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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Jun 18. 2018

태국 국경까지 뛰어가다

태국 국경의 도시 캄보디아 포이펫까지 뛰어가다

   어느덧 캄보디아에 온 지 3개월  반이 지났다. 캄보디아의 서쪽 끝 도시 이곳에 와서 코00 업무를 시작지도 한 달 반이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반티민쩨이주 시소폰 도시는 오늘 내가 뛰어갈 태국 국경의 도시 포이펫을 제외하고는 태국 국경과 서쪽으로(방콕에서 보면 동쪽) 가장 가까운 도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태국 국경과 맞붙어 있는 도시 포이펫까지는 46km다. 출국 전 2개월의 한국 교육을 마칠 즈음 부임지가 캄보디아 반티민쩨이라고 들었을 때 나는 잠깐 설레었다. 지도를 보니 태국 국경에서 멀지 않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태국 국경까지 뛰어가는 상상을 했다. 지도를 보면 누구나 그곳에 한번 가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두 나라가 접하고 있는 곳의 사는 모습이 궁금하기도 할 테니까. 그리고 아래 지도를 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살고 있는 시소폰이라는 도시는 태국 방콕과도 가까워 여기서는 매일 방콕까지 가는 버스가 있고 네댓 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들었다.

   여기서 나는 나의 집 얘기를 좀 하려 한다. 임지에 온 지 한 달 반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부임지에서의 생활이 바쁘기도 하고 태국 국경까지 46km라는 거리가 가까운 거리도 아니기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한번 뛰어갈 계획을 세워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번 주 토요일 46km를 뛰기로 맘먹은 것은 나의 사랑하는 작은 딸 때문이기도 하다. 아주 아주 사랑하는 딸 김한솔.

   작은 딸은 작년에 대학을 마치고 일 년간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틈틈이 어학 공부를 하여 독일에서 공부할 준비를 했다. 감성이 풍부한 작은 딸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다. 우뇌형 인간에 가까워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엉뚱한 생각도 많고, 상상력도 풍부했다. 하지만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자기 방 정리를 안 한다고, 책상에 오래 앉아 공부하는 습관이 없다고 핀잔도 많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부모의 틀에서 아이들을 보며 훈육했다. 하지만 그게 어떤 땐 맞고 어떤 땐 틀리기도 하다(큰 딸은 보통의 부모들이 기대하는 수준으로 잘 커줬다). 아이가 장난감을 어지럽게 놓는 건 당연한 것이고,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벌려 놓고 보는 건 당연한데 우리 부모는 대개 그 뒤를 쫒아다니면 정리하고 잔소리를 한다. 나는 작은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많이 이해하지 못한것 같다. 그러다가 언젠가 깨달았다. 작은 딸의 개성을 무시하고 내 시각으로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의 생각이 바뀌니 그간 못마땅하던 것들이 나의 눈에는 작은 딸의 창의력으로 보였다. 실제로 작은 딸이 전공이 미술이라 그런 게 아니라 여러 면에서 창의력이나 감수성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땐 열정이 대단하다. 나는 그간 작은 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해를 많이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해하면서부터는 앞으로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독일로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동의했고 새로운 세계를 통해 더 풍부한 감성을 키우고 그걸 창의적으로 계발하길 원했다. 일 년간 작은 딸은 매주 정해진 일주일의 계획에 맞춰 빈틈없이 생활했고 이젠 부모 곁을 떠날 날이 며칠 안 남았다.

   하지만 부모 맘이란 게 어디 그런가? 떠나보내려니 온갖 걱정이 머리를 꽉 채운다. 걱정마라는 작은 딸의 말에도 이런 걱정 저런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가뜩이나 내가 캄보디아에 있어 같이 하지 못하니 맘이 안타깝다.

   그래서 달리기로  했다. 나의 믿음으로 작은 딸 한솔이를 응원하며 달리자고. 나는 회사에서 중책을 맡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나 개인적으로 생각이 많아 머리가 복잡할 때 아주 먼 거리를 달리며 극한으로 나를 내몰았다. 그렇게 뛰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두려움도 없어진다. 이번에 뛰면서 나는 작은 딸에게 아빠의 맘을 전하고 싶었다. 한국과 캄보디아지만 작은 딸은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깐.

   아침 4시에 일어났다. 오늘 4시 50분이 집 출발시간이다. 총 46km의 거리 중 40km를 다섯 시간 정도 달릴 생각이다. 집에서 6km 되는 지점까지는 걸어서 갈 계획이고. 그 시간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침은 입맛이 없어 안 먹었다. 뛰다가 적당한 시간에 어젯밤에 준비해 배낭에 담은 김치볶음밥과 고구마 구운 것을 먹을 생각이다. 집을 나서니 아직도 사위는 어둡다. 가로등만이 길을 밝힌다. 좀 걸으니 오늘의 목표지역 포이펫 45km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집을 나와 좀 걸어 마주친 오늘의 목적지 표지판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도. 가끔씩 다니는 화물차도 주의해야 하기에 나는 6km까지는 걸어서 갔다. 어둠 때문이기도 하지만 체력 안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나는 46km 구간 중 40km만 뛸 계획이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40km를 다섯 시간에 달려 11시 전에는 도착할 계획이다(하지만 물과 먹거리를 담은 배낭 -약 3kg?- 을 메고 뛴 나는 결국 다섯 시간 반을 뛰었다)

  한 시간 정도 걸으니 내가 근무하는 000 대학이 보이고 날이 밝아온다. 나는 이곳에서부터 뛰기로 하고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배낭을 고쳐 맸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허공에 대고 큰소리로 작은 딸 한솔이에게 아빠의 출발을 알렸다.

뛰는 출발지점.서서히 날이 밝아 온다

   오늘 40km를 뛰면서 LSD(long slow distance - 천천히 쉬지 않고 달리는 연습)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기록보다는 쉬지 않고 달려보자고 생각했다. 꾸준히 달리는 것이 장거리 달리기의 기본이다. 달리다 보니 점점 숨이 가빠진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어느덧 날이 밝는다. 캄보디아의 자연을 느끼며 달리는 건 내가 코00 봉사단으로 와서 누릴 수 있는 행운이기도 하다. 쭉 뻗은 길은 마치 나를 위해 펼쳐진 듯하다.

쭉 뻗은 길, 길

   눈앞에 펼쳐지는 캄보디아의 자연은 순박하다. 들녘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끝없이 펼쳐진 논에서 쌀국수가 생각난다. 캄보디아에서 쌀국수는 놈반쪽과 함께 대표적인 음식인데 한 그릇에 천 원 정도 한다. 이렇게 쌀이 지천이니 밀가루보다는 쌀이 더 싼 게 이곳의 현실이다.

픙요로운 들녘

   날이 밝으니 오고 가는 차량도 늘어나고 달리는 내가 신기한 듯 인사를 하며 지나친다. 뭔 소리로 외치는데 힘내라는 소리 같이 들린다.

뛰어가는 나를 응원하는 젊은이들

   간밤에 비가 많이 왔다. 덕분에 아침 기온은 달리기에 아주 좋다. 아침 태양도 아직이고. 하지만 어제 내린 비로 갓길이 진흙길이면 난감하다. 그곳을 지나고 나면 운동화에 진흙이 잔뜩 묻어 모래주머니를 찬 것 같다. 그래서 신발을 벗어 그 진흙을 떼어 내야 했다.

도로까지 덮친 진흙 길

   포이펫 32km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여기까지 나는 8km를 뛰었다.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500L 물 두 개는 이미 다 마신 상태로 다시 사서 배낭에 넣었다. 다행히 캄보디아 길가에는 허름한 노점 가게들이 많아 콜라나 물을 사 먹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나는 이곳 도로에 앉아 아침에 싸온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 시계를 보니 천천히 뛰어서 그런지 50분이 걸렸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어차피 오늘 기록 목표는 없다.

아침식사 김치볶음밥

   역시 뛰려면 먹어야 한다.  꾸역꾸역 밥을 다 집어넣었더니 기운이 난다. 천천히 걸으며 다리에 시동을 걸었다. 허름한 가게도 만나 콜라도 하나 마셨다.

길가 노점 가게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가끔씩 자전거 타고 학교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캄보디아는 초중등대학교 모두 7시 반에 수업이 시작된다. 낮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수업을 시작하고 오후 일찍 수업을 마친다. 뛰다 보면 초등학교를 많이 만나게 된다. 캄보디아는 40여 년 전 폴 포트 공산정권 시절 800만의 인구 중 200만 명이 학살되었다가 그 뒤 인구가 늘기 시작해서 지금은 전체 인구가 1,500만 명 정도 된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많이 태어나 초등학교가 무지 많다. 하지만 아이들의 영양이나 위생, 시설 등은 최빈국의 모습 그대로다. 비만 오면 학교가 진흙탕 길이고 신발도 제대로 신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이 나라의 미래 꿈이기에 나는 어린아이들을 보며 희망을 가져 본다. 나는 이곳 캄보디아에서 교육 현장이 있기도 하거니와 아이들을 좋아해서 뛰다가 초등학교 두 곳을 들러 학교 구경도 하며 선생님, 아이들과 얘기도 나눴다. 두 학교에서 10분 정도의 시간을 쉰 셈이다.

 초등학교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잠시 엿보자.

천진난만한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

    운동장 한편에 있는 학교 매점은 캄보디아 현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곳은 아이들이 가장 행복한 공간이기도 하다. 무지한 생각으로 이곳이 비위생적이고 조악한 먹거리라고 폄훼한다면 나는 캄보디아로 파견 나올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학교 매점

   떠나는데 교실문에서 나를 쳐다보며 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모습에 왈칵 눈물이 난다. 다시 교실로 돌아가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손인사만 하고 그대로 교문을 나왔다.  

아쉬워 손을 흔드는 아이들

    아이들의 학교는 나에게 아련한 추억을 떠 올리게 한다. 50년 전 우리나라도 이랬던가? 내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렇지 아마도 비슷했던 것 같다. 지금 어렵게 살더라도 아이들에게 꿈을 만들어 주는 환경이 중요하다.

    애틋한 맘을 학교에 두고 나는 다시 목표 지점인 포이펫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 햇빛은 없다. 구름에 가려 띄엄띄엄 해가 비추니 오늘 뛰기는 안성맞춤이다. 지금의 기온이 32,3도 정도니깐 계속 달려 빨리 목적지에 닿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태양이 작열하면 정말 뛰기 어렵다.

    나는 계속 달렸다 한참을. 하지만 빠른 속도로 달릴 수는 없다. 다리가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20km 정도 지나면서 약간 속도가 늦춰졌다. 다리에 피로가 느껴졌고 왼쪽 허벅지에 작은 경련이 일어나 뛰다 걷다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여러 번 달려 보며 내가 겪는 증상은 왼쪽 허벅지의 경련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저림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은 내가 늘 신경 써야 했다. 나는 20km 지점 지나면서 두 개의 좋지 않은 증상이 나타나는 징조를 느꼈다. 그래서 정도가 심해지지 않게 하려고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계속해서 물과 콜라를 먹었지만 지금 거리에서는 간식을 먹어야 할거 같아 나는 배낭에서 고구마를 꺼냈다.

26km 지점에서의 간식, 고구마

   26km를 뛰어 온 나는 많이 지쳤다. 여기서 나는 다시 작은 딸을 생각했다. 오늘의 목적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자는 아버지와 딸의 약속을 위한 것이다. 나는 뛰면서 작은 딸을 불렀다. "한솔아~~ 독일에서 파이팅. 아빠도 지금 파이팅 중이야~~" 내 맘속에 작은 딸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복받쳐 오른다. 외국에서 많이 생활해 본 나는 안다. 외국에서 혼자 살며 성공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걸. 현지어 공부는 물론 외로움, 현지 문화와의 융합 등 혼자서 극복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환상의 외국 생활은 없다. 그건 돈 많은 재벌 자녀들의 얘기다. 나는 그런 어려움을 자처하며 도전해 보겠다는 작은 딸의 용기에 기꺼이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뛰어서 포이펫까지 잘 닿을 거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은 딸도 잘 해낼 거라는 것도.

   아버지와 딸의 정을 되새기며 달리는 이 길, 작은 딸을 생각하며 달리는 이 길은 결코 내가 멈출 수 없는 길이다. 나의 의지가 곧 딸의 의지고 우린 다 해낼 테니까..

   드디어 포이펫이 10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이고 나는 다시 기운을 내어 달렸다. 이 길은 씨엠립에서 반티민쩨이를 거쳐 포이펫으로 가는 5번 국도다. 깜퐁참에서 반티민쩨이를 거쳐 포이펫까지는 기차가 시험 운행 중이다. 철로는 내가 달리는 5번 국도와 나란히 달린다. 철로 옆의 판잣집이 위태롭게 서있다.

시험 운행 중인 철로

   철로 옆에 쭉 늘어선 허름한 집, 그곳은 마치 강둑 같이 보인다. 나는 호기심에서 도로 좌측으로 돌아 달려가 봤다. 둑에 올라서니 어마어마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강과 늪. 집 앞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어부에게 물어보니 오케돈 강이란다. 캄보디아 말로 대화를 했다. 지금은 건기라 물고기가 없다고.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데 자녀가 9명이란다. 여기서 산지는 28년 되고. 삶이 녹록지 않아 보이는데 말하면서 웃음이 가득하다. 그의 여유에 오히려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오케돈강의 어부

   나는 도로로 다시 나가지 않고 강가를 따라 달렸다. 넓은 강을 보며 달리는 기분은 도로를 달리는 것과 또 다른 기분이다. 하지만 강둑의 집은 말이 집이지 사는 게 형편없다. 캄보디아 내에서도 아주 못 사는 부류인 것 같다. 그 집 앞을 지나며  나는 천천히 걸어야 했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았다. 그리고 강둑의 길이 울퉁불퉁해서 자칫하면 발목을 삐끗할 수도 있겠다 싶은 것도 또 다른 이유다. 강둑을 따라 걷는 길이 꽤나 멀다. 3,4km 정도를 걸어서야 5번 국도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오케돈강의 가게

   국도로 접어드니 화물차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컨테이너 차량도 많고. 이곳이 태국 국경도시라 태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상품이 많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다. 불행하게도 캄보디아는 자국 생산품이 좋은 게 없어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캄보디아는 태국의 좋은 소비시장인 셈이다. 포이펫이 5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반갑다.

목적지 5km 남았다는 표지석

  이제 포이펫 시내를 향해 달리면 된다. 하지만 두 다리가 무척이나 무겁다. 뭔가 단것을 먹고 싶어 주유소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 쉬면 고통이 더 온다. 그냥 앉아 있으면 근육이 뭉치는 듯해서 걸으며 먹는 게 낫다. 두 다리를 잠시 주무르고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며 몇 분을 쉬다가 다시 뛰었다. 포이펫 시내 입구에 있는 컨테이너 통관장에는 부지런히 차들이 들고 난다. 역시 국경도시의 모습이다.

포이펫 수출입 컨테이너 통관장

   포이펫 시내에 들어오자 태국 캄보디아 국경, 카지노의 안내판이 보인다. 포이펫은 국경도시로 카지노로 더 유명하다. 카지노가 법으로 금지된 태국에서 이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한다. 태국에 여행 간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선명한 카지노 표지판

   포이펫 시내는 제법 번잡했다. 시내에 들어왔지만 나의 목적지 40km 지점인 기차역까지는 3km가 더 남았다. 나의 두 다리는 풀릴 데로 풀렸다. 나는 오늘 완주를 목표로 했기에 남은 3km를 뛰다가 걷다가 하기로 했다. 이곳까지 5시간 5분이 걸렸다. 포이펫, 사실 나는 캄보디아와 태국을 구분하는 국경이란 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었다.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4.5km 지점이 국경 지대다. 나의 목적지 기차역은 그 전인 3km 지점. 구글 지도를 보니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도로에서 좌측으로 몇백 미터만 가면 그곳도 태국과 국경이 길게 이어져있다. 나는 조금 걷다가 지도를 보고 좌측으로 걸어 지도상 가장 가깝게 표시된 태국 국경 방향으로 걸었다. 500여 미터 걸어갔는데 국경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인근에 공장을 짓는지 젊은 인부들이 있어 물었다. 손으로 가리키며 저기가 국경이라는데 가르키는 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다. 나는 한 친구에게 국경까지 같이 걸어가자고 청했다. 그 친구는 나를 데리고 몇발짝 걸어 수풀 더미로 향했다. 대여섯 발자국 걸으니 그가 웅덩이 하나를 가리키며 그 너머가 태국이란다. 휴전선 철책. 분단의 한국에서 국경은 단절을 의미하고, 높은 철조망, 감시의 눈을 의미한다. 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이곳은 그냥 수풀이다. 태국과 캄보디아에서 선은 의미가 없다. 그저 지도에만 선이 있을 뿐이다. 들고 날 때 신고를 위해 출입국 사무소가 있을 뿐이다. 태국을 가고 싶으며 그냥 이웃집 마실 가듯이 스풀을 헤치고 이곳으로 가면 된다.(물론 여기서부터 태국 마을이 있는 건 아니다. 아마도 산길을 엄청 걸어야 태국 마을이 나올 것이다)

큰 나무 뒤가 태국. 나무에 걸친 공사장 전선이 마치 국경선처럼 보인다

   수풀 속 국경선을 눈으로만 보고 나는 다시 돌아 나왔다. 조금만 가면 목적지기에 뛰어서 빨리 가고 싶기는 하나 두 다리가 움직여주질 않는다. 나는 천천히 뛰었다.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이 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다.

목적지를 앞에 두고 나는 다시 작은 딸과 대화했다. "작은 딸! 사랑해요~~ 아빠 오늘 잘 뛰어 왔어요. 우리 한솔 씨도 독일에서 잘 뛰셔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 자기가 계발하고 싶은 분야에서 열심히 열심히요~~" 작은 딸의 미소가 하늘에 뜬다. 나도 같이 웃는다. 그 순간 나의 근심도 사라졌다.

   나는 오늘 작은 딸과 함께 얘기하며 이렇게 뛰었다. 그리고 5시간 반을 천천히 뛰어 태국 국경 도시 포이펫에 왔다.

오늘의 목적지. 하루한번 시험 운행중인 포이펫 철도역

  

  *** 40km를 마친 나는 철도역 인근 호텔로 향해 여정을 풀었다. 오늘 하루 여기서 묵을 예정이다. 늦은 오후에 1.5 km 더 걸어 국경 근처를 가려고 쉬고 있는데 폭우가 쏟아진다. 한 시간 반 쏟아진 폭우에 길거리는 물난리다. 비가 멈추고 늦은 오후에 캄보디아 국경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태국으로 가는 입구 초입. 앞에 보이는 건물은 카지노 건물


출국신고서 작성


국경을 넘기 위해 줄서 있는 차량


출국심사대까지 500여m 걸어가면서 좌우 측에 보이는 카지노 도시 이미지


출국심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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