫가를 돌아 본관으로 올라오면 2km. 세바퀴까지는 힘들지 않게 뛰었다. 하지만 네바퀴째부터는 더위를 온몸으로 느끼며 축 늘어진 느낌이 들었다. 한바퀴만 더 뛰고 그만 뛸까?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캄보디아에서 한낮에는 처음 뛰어보는거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은 더위라는 핑계로 하프코스는  고사하고 10km 도 뛸수 없게 될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섯 바퀴를 다 뛰었다. 다만 빨리 뛸 수 있는 날씨가 아니기에 나머지 두바퀴는 천천히 뛰며 무리하지 않았다. 10km를 1시간 10분 정도 걸려 뛰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오히려 계속 움직이는 게 난 것 같아 내친김에 아침에 뛰어왔던 길을 아주 천천히 뛰어 집으로 가기로 했다.

학교문을 나서는 학생들

  학교 문을 나서자 나는 이내 오토바이, 톡, 차량들에 섞여 버렸다. 조심해서 천천히 뛸 수밖에 없다. 복잡함과 무질서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모습이 나쁘지 않다. 순박한 미소와 여유.. 더 가지려고 애쓰는 나의 욕심이 부끄럽다.

캄보디아 교통수단 톡톡이

  학생들은 토요일 오후를 기다렸다는 듯 다들 즐거운 모습이다. 그들이 먹는 식사가 비싸고 좋은 것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행복이 부럽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떤 학생은 그런 나를 보고 V자를 그리며 아는 체를 한다. 조금 지나 보이는 썰렁한 KFC 모습이 대조적이다

  

  내가 뛰는 도로는 큰길이 아닌 안쪽의 도로다.  차선도 없고 무질서 하지만 그런 가운데 묘하게도 서로를 잘도 비껴 지나간다. 하지만 이런 길을 내가 빠르게 뛴다면 부딪힐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앞, 좌, 우를 살피며 아주 천천히 뛰었다. 이미 학교에서 10km를 뛰었기에 천천히 뛰면서 피로를 풀어준다는 기분으로 뛰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도 하고.

  여기저기 사탕수수를 짓이겨 즙을 짜내는 모습이 보인다. 짜낸 즙에 얼음을 넣어 먹는데 맛이 아주 좋다. 큰 거 한잔에 한국돈 600원 정도 하니 값도 아주 싸다. 사탕수수를 짓이기고 난 사탕수수대가 마치 술안주에 오른 마른 명태처럼 보인다


사탕수수즙 음료수를 만드는 모습

  나는 복잡한 이 길을 계속 뛰었다. 아침에 뛰어 왔던 길이고 가끔 걸어서 학교에 갔던 길이기에 이미 익숙하다. 다만 아침의 분위기와 토요일 오후의 분위기는 느낌이 다르다. 지금 거리 곳곳은 활기가 넘친다.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보니 오토바이 세차장이 눈에 많이 뜨인다. 우리나라로 치면 자동차 세차장인 셈이다. 오토바이를 세차하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바쁘다. 의자에서 기다리는 오토바이 주인은 마치 벤츠를 타고 온 주인인 듯 한껏 여유가 넘친다

오토바이 세차장


  학교 문을 나와 이곳 오토바이 세차장까지는 약 1.4km. 천천히 뛰며 왔으니 힘들것도 없다. 민소매 운동복에 반바지, 게다가 마라톤 배낭을 맨 나의 모습이 신기한지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반가운 손인사도 건넨다. 세차장을 끼고 좌측을 돌아 1km 정도 가면 큰 도로를 만난다. 가는 중간에는 조그만 개천이 있는데 이곳의 풍경이 캄보디아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아 나의 맘을 아프게 했다. 개발의 한편에서 볼 수 있는 빈곤과 오염. 버려진 프놈펜의 모습이다.

프놈펜의 그늘  

  하지만 오늘도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땀을 흘린다. 나는 프놈펜에서 가장 큰 채소 과일 시장인 "프싸다음꺼" 시장에 닿았다. 이곳은 한국의 가락시장과 같은 곳으로 매일 사람들로 북적이고 그 앞의 4차선 도로는 이런저런 차들이 울리는 경적으로 귀가 따갑다.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이다. 나는 시장 앞에 서서 여러 모습을 촬영했다. 렌즈 안의 그 모습은 우리의 어머니고 아버지며 나의 형님, 누나들이다.

시장의 모습

  시장을 앞에 두고 우측으로 돌았다. 이제 4차선 갓길을 계속 달려 2km 정도 가면 숙소다. 프놈펜의 큰 도로 길가를 달리는 건 고역이다. 매연뿐만 아니라 갓길을 오토바이나 톡톡이가 점거하고 달리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4거리에서 신호등이라도 걸리면 나는 인도 안쪽으로 들어와 기다려야 했다. 오토바이 매연도 피하고 부딪히는 것도 피하기 위해서다

4거리 모습

  이제 거의 다 왔다. 중국대사관이 멀리 보인다. 숙소 인근에 있는 중국 대사관은 규모가 엄청 크다. 중국과 캄보디아의 좋은 관계를 대변하기도 하지만 캄보디아가 예전 사회주의를 표방할 때 구 소련이나 중국, 북한 등과 밀접한 관계였기에 그런 나라의 대사관이 규모가 엄청 크다. 북한 대사관도 캄보디아 왕궁 바로 옆에 있으니 그 당시의 북한과 캄보디아의 관계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중국대사관

  중국대사관을 끼고 안으로 뛰었다. 대사관 담벼락이 나의 집에 다 왔음을 알려준다.

나는 오늘 아침에 뛰어서 학교로, 오전 수업 마친 후 캠퍼스를, 캠퍼스에서 다시 학교로 해서 19km 뛰었다. 집에 들어오니 온 몸에서 쉰내가 난다. 선크림과 바셀린을 발랐지만 피부에는 땀이 말라 소금이 잔뜩 붙어 있다. 캄보디아에 온 지 어언 15일 나는 두 번째로 맘껏 뛰었다.

  오늘 토요일 저녁은 꿀맛 이리라. 내일은 일요일이니 늦잠도 자야겠다. 나의 달리기는 늘 좋은 결과를 만들고 나를 긍정적으로 만든다. 캄보디아에서도 그건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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